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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야구의 전설을 보내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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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강석진
서울대 교수·수리과학부

추석 연휴가 끝난 14일 출근 준비를 하다가 최동원 전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를 접했다. 지난 7월 22일 올스타 레전드 매치 때의 모습을 보고 이런 일을 예감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예감하고 준비하고 있어도 ‘전설’을 떠나보내는 일은 힘들다. 장효조라는 또 다른 전설을 떠나보낸 지 겨우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경남고 시절 별로 크지도 않은 체구에 금테 안경을 쓰고 나타난 그의 첫인상은 ‘공포의 외인구단’의 마동탁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존심 강하고 오만한 천재였다. 게다가 ‘어깨 보험’이라니. 그저 ‘번데기 스포츠 팬’에 불과했던 내가 처음부터 그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건 무리였다. 그러나 그는 호쾌한 투구폼으로 대담한 정면 승부를 펼치며 나를 정복해 나갔다.

 최동원은 150㎞를 넘나드는 강속구와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커브로 한 시대를 완벽하게 지배한 위대한 투수였다. 특히 한국 야구 사상 최고의 투수라고 불리는 선동열과의 세 차례 맞대결(1승1무1패)은 앞으로도 길이 빛날 한국 야구 역사의 보물이었다. 그러나 ‘투수 최동원’을 이야기하며 1984년 한국 시리즈를 빼놓을 순 없다. 1·3·5·6·7차전에 등판, 4번을 완투하고 총 40이닝을 던지며 4승1패를 기록했다. 너무나 자랑스럽고, 너무나 가슴 아팠던 그 가을의 전설을 통해 ‘투수 최동원’은 신화가 되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바쳐 화려한 불꽃으로 타오른 뒤 하얗게 재가 되어 버린 ‘도전자 허리케인’처럼.

 나는 14일 강의하는 도중 그만 참지 못하고 심중의 한마디를 토하고 말았다.

 “최동원이 세상을 떠났는데 오늘 저녁에도 프로 야구는 계속되겠구나.”

 그런데 학생들은 ‘최동원이 누구야?’하는 표정이었다. 뭔가 위화감을 느낀 나는 내가 지도하는 축구 동아리 학생들에게 여론조사성 문자를 보냈다.

 “너희들 최동원 아냐?”

 대부분 ‘잘 모른다’는 대답이었다. 아아, 이럴 수는 없는 거다. 이건 축구의 차범근, 농구의 허재를 모른다는 얘기랑 같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90년대에 태어난 대학생들이 그를 잘 알 리가 없다. 우선 우리가 그들에게 ‘전설’을 제대로 ‘전해준’ 적이 없지 않은가? 우리 세대가 김영조·김응용·김호중·남우식·윤몽룡 등 한 세대 전의 스타들에 대해 무지하듯이, 미래 세대 또한 지금 활약하고 있는 김동주·류현진·이대호·이승엽에 대해 무지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것이다. 우리가 ‘명예의 전당 건립’ 같은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면 분명히 그럴 것이다. 선동열 전 감독은 최동원 전 감독을 떠나보내며 이런 얘기를 했다.

 “최동원 선배는 나의 우상이었다. 연투 능력, 대담성 등 모든 면에서 나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렇게 그릇이 큰 또 하나의 위대한 전설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우리의 영웅들이 선사하는 감동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소중하게 가꾸어 후대에게 전하는 일이다.

강석진 서울대 교수·수리과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