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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철 "나는 깃대, 깃발 역할 하게 되면 안 교수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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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서울대 교수와 평화재단 이사장 법륜 스님, 박경철 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오른쪽부터)이 25일 수원의 경기 문화의전당에서 열린 ‘청춘콘서트’에서 대담 강연을 하고 있다. 조용철 기자

지난 25일 오후 7시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경기 문화의전당’ 대공연장. ‘벤처 신화’ 안철수 서울대 교수(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와 ‘시골 의사’ 박경철 경북 안동 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이 나란히 섰다. 두 사람의 순회 대담 강연인 ‘청춘콘서트’가 열린 것이다. 이 자리에서 초청 강사인 평화재단 이사장 법륜 스님이 돌발 질문을 꺼냈다. 안 교수가 청년들의 사회 참여를 촉구한 직후였다.

안 교수= 미국 퀸즈라는 도시에서 젊은 여성이 새벽에 강도를 당한 사건이 있었다. 비명 소리를 듣고 아파트단지에서 30여 명이 불을 켜고 창밖을 내다봤지만 30여 분이 지나도 아무도 내려가지도, 신고하지도 않았다. 결국 강도가 다시 와서 여성을 찔러 죽였다. 왜 이렇게 됐는가. 누구도 움직이지 않아서다. 여러분이 ‘나 하나로 되겠나’라거나 ‘나 말고도 많다’라고 생각하면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법륜 스님=그럼 누구도 내려가지 않는다면 (안 교수가) 먼저 내려가서 움직이면 어떻겠는가. 그러면 다 따라 내려갈 것 같다.

안 교수=….(계면쩍은 웃음)

법륜 스님이 안 교수를 상대로 현실 정치에 뛰어들 의향이 있는지 에둘러 물은 것이다.

안 교수와 박 원장의 예사롭지 않은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기존 정치권에는 없는 대중적인 흡인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10대부터 30대까지 젊은 층 사이에선 안 교수를 ‘롤 모델’로 삼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날 청춘콘서트에도 1300여 명이 좌석을 가득 메웠다.

6월 29일 대전에서 시작해 이날 수원까지 전국 19곳을 돈 이 대담 강연은 트위터ㆍ인터넷ㆍ입소문만으로 총 2만7000여 명이 몰렸다. 인터넷(cafe.daum.net/chungcon)으로 접수하는 강연 신청은 모두 ‘당일 마감’이라는 진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다음 달 9일 대구 경북대에서 열리는 강연의 신청을 지난 26일 접수했을 땐 신청이 폭주해 홈페이지가 다운됐다. 강연 준비와 행사 비용 조달도 ‘풀뿌리 자원봉사’와 자발적 모금으로 이뤄진다. 자원봉사자 ‘희망 서포터스’에 25일까지 전국에서 1773명의 젊은이가 참가했다. 25일 수원 강연에선 700만원가량이 모금됐다고 한다.

리더십은 나를 따르라 아닌 공감 능력
두 사람의 흡인력은 이날 강연장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났다. 2시간20분간 장래를 고민하는 젊은이들의 눈과 귀를 붙잡았다.

안 교수=(제가) 초등학교 때 60여 명 중 30등을 했다. 잘해야 ‘우’고 대부분 ‘미’였다. 물론 ‘수’도 성적표에 하나 있었다. 제 이름에 하나 있었다.(폭소)

박 원장=그래요? 그런데 20대에 (단국대에서) 최연소 의대 학과장 했잖아요. 여러분 재수 없죠? (폭소)

두 사람은 사회참여성 발언도 이어갔다.

안 교수=의대 재학 시절 의료봉사를 나갔는데 사회안전망이 없으면 사람으로서의 존귀함을 잃는다는 걸 처음 알았다. 부모 없는 초등학교 5학년 손녀가 신문을 팔아 할머니 생계까지 책임졌는데 어느 날 가 보니 상가(喪家)가 됐다. 손녀가 힘겨워 가출하며 할머니가 굶어 죽었다. 경쟁 사회라도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은 필요하다.

