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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서 국민가수 떠오른 그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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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정현은 ‘나는 가수다’ 에서 평균 순위 2.6위의 성적으로 명예 졸업을 했다. 7명의 출연자 가운데 최고 기록이다. 그는 “‘나는 가수다’를 통해 음악적인 근육이 단단해진 것 같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소녀의 꿈은 가수였다. 매일 거울을 보며 노래를 부르고 인터뷰 연습도 했다. 마치 카메라가 돌고 있는 듯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리나 박(Lena Park), 당신은 어떻게 최고의 가수가 됐습니까?” 상상만으로도 짜릿했다. 197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태어난 한국인 2세. 소녀의 당찬 꿈은 이뤄졌을까.

 지금 서른다섯의 ‘리나 박’은 한국에선 ‘박정현’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98년 데뷔한 14년차 가수다. 올 상반기 MBC ‘나는 가수다(나가수)’에서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였다. 그가 방송에서 리메이크 한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조용필)’ ‘나 가거든(조수미)’ 등은 원곡의 인기를 훌쩍 넘어섰다. 각종 CF·방송 프로그램도 슬슬 장악하는 중이다.

 박정현이 가수를 꿈꾸며 한국으로 건너온 게 15년 전이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조차 어눌했던 동포 2세. 소녀는 15년 만에 자신의 꿈을 이뤘다. 지금 한국에서 박정현을 ‘최고의 스타’라 부르는 걸 주저할 이는 없다.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제 인생을 소설에 비유한다면 지금이 아마 클라이맥스 대목일 겁니다.”

 문득 궁금해졌다. 클라이맥스를 써내려 가고 있다는 ‘소설 박정현’은 지금껏 어떻게 전개돼 온 걸까. 박정현은 지금까지 그를 떠받쳐온 문구 3개를 꺼내 들었다.

 

 #제1장 : 비 더 베스트(Be the best)!

 박정현의 부모는 결혼하자마자 미국 LA로 이민을 떠났다. 아버지는 목사로, 어머니는 간호사로 일하며 뒷바라지 했다. 소녀 박정현은 또래에 비해 뛰어난 면이 많았다. 먼저 노래 실력. 청소년 대상 각종 노래 대회에서 대상을 휩쓸고 다녔다. 아버지는 그런 그가 내심 자랑스러웠다.

 “아버지는 늘 제가 노래하는 모습을 비디오 카메라로 찍었어요. 손님이 오면 그걸 틀어서 자랑하시곤 했죠. 아버지 덕분에 자연스럽게 제 노래 실력을 가다듬을 수 있었죠.”

 하지만 ‘가수가 되고 싶다’는 말을 꺼낼 순 없었다. 부모님은 그가 변호사가 되길 바랐다. 입버릇처럼 부모님은 말했다. “비 더 베스트! 비 넘버 원(Be number one)!” 그 말을 거스를 수 없었다. 소녀 정현은 늘 염려했다. “성적이 형편 없으면 매맞을지도 몰라.” 끝내 그는 초·중·고를 거치며 딱 한 과목을 제외하곤 모두 ‘A’ 학점을 받았다.

 그렇다고 가수를 포기한 건 아니었다. 학교에선 우등생으로 살았지만, 집에 돌아오면 홀로 노래 연습을 했다. 그러다 대학 지원 때 도발했다. 하버드대에 진학할 만큼 뛰어난 성적이었지만, 가정 형편상 멀리 동부에 있는 학교에 갈 순 없었다. 그래서 택한 게 캘리포니아대 LA캠퍼스(UCLA) 연극영화과다.

 -부모님 설득이 어려웠을 텐데요.

 “아버지 앞에서 프리젠테이션까지 해가며 설득했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님 말씀을 거역한 거죠. 가수가 되기 위해선 예술 계통으로 진학해서 독립해야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제2장 : 리터러처 인 마이 라이프(Literature in my life)

 UCLA 2학년 때인 1995년, 박정현은 한 음반제작자에게 발탁돼 한국으로 건너왔다. 98년 데뷔 앨범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0장의 정규앨범을 냈고, R&B 장르에서 화려한 보컬을 선보이면서 실력파 가수로 자리잡았다.

