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남윤호의 시시각각

교육감, 애들에게 물어보고 뽑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남윤호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술이란 단어를 쓴 노래가 유해하다면, 일찌감치 ‘19금(禁)’ 도장이 찍히고도 남을 게 따로 있다. 바로 정치에 오염된 교육계의 부패상이다. 전·현직 서울시교육감의 비리와 돈 거래 의혹이 그렇다. 교육자로서 가장 모범을 보여야 할 분들이 부패 관료나 프로 정치꾼 뺨치는 행동을 했다. 순수한 교육적 열정보다 정치바람을 몰고 올라선 분들이기에 그러지 않았나 싶다.

 아이들 키우고 가르치는 문제에 왜 혼탁한 정치가 끼어드나. 지금의 교육계는 정치투쟁이 내뿜는 고농도 낙진에 잔뜩 오염돼 있다. 그 오염의 반감기(半減期)는 몇 년, 몇 십 년이 될지 모른다. 학부모로서 분할 따름이다. 아이들이 무슨 죄인가.

 선거로 교육감·교육위원을 뽑는 한 앞으로도 비슷한 사례가 없으리란 보장이 없다. 선거엔 돈이 많이 든다. 후보로 나선 이상 여기저기 아쉬운 소리 안 할 수가 없다. 단일화에 양보해준 경쟁자에게 ‘권리금’ 조로 얼마간 사례하는 게 관행화할 위험도 있다.

 그렇다면 교육감·교육위원 선거만큼은 일반선거와 달리 운영할 만하다. 선거제도를 바꿔 아이들에게도 투표권을 주자는 얘기다. 교육은 아이들의 문제이자, 미래의 문제다. 다음 세대를 짊어질 아이들의 인생을 좌우한다. 그래서 청소년과 어린이는 물론 젖먹이에까지 투표권을 허용하자는 거다.

 아이들마저 정치판으로 끌어들이자는 거냐, 하며 흥분하진 말자. 아이들이 직접 투표하게 하자는 게 아니다. 딸은 어머니, 아들은 아버지에게 각각 대신하도록 하면 된다. 미성년 자녀를 둔 가족은 아이 수만큼 추가적인 투표권을 갖는 셈이다. 가족회의를 통해 아이들 의견을 반영하거나, 아니면 부모가 알아서 투표해도 무방하다. 교육의 직접적인 당사자인 아이와 학부모의 발언권을 좀 더 높여주자는 취지다.

 모든 선거를 다 그렇게 하자는 것도 아니다. 교육과 관련한 선거에 한해 도입해 보자는 얘기다. 교육감·교육위원 선거 외에도 급식과 같은 교육 이슈를 놓고 벌이는 주민투표에도 적용할 만하다.

 당장 평등선거 원칙에 어긋난다고 펄쩍 뛰는 사람이 많을 거다. 그러나 교육과 관련한 지역투표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와는 차원이 다르다. 제한된 지역에서, 제한된 이슈를 놓고 하는 투표이므로 민주주의의 틀을 훼손하지는 않을 거다.

 오히려 후보자들이 정치투쟁보다 아이들과 학부모의 이익을 우선시하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표를 얻으려면 아이와 학부모를 위한 정책 개발에 더 힘을 쏟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표의 비중이 커지는 학부모들은 보다 신중하게 생각할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 새로운 게 아니다.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는 1994년 포린 어페어스의 기고문에서 1인 1표가 반드시 이상적이진 않다고 했다. 그는 40세 이상에게 2표를 주면 더 나은 제도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이들을 위해 보다 진중하게 투표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미국의 인구학자 폴 드메니도 비슷한 제안을 했다. 그는 미래를 위한 제도개혁 차원에서 어린이에게 투표권을 주자고 했다. 권리행사는 부모가 대신 하는 방식이다. 드메니는 이게 효과적인 저출산 방지 대책이라고 봤다. 물론 투표권 하나 더 얻으려고 아이 낳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아이와 부모를 위한 정책을 열심히 만들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저출산 방지 효과가 있다는 논리다.

 실제 1인 1표의 예외가 없지 않다. 서울대 총장 선거에서 교수는 1인 1표지만, 교직원들은 1인 0.1표로 계산한다. 해외에선 엄격한 제한을 두면서도 대리투표로 1인 복표(複票)를 허용하는 나라가 있다.

 그러니 발상을 바꿔보자는 거다. 억대의 돈을 선의로 주고받았으니 문제 안 된다는 발상의 전환처럼 말이다. 우리 교육 현실을 유권자의 힘으로 바꾸려면 그 수준을 훨씬 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남윤호 중앙SUNDAY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