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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세에 한국 사시 합격 46년 후 워싱턴 변호사 합격한 주광일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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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스물 둘의 나이로 법조계에 입문한 전직 검사장이 46년 만에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다시 취득했다. 주광일(68·사진) 전 국민고충처리위원장(현 세종대 석좌교수)이 그 주인공. 최근 워싱턴DC 변호사 시험에 최종합격한 주 전 위원장은 8일 워싱턴DC 항소법원에서 변호사 선서를 할 예정이다.이번 워싱턴DC 변호사시험 합격자 중 최고령이다.

 워싱턴DC 변호사 시험은 미국 내에서도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미국 내 로스쿨에서 26학점 이상 이수 요건을 갖춰야 응시자격이 나오는 것은 물론, 주관식 문제가 많아 다른 주 변호사 시험보다 어렵다. 이번 시험에서도 응시자 중 합격자가 48%에 불과했다. 미국 내 변호사 시험 평균 합격률은 60%대다.

 1965년 제5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최연소 임관 기록을 세웠던 주 전 위원장은 검사 시절 특수수사통으로 이름을 날렸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당시 검시를 직접 맡기도 했다. 재임 중 엄격한 법 집행과 소신을 강조해 후배 검사들로부터 ‘주독(朱毒)’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주 전 위원장은 또 영어 실력이 뛰어났다. 70년대 중앙정보부가 로비스트 박동선씨를 통해 미 의회에 거액의 로비자금을 제공한 것이 밝혀지며 한·미 간 외교적 마찰로 비화된 이른바 ‘박동선 스캔들’ 때 진가를 발했다. 그는 조사를 위해 방한한 미 검찰의 조사 때 한국 측 통역을 맡았다. 1974년에는 미 국무부 초청으로 조지타운대, 조지워싱턴대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1998년 3월 서울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난 그는 제4대 국민고충처리위원회(현 국민권익위)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2001년 공직을 떠난 이후에는 경희대·세종대 등에서 강의를 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환갑이 지난 2006년 노스웨스턴대 로스쿨에서 석사(LLM)를 취득했다.

 예순이 넘은 주 전 위원장이 시험에 준비하게 된 것은 나이 들어서도 공부하고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셋째 딸 주희영(35)씨는 “아버지는 본래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분”이라며 “젊은 고시생 못지 않게 공부했다”고 전했다. 가족들에 따르면, 주 전 위원장은 시간을 아껴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며 법률 서적을 읽는 한편, 매일 새벽에 일어나 법률 영어를 공부하는 등 하루 4~5시간씩 자면서 공부했다고 한다.

 합격의 짜릿함을 맛본 ‘늦깎이 수험생’ 주 전 위원장은 12일 귀국해 가족들과 합격 파티를 가질 예정이다. 현재는 미국에서 유학 중인 막내 아들 성규(25)씨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현택 기자, 전희원 인턴기자(숙명여대 언론정보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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