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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 두 얼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34호 31면

스포츠의 어원은 라틴어의 ‘디스포타레(disportare)’로 ‘일에서 벗어나 기분전환을 하며 만족한다’는 뜻이다. 이런 면에서 스포츠는 놀이나 게임과 유사하지만, 경쟁과 규칙성이 더해지면서 좀 더 강한 신체활동을 포함한다. 스포츠 경쟁의 구조는 결과의 불확실성과 서스펜스, 적절한 시점의 긴장 해소와 카타르시스 등 드라마틱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서스펜스는 불확실성의 경험으로, 무엇인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슬아슬하거나 불안한 상태를 말한다. 이런 상태는 보는 사람에게 ‘마음 졸임’을 유발하며, 이런 마음 졸임 상태가 어느 정도 있을 때 흡인력을 지닌다.

승리를 원하는 경쟁 심리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려는 성취욕과 함께 스포츠의 핵심을 구성한다. 경쟁 심리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더 높은 성취를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가 되지만, 부정적으로 작용하면 반칙도 불사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어버린다. 사람의 정서를 구분할 때 쾌와 불쾌로도 나눌 수 있지만, 생리적 각성(arousal) 수준이 높은지 낮은지에 따라 구분하기도 한다. 경쟁 심리는 생리적 각성 수준이 높은 상태를 기반으로 한다. 신체를 움직이는 스포츠 활동을 할 때는 교감신경이 작용해 평소보다 더 높은 흥분 상태이기 때문에, 경쟁 심리가 더욱 강해질 수 있다.

이기고 싶은 마음이 지나치게 강하면 규칙을 무시하면서까지 이기는 데만 몰두하게 되고, 그러면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우사인 볼트와 같이 부정출발을 하거나 다이론 로블레스와 같이 허들 진로방해 반칙을 저지르게 된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런 실수나 반칙이 나온다는 것은 본능적인 경쟁 심리를 다스릴 만큼 충분히 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극심한 중압감 속에서는 깊은 생각을 거칠 틈이 없이 거의 자동화된 반응이 나오거나, 심지어 선악에 대한 판단이 흐려져 규칙을 무시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반면에 충분한 훈련을 통해 바람직한 행동이 몸에 배어 있을 때는 매우 긴장된 극한상황이 되어도 자연스럽게 완전한 반응이 나온다. 김연아가 올림픽 금메달을 받던 그 완벽한 연기 장면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라이벌이 바로 앞에서 경기를 하든 안 하든, 수많은 관중 틈에서 엄청난 긴장감을 견디며 몸을 수없이 공중에 날렸다 내려와도 실수 한 번 없이 완벽했다. 마침내 연기를 다 마친 후 ‘해냈다’는 안도감으로 눈물을 보였을 때, 그 순간에 비로소 자동화된 반응을 넘어 ‘생각’이 돌아왔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도 아름다운 감동이 이어졌다. 가장 경쟁적인 순간에도 이기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행동으로 보여 준 선수들이 있었고,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경쟁의 승리자라고 할 수 있다. 여자 마라톤 경기에서 선두를 달리던 케냐의 에드나 키플라갓이 샤론 체로프와 엉켜 넘어지자 체로프는 멈춰 서서 키플라갓이 괜찮은지 살펴보는 동료애를 보였다. 넘어진 선수를 뒤로 하고 달리면 본인이 우승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또한 허들 경기에서 선두를 달리던 중국의 류샹은 쿠바의 로블레스의 반칙으로 인해 균형을 잃으면서 금메달을 놓쳤는데도, 오히려 실격으로 탈락한 로블레스의 상심을 더 걱정하는 인간애를 보였다.

경쟁 심리는 스포츠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각종 선발시험이나 선거처럼 소수가 선택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강한 에너지를 지닌 경쟁 심리를 부정적인 방향으로 소진시키기보다는 인간성의 근본을 지키는 대승적이고 상생적인 방향으로 전환시킬 때 우리 모두가 공감하며 행복해질 수 있다.



나은영 서울대 학사·석사, 예일대 사회심리학 박사. 최근 쓴 저서 『미디어 심리학』이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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