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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2급 사이버아파트' 대림아크로빌

중앙일보

입력

서울 방학동 우성아파트의 유지숙(42)씨는 매일 오후 1시가 되면 컴퓨터를 켠다.

남편이 점심시간에 짬을 내 보낸 e-메일 답장이 도착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유씨는 "무뚝뚝한 남편이 의외로 다정한 e-메일을 보내온다" 며 "16년 전 연애시절로 되돌아간 느낌" 이라고 말했다.

중학생인 딸 아름과 다희에게 '다모임' 사이트는 또 하나의 세상이다.

다모임의 초등학교 동창생 사이트에 들어가 채팅으로 수다를 떨어야 잠자리에 든다.

"초등학교 때의 짝궁 남자친구는 ID가 아예 'love다희' 예요. " 다희는 "사이버 세계에 들어가면 공주가 된 기분" 이라며 웃었다.

국내에 사이버 아파트가 선보인지 꼭 1년. 아파트에 초고속 통신망이 깔리면서 생활패턴이 크게 바뀌고 있다.

유씨의 집은 기존 구리선에다 전송속도를 높인 '무늬만 사이버 아파트' 에 불과하지만, 아파트 문앞까지 10Mbps급의 UTP(전송 속도를 높인 꼬인 구리선)가 들어오는 최신 사이버 아파트에 들어가면 또 다른 세계가 열린다.

서울 강남의 매봉터널을 지나면 마주치는 도곡동. '정보통신의 메카' 로 삼아 한국통신이 외환위기 이전부터 광케이블을 집중적으로 깔아놓은 도곡동은 최근 사이버 아파트촌(村)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정보통신부에서 처음으로 사이버 아파트 2급 인증을 받은 도곡동의 대림 아크로빌(46층 건물). 그 옆에는 UTP를 집안까지 끌어들여 사이버 1급 인증을 노리는 한 회사의 타워 팰리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아파트 전체에 근거리 지역 통신망(LAN)이 깔려있는 아크로빌 주변에는 PC방을 찾을 수 없다.

24시간 인터넷에 접속된 컴퓨터를 통해 방안에서 2~10Mbps의 빠른 속도로 인터넷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홈페이지에 들어가 e-메일부터 확인하죠. 그리고는 인터넷으로 아파트 지하1층의 헬스클럽에 예약한 뒤 운동하러 내려갑니다."

아크로빌 부녀회장인 김형자(51)씨의 아침 일과다.

이 아파트에는 으레 조간신문을 집어들던 풍경도 사라지고 인터넷을 통해 자기가 원하는 맞춤형 뉴스를 받아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출근길 엘리베이터의 액정화면에는 날씨와 주요 뉴스, 주변상가의 바겐세일을 비롯한 생활정보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아크로빌에는 반상회가 없다.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한 사이버 반상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아크로빌의 웹 마스터인 공성식 팀장은 "구내 전화도 모두 무료여서 아파트 주민들은 입주 넉달 만에 이웃사촌이 됐다" 고 말했다.

이번 주에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모든 주민들의 얼굴사진을 띄워놓자는 주장에 대해 사이버 찬반투표가 한창이다.

인터넷을 통해 네덜란드 트웬티대의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주민도 있다.

네덜란드 현지에서 6개월간 6개의 필수과목을 이수하고 돌아온 윤모씨는 나머지 석사과정 수업을 트웬티대 홈페이지에 들어가 강의를 듣거나 교수와 e-메일을 교환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부녀회의 김회장은 "주부들도 인터넷을 모르면 대화에 끼기가 어렵다" 고 전했다.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칭찬하거나 문화 사이트에 소개된 영화.신간서적 이야기로 첫 인사를 나누는 주부들이 많다는 것이다.

지난 12~14일의 무료 컴퓨터 강좌는 주부들의 신청이 넘쳐나 하루만에 접수를 마감했을 정도다.

인터넷으로 주부들이 빠져나가자 주변 상가들은 비상이 걸렸다.

중화요리.부동산 소개소 등 웬만한 가게들은 앞다투어 홈페이지를 구축, 인터넷 주소를 간판에다 큼지막하게 새겨놓았다.

이 아파트의 웹 사이트는 인터넷 전문 사이트를 능가하는 수준이다.

대학에서 밴드활동을 한 주민은 '오늘의 추천 음악' 을 올려놓았고, 강남구청이나 지자체가 주최하는 각종 이벤트도 쉽게 찾을 수 있다.

3~4개의 아이디를 가진 가구도 적지 않고 인터넷 동호회도 10개를 넘어섰다.

아크로빌의 심재민 사무소장은 "당초 예상보다 인터넷 사용이 급증하고 있다" 며 "곧 서버 컴퓨터를 추가로 설치해 네트워크를 보강할 방침"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관리직원들은 인터넷 때문에 더 피곤해졌다.

"경비절감한다며 공조시설을 가동하지 않아 음식냄새가 너무 난다" "구내 도서실에 책만 놓고 자리를 비우는 얌체가 너무 많다" …. 홈페이지에 실리는 주민들의 성화로 일부 관리요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앞선 사이버 단지는 포스데이터가 네트워크를 구축한 포철의 포항.광양 주택단지. 매달 1만9천원의 비용으로 최대 10Mbps에 이르는 초고속 인터넷 접속이 가능해 포항과 광양을 하나로 묶고 있다.

또 모든 세대에게 가족 홈페이지를 구축해주고 자체적인 벼룩시장 사이트도 개설해 놓았다.

사이버 아파트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건설업체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삼성물산 주택부문의 이종섭 과장은 "신축 아파트에 컴퓨터 네트워크는 이제 옵션이 아니라 기반 시설" 이라고 말했다.

현대.LG.대림도 사이버 아파트 건설을 위해 별도의 회사를 설립하고 통신.소프트웨어 회사와 제휴, 오는 6월부터 1급 인증 사이버 아파트를 잇따라 선보일 예정이다.

이철호·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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