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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카스트제도 옹호하고 토지개혁 반대했다? 간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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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마하트마 간디
불편한 진실
E M S 남부디리파드 지음
정호영 옮김, 한스콘텐츠
291쪽, 1만5000원

“나는 카스트제도(승려계급 브라만에서 천민 수드라에 이르는 인도 신분제)를 인생의 법칙이라고 믿는다. 또한 자신이 속한 카스트를 탓하지 않는 게 좋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겸양의 표시다.”

 인도 독립운동의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1869~1948)는 생전에 그렇게 말했다.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개명된 요즘 세상에 악습 중의 악습인 신분제를 극력 옹호했다는 게 좀 어리둥절하다. 더구나 간디는 식민제국 영국의 인종차별에 반대해 독립운동을 일으켰고, 지금은 정치인을 넘어 성인 비슷하게 추앙 받고 있지 않던가? 그 동안 많은 책들이 ‘성인 간디’에 초점을 맞췄다면 『마하트마 간디 불편한 진실』은 전혀 다른 각도에서 간디에 접근한다.

마하트마 간디

 즉 ‘정치인 간디’의 민얼굴을 살펴 본다. 오랜 활동 중 때론 시대착오적 정치철학을 펼쳤던 사람, 그래서 여러 얼굴을 가진 모순된 인물로 비판한다. 간디의 대명사로 통하는 비폭력 운동만 해도 그렇다. 그는 “수많은 인도 젊은이들을 제국주의 총알받이로 보내는 것에 양심의 가책이라고는 전혀 없었던”(69쪽) 지도자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을 위해 나가 싸우라고 징집을 권유했던 것이다. 그때 참전해 죽어간 징집병은 무려 9만여 명이다.

 물론 명분은 있었다. 영국을 그렇게 도운 다음 인도의 자치를 호소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벌써 자신의 비폭력 철학에 흠집이 생겼으며, 간디가 근대적인 것의 기본을 반대했던 인물이란 지적을 면키 어렵다. 사실 비폭력 철학은 기준이 애매모호하다. 1909년 7월 인도의 열혈파 젊은이 딩그라가 영국의 제국주의자 커즌 와일(인도 담당 정치보좌관)을 암살하려 했는데, 그때 간디의 태도는 실로 엉뚱했다.

 ‘인도의 안중근’ 딩그리를 향해 맹목적 애국주의자라고 비판했던 게 간디였다. 참고로 딩그리의 암살 시도 2개월 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데 성공했다. 결정적으로 간디는 토지개혁에 끝내 반대했던 사람이다. 인도에 지금껏 카스트제도가 남아있고, 토지개혁이 미뤄진 것도 그 때문이다. 이에 불만을 품은 공산주의자들이 현대 인도에 수두룩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토지개혁이란 숙제는 한국의 경우 이승만 정부가 1940년대 후반 깔끔하게 이뤄내지 않았던가. 대만·일본·인도네시아도 그 무렵에 모두 개혁을 끝냈다. 번역자의 말이 흥미롭게 읽힌다. “인도에서 이승만이 다시 태어나 공산화를 막기 위해 토지개혁을 하자고 외쳤다면 공산주의자라고 비난 받거나, 마오이스트라는 오명을 쓰고 감금되었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20세기 인도를 대표하는 좌파 정치인이다. 본래는 열렬한 간디주의자였으나 훗날 사회주의운동에 투신했다. 책이 첫 선보인 것은 1958년. 반세기 전에 나왔지만, 낡았다는 느낌은 없다. 저자가 1998년에 쓴 글 두 꼭지를 더해 일부 아쉬움도 덜고 있다. 더욱이 이 책은 중용을 지키는 미덕이 돋보인다. 정치노선을 달리 했던 간디가 ‘인도의 국부(國父)’임을 결코 부인하지는 않는다. 독립운동이란 목표에 인도 민중을 단결시킬 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이란 평가다. 어쨌거나 간디 비판서로 대표성을 가진 것은 분명하다.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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