박 원장=여러분이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의 국회 청문회 답변에 화를 내는 이유는 조 회장에게 공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사망 근로자들에 대한) 비통함을 담아 답변했다면 돌을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공감이) 안 되는 게 여의도나 광화문에 계신 분들이다.

안 교수=공감 능력이 21세기 리더십의 기반이다. 과거 리더십이 ‘나를 따르라’였다면 지금은 대중에게서 온다. 대중이 리더십을 선물로 주는 것이다. 이를 모르고 행동하는 모습 많이 보잖아요. 시대착오적인 사람들이다.

두 사람이 정치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자신들의 ‘성공 스토리’와 함께 기성세대와의 ‘차별화’에 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요즘 20대는 단군 이래 최대의 스펙을 갖췄다는데 사회 진입조차 쉽지 않은 현실에 절망한다”며 “두 사람은 불안한 청춘들의 갈증을 도전과 희망이라는 키워드로 채워주고 있다”고 했다.

의사라는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벤처사업에 도전해 안철수연구소를 일궈낸 안 교수, 의사로서는 물론 주식투자에서까지 실력을 보인 박 원장 모두 성공 모델로 평가된다. 또 두 사람은 쉽게 기득권에 편입될 수 있는데도 권력과 강자에 비판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25일 강연 현장에서 만난 젊은이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스무 살에 대학 첫해를 우울하게 보냈다. 이분들에게서 열정을 찾을 것 같았다.”(유정아ㆍ20ㆍ여대생) “우리 사회의 상대적 박탈감이나 열등감을 진지하게 얘기하는 분들이다.”(이현구·31·직장인)

이런 소구력은 기존 정치인들에게 없는 자산이다. 두 사람이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는 이유다. 실제로 여의도 정가에선 안철수 교수를 10·26 재·보선 때 서울시장 후보로 영입하려는 물밑 움직임이 있다.

두 사람에게 전국을 돌며 대담 강연을 하는 청춘콘서트를 하자고 제안한 이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평화재단 평화교육원장)이다.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의 브레인이었다. 윤 전 장관은 “두 분은 원하건 원치 않건 현실에 참여할 책임이 있다”며 “이제는 말에 그쳐선 안 되고 젊은이들의 에너지를 바탕으로 사회적 모순을 바꾸는 정치적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 정치권은 청춘의 불만을 이해하지도, 채워주지도 못한다. 지금 제3의 공간이 넓게 열려 있다”고 윤 전 장관은 제3정당론까지 내놓는다.

박 원장도 “사람마다 역할이 있고 나는 깃발보다 깃대가 어울린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아니다. 깃발의 소양은 안 교수에게 있다”며 안 교수를 거론한다.

두 사람이 현실 정치에 뛰어들 경우 이는 새로운 정치 실험이다. 대담 강연이라는 비정치적인 방식으로 바람을 만들고, 지역 구도나 줄 세우기가 아닌 젊은이들과의 소통 능력을 리더십의 기반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안 교수도 고민의 흔적을 내비쳤다. 그는 “많은 분이 정치적인 역할을 고민하라고 말하지만 내게 그런 역량이 있는지, 준비가 돼 있는지 확신은 없다. 정치는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나 혼자 바꿀 수 없다고 포기하는 게 아니라 청춘콘서트처럼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하고 있다”고 했다.

박 원장은 이를 ‘반죽론’으로 설명했다. “현재로선 밀가루에 물을 뿌려 반죽을 만들듯 흩어진 개인들을 반죽으로 뭉쳐 정치권이 좋은 빵을 만들도록 견제하고 독려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내년 총선(4월)·대선(12월)이 다가올수록 두 사람에 대한 주목도는 더욱 높아질 수 있다. 윤 전 장관은 “두 분의 고민은 앞으로 더 깊어질 것”이라고 했다.

채병건 기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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