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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를 털어라 VS 여탕을 털어라

중앙일보

입력

줄기차게 쏟아져 나오던 블록버스터들 사이에서 기가 죽어 소리소문 없이 비디오로 출시되었다가 당시 신생업소였던 비디오방에서 차츰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해 그후론 비디오 대여점에서 조차 구하기 힘들어 일부러 비디오방을 찾게 만들었던 영화 '나쁜 녀석들'.

무명의 흑인 배우 윌 스미스를 한방에 스타덤에 올려놓았던 화끈한 액션과 감각적 영상이 인상깊었던 영화.그 윌 스미스가 인디펜던스 데이 와 맨 인 블랙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시기, 그와 함께 출현했던 또 한 명의 흑인 배우가 있었다.

하지만 그의 영화 속 장기였던 수다떨기가 '제5원소'와 '러쉬아워'의 스타 크리스 터커에게 밀려나 빛을 보지 못하게 되자 재능을 아껴둔 채 기다리다 이제서야 비디오 대여점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으니 그 영화가 바로 수다쟁이 마틴 로렌조의 '경찰서를 털어라(BLUE STREAK)'!

이 영화를 상대할 또 하나의 영화는 신생 제작사 선 시네 시타 의 야심찬 기획 속에 몸으로 수다를 대신할 AV배우 정세희와 '경찰서를 털어라'에서 털어 낸 기본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페러디 영화 '여탕을 털어라'

우선 '경찰서를 털어라'의 처음.

전문적인 금고털이 조직의 보스를 맡고 있는 로간(마틴 로렌조 분)는 최첨단 장비와 조직적인 분업을 이용, 수백 캐럿은 되 보일만한 다이아몬드를 훔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백인은 착한 편, 흑인은 나쁜 편이라는 이전 헐리우드 공식이 못마땅했는지 등장시킨 못된 백인 동료의 배신으로 인해 다른 동료 한 명을 잃은 채, 경찰에 체포되기에 이르고, 상황이 급해지자 로간은 다이아몬드를 공사중인 건물의 환기통에 숨기게 되는데...

'여탕을 털어라' 역시 다이아몬드를 훔치기 위해 잠입을 시도하는 남녀 커플도둑들로부터 영화가 시작한다.

하지만 AV답게 카메라는 긴장감 넘치는 화면에 신경은 쓰지않고, 치마를 입고 줄사다리에 올라가는 여도둑의 치마 속에 관심을 더 보이고, 경비가 엄중하고, 특수한 금고 속에 깊숙이 숨겨있는, '경찰서를 털어라'의 다이아몬드보다 훨씬 크고, 훨씬 가짜 같아 보이는 다이아몬드가 등장하면서 처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전개된다.

어쨌든 패러디를 제대로 하기 위해 느닷없이 배신자의 역할을 할 또 한 명의 도둑이 등장하게 되고, 그와 다이아몬드를 차지하기 위해서 또한 패러디를 위해서 일부러 공사장으로 장소를 옮겨 실갱이를 벌이던 중, 연기에 몰두한 여인의 어색한 추락사와 싸이렌 소리만 등장하는 경찰의 포위망 등으로 인해 다이아몬드는 공사장 어딘가에 숨겨지게 된다.

두 영화는 제각기 2년이 지나고... 다이아몬드를 숨겼던 공사장에는 제각기 경찰서와 목욕탕이 세워진다.

감옥에서 출소한 로간, 숨긴 보석을 찾기 위해 그곳에 갔다가 그곳이 경찰서임을 알고 기절초풍하게되지만, 주먹만한 다이아몬드가 그곳에 있는데 뭔들 못하랴?로간은 우여곡절 끝에 형사로 변장 경찰서에 잠입하게 된다.

경찰서 잠입이 무사히 이루어질까 싶겠지만 왠걸, 도둑의 심리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덕에 로간은 특유의 말재주와 어눌한 경찰관들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어려운 사건을 몇 개 해결하고는 경찰서의 신임을 얻게 된다.

그러나 다이아몬드 구출작전은 이리저리 꼬이게 되고, 맘에 들지도 않는 파트너가 그를 추종하는가 싶더니, 급기야 마약사건까지 해결하게 되면서 로간은 엉뚱하게 형사반장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이에 반해 2년이 지나 숨겨둔 보석이 있는 곳을 찾아낸 '여탕을 털어라'의 주인공.아무런 단서 없이 단번에 다이아몬드를 숨긴 장소가 여탕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신통력을 가지고, 여탕의 피부세척사(때밀이)는 물론, 입욕권을 파는 여주인까지 꼬셔 여탕 잠입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인공은 다이아몬드 찾을 생각을 잊은 것인지, 여색이 다이아몬드보다 좋은 것인지, 여탕잠입에는 아랑곳 않고, 호텔 방만을 돌아다니며, 두 여인의 애타는 욕정만을 달래주는데...

형사반장 자리에 오른 로간.마약사건의 보스를 잡으려하는 FBI의 협조요청을 엉뚱한데 떨어진 다이아몬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승낙하게 되자, 마약을 취급하는 갱단의 한가운데로 떨어지게 되고, 급기야 이전의 배신자마저 다이아몬드를 차지하기 위해 로간을 괴롭히는데...

진퇴양난에 빠진 로간, 경찰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고, 아슬아슬한 추격씬 속에서 재치와 용기로 모든 난관을 해치며 다이아몬드를 손에 쥐고 무사히 멕시코로 도주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욕정을 달래주던 신통력의 사나이, 다이아몬드는 잊지 않은 듯, 최고의 엑스터시를 맛보기 위한 것이라며, 여주인을 꼬셔 여탕잠입에 성공한다.

여탕에서의 짜릿한 장면을 팬 서비스 차원에서 보여주기를 잊지 않는 배우 본연의 자세는 물론, 다이아몬드를 찾으려는 역할 본연의 자세에도 충실한 우리의 주인공, 그러나 느닷없이 나타나는 두 남녀에 의해 다이아몬드는 결국, 목욕탕 여인네들의 욕정을 달래주는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다한 채 호수 속에 빠지게 된다.

여자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옛말을 잊은 채, 여자를 다이아몬드 찾기의 수단으로 사용한 주인공의 교훈적인 결말이라고나 할까?

말도 안돼는 얘기지만, 어쨌든...... 선시네시타에서는 원래의 시나리오대로 작품이 나오지 않아 조금 아쉽다고는 말 하지만, 어쨌든 흥행에도 성공했고, '경찰서를 털어라'를 패러디하면서 그것도 여탕이라는 공간을 생각해 낸 아이디어는 정말 AV 패러디의 진수라는 감탄을 금할 수 없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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