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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60년 성취 폄하 교과서 고칠 길 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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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해 서울고법이 17일 “교과부의 수정 지시는 적법하다”고 판결함으로써 ‘교과서 좌편향 논란’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2008년 교과서 좌편향 논란이 벌어졌을 당시 보수성향의 교육·사회단체 회원들이 시위를 벌이며 반대한민국 교과서 추방을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고등법원(행정1부 김창석 부장판사)의 17일 판결은 교과서에 대한 국가의 관리·감독 기능을 새삼 환기시켰다.

 재판부는 “교육과학기술부의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수정지시는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는 2003년 발행 이후 우리 사회에 ‘교과서 좌편향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고교 근현대사 교과서는 국정(國定)이 아닌 검정(檢定) 체제로 만들어졌다. 교과부가 주체가 돼 1종만 만드는 국정과 달리 검정 교과서는 일반 출판사가 만들어 일정한 기준만 통과하면 교과서로 인정되기에 여러 종이 존재한다.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도 교과부의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 6개 종 가운데 하나였다. 이번 판결은 검정 교과서라고 해서 국가의 지휘감독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아님을 확인시켰다. 검정을 통과해도 국가의 수정 지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교과서 검정 권한에는 본질적으로 검정된 교과서 내용을 추후 교육목적에 적합하게 수정하도록 명령할 수 있는 권한도 포함된다”는 판결은 그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현재 고교에서 쓰이는 한국사 교과서도 검정체제로 만들어졌다. 내년에 새로 만들 고교 한국사 교과서도 검정체제다.

 금성교과서에 대한 비판은 대한민국 60여 년의 성취를 폄하하고 오히려 북한에 온정적인 서술 경향을 보인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한 교과부는 2008년 11월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에 29개 항목의 수정 지시를 내렸다. 이에 대해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를 포함한 금성출판사 교과서 공동저자 3명이 교과부 장관을 상대로 수정명령 취소소송을 냈다. 지난해 9월 1심 재판부는 “수정은 실질적으로 검정과 같으므로 교과용 도서 심의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 위법하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고법 판결은 1심 판결을 뒤집으며 교과서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심사권을 인정한 것이다. 교과부가 수정 지시한 29개 항목에 대해서도 “적절한 지시”라고 판단했다. <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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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수정지시를 받은 항목 가운데 “남한에서 정부가 세워진다면 이는 북한 정부의 수립으로 이어질 것이 확실하였다. 이제 남과 북은 분단의 길로 치닫게 되었다”는 표현이 있다. 고법은 “이러한 표현으로는 남한에서 정부가 세워져 이것이 원인으로 작용하여 북한 정부의 수립으로 이어지게 되고 남과 북이 분단된 것처럼 오해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소송을 낸 김한종 교수와 통화를 시도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서울대 박효종(국민윤리과) 교수는 “국정이든 검인정이든 교과서에 대한 최종 책임은 국가에 있는 것이다. 문제는 역사관이다. 일반 논문이라면 얼마든지 자신의 역사관과 소신을 펼 수 있을 것이다. 교과서는 다르다. 자의적 소신만으로 교과서를 쓸 순 없다. 교과서에 대한 국가의 심사권을 인정한 이번 판결은 당연한 상식을 확인한 것이다”고 말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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