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파워피칭서 두뇌플레이 변신이 쾌투 비결

중앙일보

입력

`홀짝에서 주사위 숫자 맞추기로'

'코리아특급' 박찬호가 시즌초반 예상밖의 쾌조를 거듭하고 있는데는 또 한차례의 변신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덕분이다.

시종일관 힘으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스타일에서 강약조절에 많은 신경을 쓰고 단순함보다는 다양한 승부로 타자들과의 두뇌싸움에서 승리, 한수를 이긴 상태에서 투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94년 처음 메이저리그에 입단한 후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될때까지 박찬호가 타자들과 벌인 머리 싸움은 확률 50%의 단순한 '홀짝'이었다. 그당시 던질줄 아는 구질이라곤 시속 100마일에 육박하는 대포알 직구와 슬라이더뿐.

그나마 80% 가까이가 직구이다보니 타자들은 아예 직구만을 노리면 최소한 머리싸움에서 80%는 이기고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그 다음, 커브를 익히고 체인지업을 익힌 지난해 타자들과의 두뇌싸움은 확률 33%의 ‘가위, 바위, 보’가 됐다.

98년부터는 필요성을 절감하고 체인지업을 던지기 시작했으나 자신감이 없었고 사실상 그때까지도 타자들은 여전히 직구와 커브만을 노려 본격적으로 수읽기가 복잡해진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올해 박의 피칭은 지난해보다는 곱절로 복잡해졌다.

시범경기에서 직구 스피드가 떨어져 우려를 자아냈지만 다양함으로 이를 극복했다. 90마일도 새색시같이 얌전한 직구를 던지는가 하면 갑자기 95마일짜리 대포알을 쏘아댄다. 볼카운트가 불리하면 직구, 유리하면 커브라는 공식도 깨졌다. 거기에 커브도 특유의 낙차 큰 커브에 `슬러브'라고 불리우는 빠른 커브가 올시즌 유난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또 체인지업도 정교한 제구력을 갖춰 타자들의 머리는 타격을 하기전부터 이미 복잡해질대로 복잡해질 수 밖에 없다.

박이 생애 통산 50승을 거둔 22일 스포츠전문 케이블방송은 특히 박의 체인지업과 슬러브를 두고 "박찬호가 지난해까진 보지 못한 구질을 갖고 돌아왔다"고 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박찬호는 다른 구질이 아닌 다른 스타일로 돌아왔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듯 하다. 힘만 믿고 시비를 걸기보다는 확률싸움으로 상대를 교란시키는 투수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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