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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도 ‘흔들’ … 9·11 악몽에 한때 패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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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23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 지진이 발생하자 건물에 있던 주민들이 시내 프리덤 광장에 대피해 있다. 이날 오후 1시53분 워싱턴을 비롯한 동부 지역 일대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다. [워싱턴=연합뉴스]


23일 오후 1시51분(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북동쪽으로 다섯 블록 정도 떨어진 한 레스토랑 1층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건물 전체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다. 10초가량 진동이 계속됐다. 좌우로 움직이는 걸 보면 지진 같은데…. 워싱턴에서? 황급히 밖으로 나와 백악관을 향해 걸어갔다. 거리엔 이미 건물에서 뛰쳐나온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교통 신호등은 기능을 잃었다. 빨간불만 깜박거릴 뿐이었다. 방향이 다른 차들이 엉키기 시작했다. 보행자들도 끼어들었다.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혹 테러 시도라도? 10년 전 워싱턴에서 맞았던 9·11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곧 테러가 아닌 지진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미국의 심장부인 수도 워싱턴이 ‘한낮의 지진’ 공포에 떨었다. 워싱턴에서 남서쪽으로 148㎞ 떨어진 버지니아주 미네랄 지역의 지하 800m 지점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미 지질조사국(USCS)이 밝혔다. 워싱턴 주변에서 발생한 지진 중 최대 규모였다. 지진은 버지니아주와 조지아·오하이오·뉴욕주를 비롯해 캐나다 토론토 등에서도 감지됐다.


 이날 지진으로 백악관과 의회 등 주요 건물에서는 직원들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특히 9·11 테러 당시 공격을 받았던 펜타곤(국방부)에선 폭탄 테러 공격을 우려해 비상대피령이 내리는 등 한때 긴장에 휩싸였다.

 이번 지진으로 1907년에 지어진 워싱턴 국립대성당의 첨탑 3개가 부서졌으며, 워싱턴 유니언 스테이션 등의 건물 벽에 균열이 생겼다. 펜타곤에선 수도 파이프가 부러져 복도 일부가 폐쇄됐다. 하지만 사망하거나 부상한 사람은 없었다.

 지진이 발생하자마자 미 연방항공청(FAA)이 모든 항공기의 이착륙을 30여 분간 중단시켜 연착으로 인한 혼란이 벌어졌다. 미국 내 주요 철도망인 암트랙은 지진 이후 철로 점검을 위해 볼티모어~워싱턴DC 간 열차를 감속 운행했다.

 진앙에서 약 16㎞ 떨어진 ‘노스 애나’ 원자력발전소는 지진 직후 안전시스템이 가동을 중단했다. 곧바로 비상발전기가 작동돼 별다른 이상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밝혔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은 지진 발생 당시 여름 휴가지인 마서스 비니어드 별장에서 골프를 즐기고 있었다. 성추행 혐의를 벗은 도미니크 스트로스칸(Dominique Strauss-Kahn)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진 소동으로 여권을 돌려받지 못했다. 뉴욕 법원이 공소를 취하한 뒤 사이러스 밴스 검사가 기자회견을 하려는 순간 건물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러자 회견장에 있던 취재진과 검찰 관계자들은 일제히 밖으로 대피했다. 스트로스칸은 여권도 돌려받지 못한 채 귀가해야 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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