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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농사 짓고 한낮엔 데이트 즐겨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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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6일 전북 김제시 죽산면 호남평야. 추석을 앞두고 있지만 벼는 이제 막 누런 빛이 보이는 정도였다. 농로 한 곳에서 3m 길이의 무인헬기가 16L짜리 농약통을 싣고 날아 올랐다. 무인헬기는 비행을 하며 2㏊(약 6000평) 면적의 논에 농약을 뿌렸다. 사람이 고압 분무기를 활용해 작업하면 1시간30분~2시간 걸리는 일이다. 하지만 헬기는 10여 분 만에 끝냈다. 한 대에 2억2000만원이나 하는 무인헬기를 구입해 조종하는 사람은 이곳에서 농사를 짓는 김찬기(24)씨와 김진석(26)씨다. 한 명은 조종기를 잡고, 다른 한 명은 반대편에서 헬기가 경계를 넘어가는지, 농약이 제대로 살포되는지를 점검해 무전기로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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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속하게 고령화하는 농촌에 신세대 농부들이 등장하고 있다. 20~30대의 젊은 농부는 김제지역에만 30여 명이 있다. 대부분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다. 아버지·할아버지 등 2~3대가 함께 살면서 수백 마지기(1마지기=200평)씩 벼농사를 짓는 경우도 있다. 농부 경력은 짧게 2년, 길게는 11년이나 된다. 김찬기씨는 아버지(55), 인부 4명과 함께 논 60㏊(약 18만 평)에서 벼농사를 지어 연간 2억여원의 수입을 올린다. 김씨는 “앞으로 식량자원의 가치가 계속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에서 농업은 블루오션”이라며 “열정과 의지가 있다면 도전할 만한 분야”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농업을 전공하고 이곳에서 농사를 짓는 조광석(33)씨도 “이제 주먹구구식 농사가 아니라 과학이자 투자로서 농업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첨단기계와 설비를 갖추고, 농경지를 대규모 단지화해야 경쟁력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농약살포용 무인헬기를 비롯해 트랙터·콤바인 등 1억원 이상 나가는 고가의 농기계는 필수품이다. 무인헬기를 보유하면 두 사람이 하루 6~7㏊에 농약을 칠 수 있다. 트랙터는 논 갈기, 볍씨 뿌리기, 육모 이양, 풀베기, 건초더미 말기 등의 작업을 자유자재로 해낸다.

 신세대 농부 김밝음(25)씨도 “ 우리는 일할 때, 쉴 때를 확실하게 구분해 지킨다”고 말했다. 이들은 요즘 오전 5시쯤 들판에 나가 3~4시간 일하고, 기온이 올라가는 오전 9~10시부터는 휴식을 한다. 낮에는 말쑥한 신사로 변신해 면사무소·농협 등으로 업무를 보러 다니고, 도서관에 나가 책을 읽기도 한다. 총각 농부들은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즐기고, 헬스클럽·수영장에서 건강관리도 한다. 한 달에 1~2번 정도는 사회복지시설 등으로 봉사활동도 간다. 농사일을 하기 전에 직장 생활을 1년 했다는 김진석씨는 “직장의 스트레스를 받을 일 없고 시간·금전적인 면에서 여유가 있지만 5~6월과 10월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며 “영화관 등이 없어 문화생활을 즐기기 어렵다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김제=장대석 기자

김밝음씨의 하루

▶오전 5시 : 기상
▶오전 6~10시 : 논 둘러보기, 영농활동
▶ 오전 10시~오후 4시 : 면사무소·농협 방문 등
▶오후 5~7시 : 영농활동
▶오후 7~9시 : 수영장, 조깅
▶오후 9~10시 : 영농일지 작성, 유기농기능사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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