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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놈혁명…제4의 물결] 上.맞춤의학시대 막 올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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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놈혁명이 시작됐다. 미국과 영국 등 6개 선진국의 16개 연구소에서 1천1백여명의 과학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인체게놈사업이 13년간의 각고 끝에 6월초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10만개의 유전자와 그 속에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30억쌍의 염기서열을 모두 밝혀내는 인체게놈사업은 조물주가 창조한 인체 설계도를 알아내는 대역사(大役事) 다. 정보통신기술(IT) 혁명에 이어 인간 삶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을 게놈시대를 미리 점검해 본다.

게놈혁명의 첫 산물은 예측의학시대의 개막. 서울대 의대 생화학교실 서정선 교수는 "현대의학이 질병 발생 후 대처하는 치료의학이라면 게놈혁명이 몰고 올 차세대 의학은 질병 발생을 미리 알아내 대비하는 예측의학" 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아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20년후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1백분의 1이라고 진단해 내는 식이다. 이미 1번 염색체의 노인성 치매 유전자, 7번 염색체의 비만 유전자 등 8천여개의 질병 유전자가 밝혀진 상태다.

일부 암 유전자는 현재 기술로도 찾아낼 수 있다. 서울대병원 유전성 암클리닉은 3대 이상 특정 암이 대물림 될 경우 가계 내에 암유전자가 있는지 찾아내준다.

서울대 의대 박재갑 교수(국립 암센터 소장) 는 "유방암과 대장암, 난소암은 물론 위암까지도 유전자가 이미 규명됐다" 며 "인체게놈사업의 완성으로 지금까지 베일에 가려왔던 새로운 암유전자가 속속 밝혀질 것" 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암유전자가 있으면 없는 사람보다 장래 암이 발생할 확률이 수십배나 높다. 폐암환자 10명 중 1명이 평생 담배라곤 한모금도 피우지 않았던 사람이며 소문난 체인스모커였던 러셀이 98세까지 장수한 수수께끼가 풀리게 된다는 것.

인체게놈사업을 총지휘하고 있는 인체게놈연구소장 프랜시스 콜린스 박사는 "2010년이면 간단한 혈액검사만으로 몇가지 중요한 질병의 유전자는 물론 담배연기에 대한 개인의 저항력까지 미리 예측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고 말했다.

맞춤형 인간개조도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인체게놈사업으로 질병 유전자를 찾아낸 뒤 유전자 치료기술을 이용해 정상 유전자로 바꿔줄 수 있기 때문이다.

목표는 질병 유전자만이 아니다. 키를 작게 하는 유전자, 꽃가루에 과민반응을 나타내게 하는 유전자 등 지금까지 현대의학의 최대 난제였던 체질마저 원하는 대로 개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놈혁명을 통한 난치병의 극복은 사망원인 순위도 바꿀 전망이다. 한국인의 주요 사망원인인 암과 뇌졸중에서 교통사고로 순위바꿈이 일어나리란 것. 그러나 교통사고조차 유전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유전학연구소장 매큐직 교수는 "교통사고를 일으키는 것도 결국 조급한 성격 탓이며 성격도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다" 고 강조했다.

심지어 부끄럼증이나 도벽과 같은 성격과 관습''은 물론 사형제도 찬반여부에서''까지 유전적 편차를 보인다는 것.

그러나 게놈혁명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유전자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이 첫째. 대물림되는 유전자보다 환경과 교육이 인간에게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체게놈사업의 완성을 과대포장해서도 곤란하다는 지적도 있다.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신희섭 교수는 "인체게놈사업은 단지 벽돌의 위치만 밝힌 구조의 완성에 불과하다" 며 "중요한 것은 벽돌 한장 한장이 인체내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기능을 밝혀내는 것" 이라고 강조했다.

그때까진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인체게놈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셀레라사의 크레이그 벤터 박사는 "우리가 밝힌 유전정보의 기능을 모두 밝혀내려면 1백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고 고백했다.

생물학적 다양성의 파괴도 비판대상 중 하나다. 맞춤형 인간개조로 획일화된 유전형질만 남게 될 경우 전염병 유행이나 기후변화 등 급격한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상실해 인류멸망이란 비극을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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