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 강간 전범 '50호 증인'

중앙일보

입력

"매일 버스에서 마주쳤던 이웃이 오히려 먼저 음흉한 표정으로 다가 왔습니다."

29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전범재판소에 50번째 증인으로 나온 24세의 여성은 8년전의 끔찍한 과거에 대해 증언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지난 1992년 사라예보 남동부 포카시 수용소에서 세르비아계 군인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한 보스니아계 여성 중 한명. 그녀는 3월 20일부터 시작된 인류 역사상 처음 열린 전시 (戰時)
강간 행위에 대한 국제재판에 역시 피해자인 어머니와 함께 증언자로 참석했다.

LA타임스는 30일 그녀의 증언은 법정 한켠에 마련된 칸막이 뒤에서 음성변조를 통하여 이뤄졌으며 방청객과 보도진에게 신분이 공개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녀는 어느날 집에 들이닥친 군인들이 당시 50대인 어머니와 함께 수용소로 싣고 갔고 그곳에서 군인들의 손가락이 자신을 가리킬때 마다 기계적으로 성의 노예가 됐다. 그녀는 50여명의 여성과 함께 수용소에서 보낸 그해 여름 한철 동안 당한 폭행의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이날 법정에서 꽂꽂히 고개를 들고 무죄를 주장한 3명의 피고 드래골유브 크나라크 (39)
.라도미크 코바크 (38)
.조란 부코비크 (44)
중 2명을 가해자로 지목했다. 부코비크가 첫 성폭행을 했고 얼마 뒤 크나라크도 폭행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세르비아 군인들이 보스니아 여성들을 수용소 밖으로 끌고 가기도 했는데 자신도 하룻밤에 3집을 돌며 밤새 폭행을 당하기도 했으며, 가해자 중에는 전쟁전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이웃들도 많았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칼을 목에 대고 미친 듯이 덮쳐 온몸에 피가 철철 흐른 적도 있습니다. 상처보다 그가 제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라는 것이 더 아프게 느껴졌다" 고 가장 아픈 기억을 되살리기도 했다.

그녀의 증언이 끝난 뒤 재판부는 전 유고슬라비아에서 1992년 2만명이 세르비아 군인들의 '인종청소를 위한 조직적인 강간 정책' 에 희생된 것으로 조사됐으며, 증인 중에는 3시간동안 15명의 군인에게 집단적으로 피해를 당한 12세 소녀도 있다고 밝혔다.

이 재판에 검사로 참여하고 있는 미국인 변호사 패크리샤 셀러스는 일본군에 의한 한국여성 등 단 한번도 단죄된 적이 없는 전시 (戰時)
강간의 역사를 언급하며 이번 재판이 " 역사의 분기점이 되어야 한다 "고 말했다.

이상언 기자 <joo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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