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변리사법 개정 논란

특허 전쟁, 변호사만으론 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김성기
변리사

특허제도의 발상국인 영국은 법조 직역의 역사가 유구하고 법정변호사와 사무변호사로 업무 영역이 세분화돼 있다. 특허소송에선 변리사 자격만으로 침해소송 대리를 인정하고 있다. 세계 정치·경제의 강자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에서도 변리사의 소송 대리가 활발하다. 일본은 공동대리 제도다.

 미국의 특허변호사 제도는 이미 100여 년 전부터 시작된 로스쿨 제도하에서 과학기술자 출신의 법률가 집단이 두텁게 형성돼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현재까지의 4년제 법과대학 졸업생을 주축으로 하는 변호사나 이공계 대학 졸업생에게 특허 관련 실체법과 소송법을 공부시켜 뽑아놓은 변리사들 모두 혼자서는 특허소송을 수행하기에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아직 첫 졸업생도 내지 못한 우리가 미국식의 특허변호사를 양성해 특허전쟁에서 제대로 활약하게 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전문기술 지식에다 특허 관련 법은 물론 민사소송법까지 시험을 쳐서 통과한 전문 전투병들을 놔두고 이제 갓 훈련소를 마친 신병들로만 전투를 하자는 얘기가 아닐까.

 50년 전 변리사법 제정 당시부터 침해소송대리가 규정돼 왔다. 법률이 지켜지지 않는 위헌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 헌법재판소에 제소한 것이다. 변리사가 난데없이 소송대리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아닌 것이다. 세무사, 회계사, 관세사의 문제와 변리사 문제가 구별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허소송을 여러 번 맡아본 변호사들은 오히려 변리사의 기술 전문성과 그들의 소송대리 필요성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다. 특허소송에서 변리사를 보조인으로 할 수 있을 것이란 주장은 일제시대에 시행됐다가 1960년에 폐지된 소송보좌인 제도를 생각나게 한다.

 지금 국회는 변리사법 개정안을 심의하고 있다. 변리사법에 소송대리가 규정돼 있지만 법원의 관행 때문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 당사자가 변호사만 선임하고 변리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에는 변호사 단독대리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그 취지다. 변리사 혼자서 침해소송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특허소송의 당사자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4분의 3이 공동 소송대리 수행에 찬성하고 있다. 이름만 빌려주어 대리에 충실하지 못한 등의 부작용은 해당 변호사를 변호사 윤리규정에 따라 처벌하면 된다.

 우리나라에서 변호사는 변리사 자격 등록이 자동으로 가능하다. FTA에 따라 외국 변호사가 우리나라에서 특허 관련 업무를 수행하게 될 때에는 어떻게 될까. 특허침해 소송에서 빗장을 걸어놓아 변리사 대리를 금지해 놓고 외국 변호사들에게는 시장을 열어준다면 변리사만 배척하는 셈이 될 것이다. 변리사의 소송대리를 금지시켜 놓고 국제적 특허분쟁에 맞서라고 하는 것은, 족쇄를 채워놓고 전투를 하라는 것이다. 상대방 국가의 법정에선 기술 전문가와 법률 전문가가 모두 나와 자국의 기업을 돕고 있는데, 우리나라 법정에서는 우리 기업을 변론해 줄 변리사가 출정할 수 없게 해놓고, 첨단기술 특허전쟁에서 변호사만으로 이길 수 있을까.

김성기 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