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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체육활동이 즐거운 학생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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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자리잡고 공을 끝까지 봐!”

7일 오후 서울 가락고등학교 운동장. 노란색 유니폼을 입은 학생들이 축구공을 쫓아 운동장을 바쁘게 뛰어 다녔다. 학생들은 힘에 부치는 듯 숨을 헐떡였지만 경기장에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올해 조직된 가락고 여학생 축구단 ‘발모아’는 13명으로 시작해 현재 23명의 학생들이 활동하고 있다. 평소 운동시간이 부족한 학생들을 위해 이정미 체육교사가 만든 방과후 체육활동이다.

이 교사는 “학업 때문에 체육활동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은데, 성장호르몬이 분비되는 청소년기의 체육활동은 신체발달과 정신건강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일주일에 3번 방과후에 2시간가량 축구 연습을 한다. 얼마 전에는 지역 일반 여성축구단과 친선경기도 했다. 반신반의로 시작했지만 축구는 학생들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줬다. 김주희(1학년)양은 축구를 시작하면서 아빠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김양은 “평소 아빠와 대화할 시간이 거의 없었는데, 요즘에는 스포츠 이야기를 하거나 축구를 같이 하며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고 말했다. 윤소정(1학년)양은 운동을 하며 길러진 집중력이 학업에도 도움이 된다고 자랑했다. 윤양은 “운동을 시작한 후 수학점수가 20점 이상올랐다”며 뿌듯해 했다. 이 교사는 “3~4년 전 다른 학교에 근무할 때 운동을 꾸준히 해온 점이 부각돼 해외 명문대에 진학한 학생도 있었다”며 “청소년기의 체육활동이 학습에 방해가 된다는 선입견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규칙적인 운동이 지능수준 높여

대부분의 부모들이 학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자녀들의 체육활동을 소홀히 여긴다. 하지만 각종 연구결과에 따르면 운동은 뇌의 활동을 촉진시켜 학습에 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운동을 하면 혈액순환이 빨라지면서 뇌 성장인자(BDNF·Brain- Derived Neurotrophic Factor)를 방출한다. 이 물질은 뇌 속에서 새로운 신경세포의 생성과 성장을 돕고 신호전달을 원활하게 한다. 따라서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BDNF 수치가 높아지면 뇌의 활동이 활발해져 학습능력과 기억력이 향상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미국 일리노이 대학 신경과학과 찰스 힐먼 교수팀의 2005년 연구결과에서도 운동을 많이 할수록 지능수준이 올라간다는 사실이 입증된 바 있다.

서울시교육청 학교체육보건과 오정훈 장학사는 “체육활동이 뇌 발달을 촉진한다는 것은 입증된 사실”이라며 “스포츠는 배려와 인내 같은 인성교육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올해부터 교내 체육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전국 37개초·중·고 학교를 학교체육활성화 창의경영학교로 지정해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다. 학교체육활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변화가 일고 있는 셈이다.

국가의 재정지원 없이도 체육활동이 활발한 학교도 있다. 경북 봉화고등학교는 일주일에 하루씩 전교생이 1시간 정도 아침운동을 한다.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아침운동은음악 줄넘기부터 최신댄스까지 다양하다. 장수연(봉화고 1)양은 “다른 반 학생들과 운동을 함께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협동심이 늘었다”고 말했다. 장양은 “아침 운동을 하고부터 수업시간에 조는 친구들이 줄었다”며 “학기 초와 달리 아침운동 일수를 늘려달라는 의견이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아침운동은 교사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김동삼 체육교사는 “학생들과 운동을 함께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더 가까워지더라”며 흐뭇해 했다. 김 교사는 “따로 시간을 내서 하는 운동이 아닌 학교에서 전교생이 함께하는 활동이라 학생들의 심리적 부담이 덜한 것 같다”며 “앞으로도 학생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운동을 계속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운동 즐길 수 있는 환경 만들어 줘야

학교 체육활동에 대해선 긍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지만,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체육과학연구원 한태룡 연구원은 “운동 후에 다음 수업을 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샤워실, 개인 사물함과 같이 실제로 학생들에게 필요한 시설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운동환경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으면 자발적인 운동이 이뤄지기 힘들다”며 “어른들의 입장이 아닌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필요한 부분들을 채워줘야한다”고 지적했다. 체육활동의 생활화를 위해 성과위주의 교육을 벗어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오정훈 장학사는 “단기적인 학습효과에 집착하다 보면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이라며 “학생들을 스포츠에 지속적으로 노출시켜 체육활동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진설명] 방과 후 운동장에 모인 여성축구팀 발모아 학생들이 축구공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이들은 운동을 하면서 집중력이 높아져 학업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joongang.co.kr 사진="김경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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