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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진·한상대, 검찰 기수문화 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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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본지 7월 28일자 2면.

검찰의 오랜 폐습 중 하나인 ‘기수(期數)문화’에 따른 사퇴 관행이 깨졌다. 지난 16일 검사장급 이상 검찰 간부 52명에 대한 승진 및 전보 인사가 발표(22일자 단행)된 이후 직·간접적으로 사의를 표했던 검사장급 간부들이 모두 검찰에 남기로 21일 최종 결론이 났다.

이는 권재진 법무부 장관과 한상대 검찰총장이 ‘고검장 승진에서 탈락해도 퇴진을 안 시키겠다’는 방침을 사전에 세우고 인사 발표가 난 후 거취를 고심하는 검사장들을 각개격파식으로 설득, 동의를 이끌어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권 장관과 한 총장은 “검찰총장의 사법시험 동기생이라고 해서 옷을 벗는 것도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은데 고검장급 인사에서까지 동기생들이 옷을 벗는 건 막아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한다. 이달 초 한 총장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전후해 차동민 전 서울고검장 등 한 총장의 사시 동기생 5명이 줄줄이 사표를 내고 검찰을 떠난 것을 두고 “시대착오적인 의리문화”라고 비판한 본지 보도(7월 28일자 2면)도 권 장관과 한 총장의 판단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두 사람이 설득에 나선 검사장급 간부는 대검 형사부장과 강력부장으로 각각 발령 난 곽상욱 부산지검장, 김영한 수원지검장(이상 사법시험 24회)과 대검 공판송무부장, 사법연수원 부원장에 각각 임명된 성영훈 광주지검장, 이재원 서울동부지검장(이상 사시 25회) 등이었다고 한다. 이들 중 곽·김 검사장은 사시 동기인 채동욱 대검 차장의 지휘를 받는 자리로 발령이 나자 사퇴를 심각히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성·이 검사장은 사시 후배 기수가 있던 자리로 발령이 나자 같은 고민을 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평생 검사를 하고 싶어도 후배들 눈치가 보여 나가는 잘못된 문화를 바꿔 보자. 조직을 위해 남아서 봉사해 달라”는 거듭된 설득에 “전반적인 조직의 뜻이 그렇다면 따르겠다”고 화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부의 한 인사 담당자는 21일 “이번에 한 명의 검사장도 사표를 내지 않고 같이 가게 된 건 권 장관과 한 총장, 그리고 어려운 결단을 내린 일부 검사장들의 합작품”이라며 “승진에 탈락한 검사장들을 대상으로 사퇴를 강요하던 잘못된 관행이 깨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사퇴 강요의 명분은 후배 검사들의 인사 숨통을 틔워준다는 것이 주였다. 하지만 요즘은 검찰 조직 연소화와 조직 경쟁력 약화의 주요인으로 지적받고 있다.

 이번 인사를 계기로 검찰 내부에선 기수문화에 대한 개선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대검의 한 검사는 “요 즘 검사들의 화두는 기수문화 문제”라며 “‘이번 조치는 관행 파괴 실험의 첫 단추로써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조강수 기자

◆기수(期數)문화=서열에 따라 승진 등이 결정되는 경직된 조직 문화를 일컫는 말. 검찰에선 사법시험 기수가 기준이다. 사시 동기생이 검찰총장이 되면 다른 동기생들이 사퇴하는 관행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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