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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스티브 잡스와 소프트웨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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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김홍선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

80세에 가까운 원로 인문학자(人文學者)가 특강 중에 한 얘기다.

 “자료를 어떻게 찾아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어느 젊은 학생의 권고로 구글의 이미지 검색을 통해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호기심에 내 이름도 검색해 봤다. 수십 페이지의 자료가 나오는데 나도 못 본 내용이 있지 않은가?”

 그는 이런 경험을 말한 뒤 “참으로 신기했다. 내가 돈 한 푼 내지 않았고 따로 부탁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생생한 정보를 즉각 찾아 주다니…. 이런 게 바로 소프트웨어(SW)가 주는 혜택이 아니겠느냐”며 고마움을 피력했다.

 SW기업 구글이 하드웨어 생산자인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인수하고, HP가 PC사업을 분사하는 대신, 비즈니스SW에 진력하겠다는 메가톤급 뉴스가 연이어 터졌다. 휴대전화 제조 1위 업체인 노키아의 추락은 더 이상 화젯거리도 아니다. 이런 글로벌 기업들의 움직임은 우리에게도 큰 이슈다. 한국 경제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대기업의 사업 모델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열악(劣惡)한 SW 산업의 현실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 보면 SW가 중요하다는 데 사회적 이견이 있었던 적은 없다. 그럼에도 현실은 정반대다. 젊은이들은 SW 분야를 멀리하고, 이미 몸담고 있는 선배들도 권하지 않는다. 사정이 이러니 기업들은 인력이 없어 사업을 진행하지 못할 정도가 돼버렸다. 일자리가 부족하다면서도 SW 쪽으론 사람이 가지 않는 아이러니는 우리 사회의 당면과제다. 이를 해결하려고 각종 인센티브, 연구개발비 지원, 산업 육성 등 다양한 대책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정책적 해결책에 앞서 SW 기피의 본질적 원인을 직시해야 한다. 도대체 왜 그럴까.

 일상 중 SW가 사용되는 모습을 흔히 본다. 하드웨어에 탑재된 SW, 각종 프로젝트를 위해 개발된 SW 등. 하지만 SW 자체가 사업의 중심이 된 적은 거의 없다. 그렇다 보니 하드웨어 비용 처리가 우선이어서 SW는 제값 받기가 힘들다. 한편 SW 공정은 모든 사업의 마무리인 까닭에 개발자들은 으레 마감일을 맞추느라 과로를 하게 십상이다. 때론 기술적으로 별 의미 없는 무리한 요구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로 인한 소외감은 SW업계가 짊어진 고질적 병폐다.

 정보기술(IT)은 사업 생산성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각 조직 내에서 IT의 역할과 위상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인터넷으로 인해 그 영향력은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수준이 됐다. 그 IT의 핵심에 SW가 있다. 오늘날 사업 모델, 제품과 서비스의 효율성과 고객 친밀감(親密感), 최적의 프로세스를 좌우하는 것은 다름아닌 SW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창업자는 2007년 아이폰을 처음 선보이는 자리에서 “SW를 진심으로 고민하는 사람은 자기만의 하드웨어를 만들어야 한다”라는 앨런 케이의 주장을 인용했다. 자신이 꿈꾸는 SW를 구현하기 위해 그에 걸맞은 휴대전화를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그가 구상하는 사업의 중심에는 언제나 SW에 대한 애정이 굳게 자리해 있다.

 실제 오늘날의 IT 산업은 SW가 하드웨어를 이끄는 구조다. 이런 환경 변화에 직면한 하드웨어 중심의 국내 대기업들은 근심이 클 것이다. 하지만 이럴수록 조급하게 일개 제품이나 기술에 매달리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그보다는 우리가 사는 사회의 현상과 변화를 진지하게 통찰하는 데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SW는 단지 IT의 부속물이 아니다. 전체 산업을 이끄는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거대한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핵심(核心)이다. 그런 만큼 이제부터라도 세상을 보는 관점의 중심엔 SW가 있어야 한다. 그런 인식의 전환을 바탕 삼아 차분히 혁신을 실천해 간다면 현재의 상황은 위협이 아닌 기회가 될 수 있다.

김홍선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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