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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부실·기업부채 호황길목 곳곳암초

중앙일보

입력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경제전망의 골자는 '고성장.저물가' 기조가 올해도 계속될 것인 만큼 이를 구조개혁의 기회로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KDI는 만약 이 기회를 구조개혁에 활용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 내년 이후 경기 하강 국면과 맞물려 인플레와 금융 부실이 한꺼번에 노출될 경우 우리 경제는 다시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좋아진 거시지표〓KDI는 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7.8%에서 8.6%로 크게 높였다. 그럼에도 물가상승률은 3.2%에서 2.4%로 오히려 낮췄다.

다만 경상수지 흑자는 1백26억달러에서 86억달러로 줄여 잡았다. 이같은 전망은 정부와 민간.국책 연구소들을 통틀어 가장 낙관적인 내용이다.

조동철(曺東徹)KDI 연구위원은 "설비투자를 중심으로 내수부문이 예상보다 빨리 상승해 성장률 전망치를 올려잡았다" 면서 "다만 물가는 최근 주식.부동산시장의 침체와 안정된 임금 등을 감안해 당초 전망보다 낮췄다" 고 설명했다.

曺연구위원은 "노동부가 발표한 10인 이상 사업장의 임금상승률이 지난해 12%를 넘어 물가상승 압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노동부 발표 이후에 한국은행이 발표한 전체 임금상승률(기업의 실제 임금지급 기준)은 3.8%에 그쳐 소비자물가 상승률 추정치를 낮추게 됐다" 고 설명했다.

KDI는 이같은 물가전망을 근거로 "현재로선 한국은행이 금리를 크게 올릴 이유는 없어 보인다" 고 밝혔다.

◇ 방심은 금물〓그러나 우리 경제는 여전히 많은 불안요인을 안고 있어 지금의 경기상승 국면이 내년 이후에도 계속될지는 불투명하다고 KDI는 강조했다.

무엇보다 대규모 부실채권과 기업들의 과다부채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다.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규모는 지난해 말 현재 67조원으로 총 여신의 11.3%나 됐고, 기업들도 증자를 통해 부채비율을 줄였다고는 하지만 부채의 절대규모는 지난해 말 현재 7백76조원으로 1년 새 불과 1조5천억원밖에 줄어들지 않았다.

또 경기가 좋아지자 개혁의지가 흐트러져 공기업 민영화.부실기업 해외매각.연금개혁 등을 거부하는 목소리가 드세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도 KDI는 우려를 표시했다.

이와 함께 앞으로 실업률이 떨어지면 임금인상 요구도 커지고, 원화가치가 높아지면서 수출도 계속 압박받을 전망이다. 이런 악재들이 현실화할 경우 경기가 곤두박질치면서 물가는 치솟는 위기상황을 다시 맞을 수도 있다(김준경 연구위원)는 것이다.

◇ 구조개혁, 시간이 별로 없다〓내년부터 부분 예금보험제도가 도입되는 만큼 올해 안으로 금융 구조조정을 끝내야 한다고 KDI는 제안했다.

그렇지 못할 경우 부실 금융기관의 연쇄도산 등 극심한 금융 불안이 야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조개혁이라는 대전제를 위해 KDI는 이제까지의 '예방적 금리 인상' 주장을 접어두는 대신 통화정책을 구조개혁의 진전 여부와 연계하라고 주문했다. 아직 물가에 여유가 있으니 구조개혁 과정에서 경기 연착륙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굳이 무리하게 돈줄을 죌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다.

KDI는 구조개혁의 주요 내용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2%(11조원)까지 재정적자를 보다 과감하게 줄이고▶회생 가능성이 없는 부실기업은 조속히 퇴출시키며▶부실 금융기관 역시 적기에 과감히 폐쇄하는 한편 최소한의 공적자금을 적기에 투입할 것 등을 제시했다.

서경호.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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