 가수 활동 때문에 학교는 잠시 접어야 했다. 그러나 늘 공부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2001년 당분간 가수의 삶을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미국 아이비리그 최고 명문 콜럼비아대학교로 편입했다. 그곳에서 그는 영문학·비교문학 과정을 전공했다.

 -왜 학교도 전공도 바꿨나요.

 “사실 학비를 따로 모으고 있었어요. 기왕 다시 공부한다면 최고의 대학에서 좋아하는 문학을 공부해보자 결심했죠. 목숨 걸고 공부할 생각이었죠.”

 그는 콜럼비아대에서 주로 중세 영문학을 공부했다. 가수 생활을 병행하는 바람에 휴·복학을 거듭하다 지난해 9년 만에 졸업했다. 졸업을 앞두고 담당 교수가 그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리나 박, 중세 영문학 쪽에 뛰어난 소질이 있는 것 같은데 석·박사 과정까지 해보는 건 어떨까.”

 사실 욕심도 났다. 그의 졸업 성적은 눈부셨다. 휴·복학을 거듭하면서도 ‘마그나 쿰 라우데(Magna Cum Laude·상위 10% 우등)’로 졸업했다. 졸업과 동시에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이 가입돼 있는 미국 내 엘리트 사교 클럽 ‘파이베타카파’에도 가입했다.

 그러나 그는 학교에 남지 않았다. 다시 음악으로 돌아왔고, ‘나가수’란 프로그램을 만나 최고 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는 문학에 대한 관심과 글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꾸준히 책을 읽고, 매주 일요일마다 시간을 정해 두 시간씩 시·에세이 등을 쓴다.

 “이거 좀 보실래요?”

 박정현이 자신의 아이폰을 건넸다. 메모 어플리케이션에 김영하·조경란·김애란 등 한국 작가 목록이 담겨 있었다.

 -한국 문학에도 관심 많나요.

 “요즘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있어요. ‘나가수’ 때문에 글을 많이 못썼는데 다시 규칙적으로 쓰고 있죠. 음악으로 다 채워지지 못한 감성이 문학과 글쓰기로 채워지는 것 같아요.”

 #제3장 : 노 리그렛(No regret)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인터뷰 도중 자신의 삶을 종종 소설에 비유하곤 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소설로 따지면 정말 숨막히는 장면 아니에요?” 그래서 물어봤다.

 -‘소설 박정현’을 쓴다면 어떤 이야기가 담기면 좋을까요.

 “각 장마다 전혀 새로운 이야기면 좋겠어요. 저는 도전을 몹시 즐기거든요. 도전적인 일에 도무지 겁을 안 먹죠. ‘나가수’는 ‘소설 박정현’에서 가장 큰 터닝 포인트였을 거에요. 가장 혹독한 도전이었고 성공적으로 끝났으니까요.”

 ‘소설 박정현’의 결말은 어떨까. 그는 머뭇거렸다. “슬픈 결말일지 화려한 결말일지 지금은 알 수가 없죠.”

 그런데도 하나 분명한 건 있었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박정현이 품고 있는 ‘소설 박정현’의 마지막 문장은 이랬다. ‘노 리그렛(No regret·후회 없음).’

 그가 애잔한 발라드를 부르듯 말을 이었다.

 “비극이 되든 희극이 되든 음악으로 기록되는 내 삶의 결말에 절대 후회는 없을 겁니다. No regret!”

글=정강현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파이베타카파(The Phi Beta Kappa Society)=1776년 설립된 미국 내 엘리트 사교 클럽. 명문 대학 졸업생 가운데 성적과 사회 활동 등 다방면에서 우수한 인재들만 가입할 수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곤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부 장관 등 유명 인사들이 속해 있다.

박정현(영문명 Lena Park)은 …

출생 : 1976년 3월 23일 LA 출생

학력 : 1994년 미국 UCLA(연극영화 전공) 입학

2001년 미국 뉴욕 콜럼비아대(영문학·비교문학 전공)로 편입

2010년 ‘마그나 쿰 라우데(Magna cum laude·우등)’ 성적으로 콜럼비아대 졸업

미국 내 엘리트 사교 클럽 ‘파이베타카파’ 가입

데뷔 : 1998년 1집 ‘Piece’

대표곡 : ‘나의 하루’(1998) ‘사랑보다 깊은 상처’(1998) ‘몽중인’(1999) ‘꿈에’(2002) ‘비밀’(2009)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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