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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백일 장군 동상을 묶은 쇠사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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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호 02면

경남 거제시는 1인당 소득 3만3000달러인 부자 도시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라는 두 조선업체가 든든히 버티고 있는 덕택이다. 60년 전 거제도는 분단과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북한군과 중공군 17만여 명이 갇힌 포로수용소가 거기 있었다. 흥남 철수작전 때 목숨 걸고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 호를 탔던 월남민 1만4000명도 그곳으로 피란했다. 그런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보면 거제도는 ‘대한민국 신화’의 자랑스러운 현장이다.

하지만 최근 연합뉴스가 보도한 한 장의 사진(오른쪽)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6·25 전쟁 영웅인 고(故) 김백일 장군의 동상이 차양막을 둘러쓰고, 쇠사슬에 묶인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변했다. 이 동상은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회장 황덕호)가 지난 봄 거제시 허가를 받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안에 세웠다. 전체 유적공원 약 2800평(9306㎡) 가운데 5~6평 넓이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경남도는 지난달 30일 김두관 지사 명의로 거제시에 공문을 보냈다. “김백일 동상을 이전 또는 철거하는 계획을 수립하여 도(道)에 통보하라”는 내용이었다. 도 관계자는 23일 전화 인터뷰에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경남도 문화재 자료 제99호인데 동상이 도의 허가 없이 무단으로 설치된 만큼 원상복구를 시킬 방침”이라고 말했다. 경남도 측은 거제시의회가 철거 결의안을 내고 시민단체도 반발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시민단체들은 “김백일은 백선엽·최남근과 함께 조선항일조직 전문 토벌부대인 간도 특설대 창설의 주역”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우리는 김 장군에 대한 시민단체의 행동이 과도하다고 생각한다. 김 장군이 일제시대에 만주군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해방 이후 그는 북한의 남침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웠다. 흥남철수작전을 통해 무려 10만 명이나 되는 주민을 무사히 피란시켰다. 50년 10월 1일엔 국군 최초로 38선을 돌파한 것도 그였다. 서른넷이라는 젊은 나이에 1군단장으로 활약하다 전사한 그를 김일성도 두려워했다고 한다. 김 장군이 일제 시대에 잘못한 부분이 있다 해도 이후 경력은 그런 과오를 충분히 씻어내고도 남는 것이다.

김백일 동상의 설립 과정에서 어떤 절차상 하자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김 장군 덕택에 생명을 건지고 자유를 되찾은 피란민들이 세운 동상을 쇠사슬로 묶어놓은 행위는 야만이고 폭력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김 장군으로부터 받은 피해는 대체 뭔가. 그것이 김 장군에 의해 생명을 구한 수많은 사람의 감사함을 뛰어넘는 것인가. 일제시대와 동족상잔을 겪은 우리의 아픈 과거가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되면 안 된다. 반성은 반성대로 하되, 아픔을 감싸고 잘한 걸 칭찬하는 태도가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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