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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대기업 ‘상생 스트레스’ 벗어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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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이재술
딜로이트 총괄대표

공정사회, 동반성장에 이어 공생발전(共生發展)의 화두가 제시됐다. 공생발전(Ecosystemic Development)의 개념은 ‘경제성장과 환경보호, 경제발전과 사회통합 및 삶의 질 향상, 국가와 개인의 발전이 함께 가능한 새로운 발전 체제’로 설명된다. 시장경제가 복지, 상생과 어우러져 진화한 새로운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선진 기업에서는 오래전부터 지속 가능 또는 생태적 경영의 개념을 도입해 시장은 물론 전체 사회구성원과 공생하는 방안을 실천해 오고 있다. 이러한 공생경영이야말로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기업 발전을 위한 지름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대기업 역시 이러한 흐름을 외면해 오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최근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 이슈가 부각되기 전인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이미 외부 이익단체들의 다양한 요구에 대응하면서 일정 부분 공생발전을 도모해 온 것이 사실이다. 나름대로 상생경영을 해왔다고 생각하는 대기업들은 최근의 여론에 섭섭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이르러 경제발전 단계의 변곡점을 맞고 있는 현 시점에서 대기업 경영자들에게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시각전환(Reframing)이 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완전히 다른 논리와 가치체계로 새로운 각도에서 문제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사실 객관적인 자료분석을 토대로 한 합리적 의사결정에 익숙한 경영자들에게 이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외부단체와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푸는 일은 심리적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이며, 더욱이 실행할 수 있는 주도권을 갖지 않은 상황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열린 마음이다. 이익단체의 입장이 아무리 비이성적으로 보일지라도 마음을 열고 그들을 이해하고 협상에 임해야 하는 것이 경영자의 자세다. 현명한 경영자는 외부의 주장과 요구에 창의적이고 긍정적으로 대응한다. 외부단체의 대의명분과 행동양태, 권력기반을 주기적으로 파악해 무엇을 얻고 무엇을 내주어야 할지 판단해야 한다.

 제대로 쉴 틈조차 없는 대부분의 경영자는 국회나 정부 내 각종 위원회 등 이른바 공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관에 대한 대응이 서툴게 마련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로비스트가 이 역할을 대신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공적 영역의 개입을 반갑지 않은 것으로 치부(置簿)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오히려 사안에 따라 경영자가 안고 있는 과제를 해결하는 데 정치권과 관료를 ‘활용’하려는 자세전환도 필요하다.

 외부로부터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기 전에 사전에 이를 인지하고 완화시키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회적 이슈로 비화해 여러 이해관계자의 이해가 대립되는 상황이 되면 해결은 더 어려워진다. 실무팀 위주의 위기에 대한 사전대응시스템을 마련하되, 최고경영자가 중장기적 관점에서 대두될 이슈를 전망하고 근본적 해결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인문, 예술 등 기업 경영과 직접 관련 없는 분야의 인사들과 어울리면서 공생발전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도 있다.

 기업 입장에서 외풍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이다. 환경·소비자·노동자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각종 단체들의 압력이 늘어날 것이고,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과 정부의 입김 또한 거세질 것이다.

 이럴 때 기업은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전통적 사고방식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소비자·종업원·정부 등 여러 이해관계자와 유기적(有機的)으로 연결된 공생 시스템을 기반으로 사회구성원 전체의 이익과 부를 최대화시키는 방향으로 사고방식을 전환하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그 길이 종국적으로 주주의 장기적·지속적 이익 극대화를 실현하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이재술 딜로이트 총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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