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월드카 파문' 제휴 방향으로 일단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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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가 지난 7일 다임러크라이슬러, 미쓰비시와 월드카를 공동개발키로 했다고 발표한 후 양사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 이틀 동안 계속됐던 파문이 9일 가까스로 진화됐다.

다임러크라이슬러가 미쓰비시에 `권한'을 일임하고 미쓰비시는 9일 현대의 발표내용을 `부분적으로 인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부인으로 일관한 전날까지의 상황에서 상당히 진척된 것으로 현대는 받아들이고 있다. 결국 다임러는 미쓰비시라는 창구를 통해 한다리 건너 현대와 제휴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혀진 셈이다.

일단락되기는 했으나 현대가 일방적으로 발표하게된 배경, 양사가 이를 즉각 부인하고 나선 이유 등에 대해서는 아직도 석연찮은 구석이 많이 남아있다. 또 3사간 확실한 제휴 여부에 대해서도 국내 업계는 여전히 "완전히 합의된 단계는 아니지 않느냐" 는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고 있다.

◇ 현대 또 `밀어붙이기'식이었나 = 현대 안팎에서는 현대 특유의 기업문화인 `밀어붙이기'식 협상태도가 작용한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3사간 협상이 미완인 채로 답보상태에 들어가자 `승부수'를 던진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는 미쓰비시와 월드카 공동개발 프로젝트에 100% 합의했고 미쓰비시로부터 다임러의 `승인'을 얻어내리란 확신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난달 26일 다임러가 미쓰비시와의 리터카 공동개발 방안을 발표해 버린채 현대의 참여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하자 다급해진 현대가 `일'을 냈을 것이라는 가설이 나오고 있다.

현대로서도 국제상거래 관행상 `비밀협정' 파기가 가져올 리스크를 알고는 있지만 더이상 머뭇거리다가는 장밋빛 프로젝트 참여가 물건너갈 것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업계관계자는 "월드카 프로젝트는 필연적으로 다임러가 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현대가 내외신 기자회견을 통해 다임러와의 제휴를 공식화해 어정쩡한 입장의 다임러의 참여를 유도시키려는 전략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는 다임러와 연료전지 등 포괄적 기술제휴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임러가 무조건 현대를 `외면'하기는 힘들지 않겠느냐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에서는 월드카 프로젝트의 최대 수혜자가 현대라는 분석이 높다. 세계 4위 메이커인 다임러크라이슬러와 제휴, 브랜드 이미지를 높일 뿐만 아니라 한 발 앞서간 선진그룹에 `무임승차'하는 행운도 덩달아 얻는다.

또 현대가 자사의 리터카를 토대로 기술개발의 이니셔티브를 갖는다면 현대가 가져갈 몫도 그만큼 커진다.

◇ 다임러 왜 부인했나 = 다임러는 이번 협상에서 확실히 우위에 있고 굳이 서두르면서까지 협상력을 떨어뜨릴 이유가 없다. 이미 현대의 기술제휴선인 미쓰비시의 지분 34%를 인수한 다임러로서는 직접 발을 담그지 않고도 미쓰비시라는 창구를 통해 프로젝트가 가져다줄 이익을 고스란히 챙길 수 있다.

특히 초기투자비 부담을 고려한다면 다임러는 최대한 돈을 적게들이는 방향으로 협상을 이끌었을 것이라는게업계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소형차 시장에 약한 다임러로서는 내심 세계 10위권에 드는 현대가 매력적인 파트너임이 분명하다. 현대는 2001년말을 목표로 리터카 개발을 추진, 이미 성공단계에 접어들어 다임러로서는 힘 안들이고 이득을 챙길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다임러의 `오리발 작전'은 협상력을 높이자는 차원이었던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업계 관계자는 "다임러는 계속 부인으로 일관할 경우 정작 아쉬운 현대가 더 많이 양보해 줄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남은 과제 = 이번 제휴는 이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측의 주장을 100% 수용하더라도 이번 제휴는 `현대-미쓰비시', `미쓰비시-다임러'간 제휴가 혼합된 불완전한 형태의 조합이다.

게다가 다임러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미쓰비시는 이날 현대의 참여를 `부분인정'하는 선에 그쳤다.

현대로서는 3사간 월드카 공동개발 방안을 국제적으로 공론화시켜 결국 협상파트너로서 인정받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게 됐지만 추후 협상과정에서 실제 3사간 합의를 성사시킬 수 있을는지는 의문이다.

특히 미쓰비시의 가와소에 가쓰히코 사장은 9일 "구체적이고 상세한 내용이 협의되지 않았다"고 밝혀 초기 투자비부담 문제부터 생산, 판매, 마케팅 등 난제가 첩첩히 쌓여있다. 물론 3사간의 이해관계를 감안할 때 이번 프로젝트는 깨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관측이 높다.

이번 월드카 파문에서 현대가 얻은 득실은 당장 계산하기 어렵다. 그러나 현대는 전략적 차원에서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기자회견을 이용, 확정되지도 않은 사실을 발표한 점에 대해서는 분명히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발표의 내부 책임소재를 가려 국민들에게 알린 후 사과하는, 책임있는 자세가 요구된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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