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연애' 중독으로 가정불화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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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연구소에 다니는 金모(35)씨는 결혼 5년째를 맞은 지난 2월 아내와 이혼했다.

지난해 11월 한 인터넷 게임 사이트를 통해 20대 여대생과 이른바 ''사이버 결혼식'' 을 올린 게 화근이었다.

金씨는 이 여대생과 각자 분신까지 만들어 인터넷 공간에서 함께 사업도 하고 쇼핑도 하며 ''이중 생활'' 을 즐겼다.

金씨는 점차 인터넷 접속시간이 길어지다 나중에는 밤을 꼬박 새는 경우도 많아졌고 아내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다 결국 이혼 요구를 받고 말았다.

주부 李모(28)씨는 ''사이버 연애'' 에 중독된 남편(30.공무원)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결혼한 지 1년6개월 된 李씨 부부가 결혼 기간을 통틀어 가진 부부관계 횟수는 고작 10여 번. 남편은 아내와의 잠자리는 아예 안중에도 없는 듯 퇴근만 하면 다음날 새벽까지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를 보는 데 여념이 없었다.

李씨는 지난달 남편이 인터넷 채팅방에서 다른 여성과 노골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급기야 병원 정신과까지 찾아야 했다.

李씨는 "연애할 때 남편이 인터넷에 빠져 있다는 건 알았지만 부부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다" 며 "남편의 생활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결국 이혼해야 하지 않겠느냐" 면서 괴로워했다.

인터넷.PC통신 사용이 늘면서 ''사이버 연애'' 에 심취해 정작 배우자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 중독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부부관계에 심각한 금이 가 이혼에 이르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한국정신병리진단학회 사이버중독연구팀이 지난해 11월 9백87명의 네티즌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자의 14.8%가 인터넷 중독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S정신과 김현수(金鉉秀)전문의는 "가상공간속에서의 데이트에만 몰두하는 배우자로 인한 고민을 호소하는 환자가 한 달에 10여 명에 달한다" 면서 "부부생활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사생활을 간섭받기 싫어하는 것 등이 사이버 연애에 빠진 사람들의 대표적 증상" 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선진국인 미국의 경우도 전체 인터넷 사용인구의 15% 정도가 중독증 환자이며 이중 10%는 섹스 사이트만을 접속한다고 조사된 바 있다.

이같은 부작용을 우려, 지난해 초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PC통신에 띄워진 ''사이버 부부를 구합니다'' 란 글을 심의한 끝에 윤리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고 삭제하기도 했다.

서울대 의대 정신과 류인균(柳仁鈞)교수는 "사이버 연애에 중독되면 가상공간과 현실의 정체성이 엇갈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 면서 "주변 사람들이 인내를 갖고 현실 세계의 좋은 점을 발견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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