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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블랙먼데이’ ‘피의 금요일’ 뭐가 다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4월17일 한국증시는 오전부터 투매 연속이었다. IMF 때도 없었던 서킷 브레이크마저 나타날 정도였다. 한때, 미국의 ‘피의 금요일’에 이어 한국에도 여지없이 블랙먼데이가 연출됐다. 향후 미국증시와 한국증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전문가의 긴급대담도 마련했다.<편집자>

87년 10월9일 ‘블랙먼데이’, 2000년 4월14일 ‘블러디 프라이데이’. 지난 14일 미국 뉴욕증시는 다우지수와 나스닥지수의 사상 최대 폭락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영국 런던에서는 FT100지수의 폭락을 예견하는가 하면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대만·홍콩의 주가도 하락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세계 증시가 뉴욕發 주가폭락 칼날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주가폭락이 세계공황의 신호탄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美 증시 폭락 어디까지=이번 주가폭락의 원인으로 ▶美 금리 추가인상 가능성 ▶신용거래에 의한 매물 정리가능성 ▶주식을 담보로 한 신용거래 매물을 정리하는 ‘마진콜’ ▶첨단 기술주에 대한 거품論 확산 등이 꼽힌다. 14일 미 증시 개장 전 3월중 소비자 물가지수(CPI)
가 당초 예상치(0.5% 상승)
보다 높은 0.7% 오른 것으로 발표됐다. 이같은 상승폭은 소비자 물가지수가 5년래 가장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시장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 다음달 21일로 예정된 FRB공개시장위원회에서 금리를 50bp (0.5%포인트)
이상 올릴 것이라는 설이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고 증권사들은 주식을 담보로 대출받은 매물을 정리하는 ‘마진콜’에 나섰다.

결국 이날 폭락분을 포함, 나스닥 지수는 지난 한 주간 25.3%나 떨어졌다. 단기전 고점(5천1백32)
과 비교하면 무려 35.2%나 떨어진 것이다. 미 증시에서는 하락폭이 20%가 넘으면 침체장으로 간주하는 점을 감안하면 추가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또 나스닥 지수의 2백일 이동평균선인 3천5백이 깨진 상황이어서 지수 3천 붕괴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상당수의 美 증시 전문가들은 주가가 단기간에 과도하게 떨어진 감이 있지만 아직 바닥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퀀텍리서치 마크마이너비니 전략분석 담당은 “주가가 초유의 약세를 기록했다는 사실이 추가적인 매도세를 이끌 원인”이라며 “마진콜을 우려한 매도세가 또다른 주가 하락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뎁델사의 전략가 래리 라이스는 “최근 주가하락을 과도한 투기적 거품을 제거하는 과정으로 본다면 장기적으로는 주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나스닥 지수가 일시적으로 10∼15% 반등한 후 현재 수준보다 더 떨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애틀랜타 소재 워초비아증권의 더글러스 메이어스 부사장은 “급락에 대한 반발매수가 빠르게 형성될 것 같지는 않지만 저가 매수세가 형성될 것”이라며 “기업들의 실적 등 재료가 나타나면 불안심리가 진정될 것”이라고 다소 긍정적인 전망을 했다.

◇국내증시 어디로 가나=국내 증시전문가들은 일단 심리적인 영향 때문에 국내 주가의 추가하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한다. 종합주가지수는 8백선 지지에 대한 기대감이 무너지고 7백80선에서 반등을 시도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코스닥지수의 경우는 지난 1월 저점이었던 1백70∼1백80선을 1차 저지선으로 잡는다.

그러나 반등 실패로 저지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에 대해서는 매우 비관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국내 주가하락 원인을 미 증시에서 찾는다면 부정적인 측면이 강하다. 직접적으로는 미 금리인상에 따른 외국인들의 국내 증시이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또 미국 소비자의 소비가 증시호황에 따라 돈이 생겼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맞다면 美 증시침체→미국내 소비 위축→미국시장 수출 감소→국내기업 실적악화→주가하락이라는 그림이 나온다. 아직 구체적인 징후가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상황이 미국의 고원(高原)
경기가 끝나가는 신호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미 경기의 위축은 곧바로 내년 6월께 될 것으로 예상되는 국내경기 정점을 앞당기게 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국내경기 호황 지속을 전제로 추가상승을 기대하는 입장에서는 불길한 전망이다.

경기논쟁에서 한발 뒤로 물러서 본다면 국내주가가 크게 떨어지지 않거나 반등할 가능성이 있는 측면이 있다.

그중 하나가 국내 IT관련 주식들의 거품이 미국보다는 상대적으로 작다는 것이다.

시스코·MS·마이크론테코놀로지 등 미 증시를 이끌었던 주식들의 PER(주당 수익률)
이 40∼1백60에 달할 정도로 주가가 높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PER가 17에 그치는 등 국내 기업의 평균 PER는 미국 기업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최근의 주가하락이 거품을 꺼나가는 과정이라면 국내 기업들의 주가는 상대적으로 낙폭이 작거나 오를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최근 반도체 D램 가격이 6달러대 중반에서 상승흐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 등 핵심종목들의 1분기 예상실적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반가운 소식이다. 또 외국인들의 투자지표가 되는 FTSE지수에 한국시장이 편입될 경우에는 추가적인 외국자금의 유입도 기대할 수 있다.

송상훈 중앙일보 경제부 기자 <이코노미스트 제5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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