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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107) 운명적인 만남(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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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008년 한국영상자료원이 주최한 핸드프린팅 행사에 참석한 한국 영화계의 살아있는 스타들. 왼쪽부터 신성일·윤정희·신영균·문희. [중앙포토]


프랑스 작가 스탕달의 『적과 흑』에서 쥘리앵이 귀족 영애 마틸다의 사랑을 포착할 때처럼, 나 역시 묘한 흥분감을 느꼈다. 과연 김영애가 부산으로 내려올까. 하루 종일 기대가 됐다. 만약 온다면, 비행기는 해운대 부근 수영비행장에 내릴 것이다. 해운대로부터 차로 5분 거리에 불과했다. 나는 해운대 극동호텔에 머물렀다. 김영애에게 그곳으로 오라고 한 이유가 있었다. 동아대 재단이사장인 김경준씨는 내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분이었다. 극동호텔은 동아대 소유였고, 김 이사장의 조카가 그 호텔의 영업부장이었다. 김 부장은 부산에서 내 오른팔 같은 존재였다.

김영애

 아침 일찍 송도로 촬영을 떠나면서 김 부장을 살짝 불렀다. 오후 5시경 한 여인이 오면 김영애라는 이름으로 예약을 받으라고 했다. 물컵에 절반만 남긴 물도 해석하기 나름이다. 난 그녀가 온다는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오후 5시 송도에서 촬영이 끝나자마자 공중전화로 김 부장에게 연락했다. 난 침을 꼴깍 삼켰다. 수화기 저쪽에서 김 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왔습니다.”

 그 한마디에 가슴이 얼마나 두근두근 대는지. 내 차 무스탕을 호텔 뒤편 주방 입구에 대놓고, 운전사에게는 볼 일을 보라고 했다. 눈치 빠른 김 부장은 남들 눈에 띌까 봐 무스탕을 군용담요로 덮었다. 제작부장에게 말했다.

 “난 다른 데서 저녁 먹어요.”

 내일 아침 촬영까지 찾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호텔에 전화했더니 그녀가 받았다. 반가웠다. 나는 “차가 호텔 뒤에 있으니, 그리로 오라”고 했다. 그녀를 무스탕에 태우고 양산 통도사로 향했다. 통도사 입구 산채비빔밥 집이 유명했다. 방에 들어가 마주 앉으니, 가슴이 떨렸다. 그녀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지적인 매력이 넘쳤다. 당시 젊은이들이 동경할 수 있는 대상은 미국뿐이었다. 그녀에게 미국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밥을 시켜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난리가 났다. 동네 사람들이 음식집 주변은 물론, 우리가 앉아 있는 방까지 꽉 채워버렸다. 그들은 그녀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냥 신인 여배우로 생각한 듯하다. 나를 쳐다보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동물원 구경거리가 된 기분이었다. 도저히 밥을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일단 차를 타고 나왔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무스탕을 담요로 덮어놓았다. “변장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지만 당장에 그럴 수도 없었다. 해운대 해변가를 산책하기로 했다. 해운대에 둑이 없던 시절이었다. 극동호텔에 숙소를 정한 다른 스태프들이 신경 쓰였다. 그래서 조선호텔 쪽 모래사장을 걸었다.

 그 곳도 안전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나를 둘러쌌다. 또 다시 김영애는 뒷전으로 밀렸다. 어디서 밥도 먹을 수 없고, 편하게 산책할 수도 없었다. 호텔로 되돌아와 생각한 곳은 호텔 나이트클럽이었다. 초저녁이어서 그런지, 비교적 한산했다. 이번엔 영업 준비 중인 댄서들이 몰려들어 야단법석을 이루었다. 김영애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미스터 신, 우리 방으로 가요.”

 나로선 전화위복이었다. 결국 방에서 밥을 시켜먹었다. 우리의 첫 데이트였다.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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