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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비오는 날 새벽 조깅 장면 못찍어 질책...DJ 카메라 보이면 수행원에 지팡이 넘겨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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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일상은 역사의 기록이다. 이를 사진으로 남기는 게 청와대의 ‘전속사진사’다. 홍성규(44·사진)씨는 김영삼(YS) 대통령의 집권 2년차였던 1994년 6월부터 김대중(DJ) 대통령이 임기를 마친 직후인 2003년 3월까지 전속사진사로서 YS·DJ를 지근거리에서 촬영했다. 사진에 관한 한, 그는 두 사람의 내밀한 모습을 가장 잘 아는 청와대 식구였다. 그가 사진에 얽힌 YS·DJ의 일화를 공개했다.

-정치 스타일로 보면 YS는 정면 돌파, DJ는 심사숙고로 압축된다. 사진을 대하는 태도는 어땠나.
“두 분 모두 정치 생활을 오래하셔서 카메라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촬영에는 YS가 더 적극적이었다. 95년 11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행사 마지막 날 YS가 새벽 조깅하는 사진을 촬영하지 못했다. 비가 내려 조깅 일정이 취소됐다고 착각한 비서진의 실수였다. 귀국 직후 YS가 집무실에서 회의하던 도중 ‘대통령은 비를 맞으며 뛰는데 직원들은 사진도 찍지 않았다’며 역정을 내셨다. 반면 DJ를 밀착 촬영하다 혼난 적도 있다. 2000년 7월 말 DJ 내외가 청남대 휴가를 갈 때 대통령의 인간적인 모습을 담기 위해 나도 내려갔다. 과실나무를 배경으로 찍고 있는데 DJ가 ‘자네 여기까지 따라왔나. 이제 그만 좀 찍지’라고 말해 촬영을 중단했다. 결국 대통령 시야에서 안 보이는 곳으로 멀찍이 떨어져 망원렌즈로 내외를 찍었다.”

-촬영 때 금기는 없었나.
“그런 건 없었다. 단 DJ는 청와대 내부 행사에서 동선이 길 때 가끔 지팡이를 짚었다. 그런데 사진기자나 내가 멀리서 보이는 순간 옆의 수행원에게 지팡이를 넘겼다. YS 땐 집권 초 염색을 해서 백발을 가렸다. 그러나 후반기엔 염색하지 않은 모습의 사진을 내보냈다. YS의 흰머리를 보여 주며 ‘대통령이 고뇌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전달하려는 참모진의 판단이 깔려 있었다.”

-촬영 때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면.
“DJ는 APEC 등 다자간 정상회의에 참석할 때 역동적인 사진이 나오지 않아 고생했다. 다자간 정상회의에선 대부분 알파벳 순서로 원탁에 앉거나 각국 정상들이 도열해 기념촬영을 하는데 DJ는 항상 미리 정해진 자리에 가서 조용히 서거나 앉았다. 사진이 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98년 11월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땐 회의장에 입장하는 DJ에게 내가 무례하게도 ‘대통령님, 손을 흔들어 주세요’라고 큰 소리로 외치기도 했다. 반면 YS는 정해진 자리 배치에 개의치 않았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나 장쩌민(江澤民·강택민) 중국 국가주석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대화를 나눴고 자연스레 두 분 사진이 나오도록 했다. 이러다 다른 나라 기자들이 자국 정상과 클린턴 대통령이 함께 있는 장면을 잡지 못해 속을 태우기도 했다.”

-일상생활 사진은 어땠는가.
“2000년 1월께 청와대 관저에서 갑자기 오라고 연락이 와 본관으로 뛰어 올라갔더니 이희호 여사가 ‘눈이 예쁘게 왔다’며 ‘대통령과 사진을 함께 찍고 싶다’고 했다. 관저를 배경으로 DJ와 이 여사가 팔짱을 낀 기념사진을 찍었다. 반면 YS는 ‘경상도 사나이’였다. 손명순 여사에 대한 ‘애정’을 공개하는 데 익숙지 않았다. 손 여사도 영부인으로서 꼭 참석해야 할 행사 외엔 나서는 걸 피했다. YS가 DJ처럼 다정한 포즈로 부부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내겐 없다.”

채병건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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