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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현대 '소문' 잠재우기 비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현대전자 재무담당자는 지난주부터 자금사정을 묻는 해외 금융기관의 전화를 받느라 혼쭐이 났다.

회사 관계자는 "국세청 주식이동 조사와 공정위 부당 내부거래 조사 등이 함께 이뤄져 마치 정부가 전방위로 재벌을 압박하는 것처럼 비쳐져 이런 일이 생긴 것 같다" 고 말했다.

현대중공업.현대상선 등 해외 차입금이 많은 계열사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26일에는 현대투신의 대주주인 현대전자와 현대증권 주식이 하한가를 기록했고, 거의 모든 계열사 주식이 하락했다.

27일에도 현대 계열사 주가가 약세를 보이자 현대그룹은 물론 정부가 상황을 적극 설명하고 나섰다.

현대 관계자는 "현대투신이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 주가 급락의 원인이며 자금난과는 무관하다" 고 강조했다.

그룹 PR사업본부는 공식 자료를 통해 "1998년 기아.LG반도체를 인수할 당시 부채가 78조3천억원에 이르렀는데 지난해 52조6천원으로 감축했고 오는 9월까지 31조4천억원 수준으로 더 줄일 것" 이라고 강조했다.

김재수 구조조정본부장.이익치 현대증권 회장 등 핵심 경영자들은 연일 대책회의를 갖는 등 바삐 움직였다.

그룹의 자금을 총괄하는 李회장은 27일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을 만나 정부의 지원약속을 받아냈다.

현대 관계자는 "정몽헌 회장은 이번 자금경색 소문과 관련해 걱정하지 않고 있다" 고 말했다.

鄭회장은 현대가 '정중동(靜中動)' 으로 부채를 줄여온 사실을 알리면 소문은 사라지고 주가도 안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는 그동안 '부채와의 전쟁' 을 벌여왔다.

현금흐름에 문제가 있어서라기 보다 지난해말부터 제기된 재무구조 악화 소문을 불식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현대는 그룹의 덩치가 커서 부채규모도 자연히 큰 것일 뿐인데, 이것도 문제가 된다면 서둘러 줄이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연내로 예정했던 11개 기업에 대한 계열분리를 3개월 앞당겨 9월까지 끝내기로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鄭회장은 남북정상회담 협의로 국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대북사업을 앞세워 해외자본 유치에 나서 그룹 자금문제와 금강산 관광사업으로 적자인 대북 사업을 한꺼번에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鄭회장은 이를 위해 이달들어 13일이나 해외에 머물며 중국 베이징(北京)과 일본 도쿄(東京)를 분주히 왔다갔다 했다.

김재수 구조조정본부장도 지난 10일 중국 상하이(上海)에 하루짜리 '번개 출장' 을 가 미국의 곡물 메이저인 카길사 계열 투자금융회사로부터 1억달러를 유치했다.

현대는 최근 '현대 21세기 발전전략' '새 천년, 초우량 기업을 향한 현대의 비전' 등을 잇따라 내놓았다.

영업이익이 없는 계열사의 신규투자를 금지하고 부채를 지난해말 수준에서 늘리지 않는 '부채 총액상한제' 를 발표했다.

그러나 한 외국 금융사 관계자는 "현대가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그룹으로 지목된다" 며 "오너 지분을 2세에게 교통정리한 것이 고작이라는 시각이 많다" 고 지적했다.

이같은 이유에서 현대의 자금동향과 정부 움직임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대가 드러나지 않은 부실이 있는 것으로 보는 일부의 시선을 잠재우지 못하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가 경영권 다툼 이후 국내외 투자자의 불신을 받고 있으며 구심력이 약해졌다는 평을 듣고 있다" 며 "현대 스스로가 뼈를 깎는 자구노력과 함께 주주와 투자자.시장의 염려를 불식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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