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경영권 바꾸자”…스와핑 M&A급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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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컴-하늘사랑=한글과컴퓨터(대표 전하진, 이하 한컴)의 하늘사랑정보(대표 나종민) 인수는 본격적인 인터넷업체로 변신한다는 한컴의 장기 비전 아래 이뤄졌다. 99년 상반기 한컴은 종합 인터넷회사가 된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당시 한컴 매출의 90%는 아래아한글 프로그램이 차지하고 있었다. 한컴의 경영진이 ‘프로그램 판매의 시대는 가고 인터넷 서비스가 주류’라는 대세를 읽은 이상 변신은 필연적이었다. 한컴은 커뮤니티·채팅·전자상거래·게임 등을 인터넷사업의 주 요소로 설정했다.

하지만 커뮤니티 사이트 네띠앙을 제외하고는 갖춘 게 없었다. 이에 전사장을 비롯한 한컴 경영진은 곧 인수를 생각했다. 분초를 다투는 인터넷 사업 전장(戰場)에서 ‘인수’는 핵심 전략의 하나다. 내가 모든 아이디어를 다 낼 수는 없고 시장에서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 사업이 시시각각으로 쏟아져 나올 때 해답은 ‘인수’ 뿐이기 때문이다.

이때 대상으로 떠오른 하늘사랑은 가입자 측면에서 최적의 상대였다. 한컴의 커뮤니티 사이트인 네띠앙의 회원이 80만명을 조금 넘던 때 채팅 사이트인 하늘사랑은 1백82만명의 회원을 갖고 있었다. 또 5천여개가 넘는 PC게임방에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한 곳 당 4만원씩 받고 있어 월 수익이 2억원을 넘어서고 있었다.

지금도 비슷하지만 당시 인터넷 사업으로 이익을 남기는 곳으로는 거의 독보적이었다. 가입자 확장을 주요 과제로 보던 한컴에게는 매력적인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한컴의 전하진 사장은 즉시 합병 추진에 나섰다.

하지만 문제가 두 가지 있었다. 경쟁 상대와 내부 반발이 그것. 당시에는 한컴 뿐 아니라 미국계 인터넷 업체인 AU넷코리아 역시 하늘사랑과의 제휴를 추진하고 있었다. 그들의 조건은 현금 15억원과 지분 50% 를 맞바꾸는 것. 또한 하늘사랑의 미국·일본·중국 등 해외 진출을 돕고 현지 법인 설립 때 지분을 준다는 항목도 붙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한컴은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했다. 1백억원 상당의 한컴 주식과 하늘사랑 지분 50%를 맞교환한다는 것. 15억원에 협상중이던 회사를 1백억원에 인수한다는 계획은 회사 내부에서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이에 대해 전사장은 “2백만명에 가까운 회원을 1백억원에 사들이면 회원 1인당 5천원밖에 안되는 헐값에 사는 것”이라는 논리로 직원들을 설득했다. 당시 넷츠고 등 인터넷 서비스 업체(ISP)가 사용자 1인 확보에 들이는 비용은 광고비를 포함, 평균 47만원이었다.

설득이 끝나자 한컴은 이사회도 열기 전에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만큼 서둘러 인수 작업을 진행했다. 당시 이미 하늘사랑은 AU넷과 MOU를 맺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한컴은 하늘사랑정보 인수를 통해 회원 수가 3백만명으로 증가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수가 지금은 네띠앙 2백만, 하늘사랑 5백만명으로 모두 7백만명으로 불어났다. 하늘사랑은 채팅이라는 단일 품목으로는 세계 최대 사이트가 됐고 ‘회사 가치 5천억원’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주식 스와핑 잇달아=한컴이 하늘사랑 인수에 사용한 M&A방법은 주식 스와핑(Stock swaping·주식맞교환). 시가 1백억원어치의 신주(20만주)를 발행해 하늘사랑 지분 50%를 샀다. 주식 스와핑은 AOL과 타임워너 합병 때도 활용될 만큼 외국에서는 일반화된 우호적 M&A의 한 방식이다.

최근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유인커뮤니케이션을 부분 스와핑 방식으로 인수했었다. 다음은 비상장 기업인 유인의 지분 70%를 인수하는 대금 2백10억원 중 50억원을 현금으로 지급하고 나머지 금액은 모두 신주를 발행해 충당할 계획.

지능형 컴퓨터·통신업체인 로커스도 최근 무선 인터넷 벤처 세븐웨이브를 스와핑 방식으로 인수했다. 로커스는 신주 19만주를 발행해 이를 세븐웨이브에 배정하는 방법으로 합병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처럼 스와핑이 느는데는 일단 현찰이 필요없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으로 작용한다. 또 인수기업은 신주만큼 우호지분을 확보할 수 있고, 인수되는 기업은 유명 벤처기업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어 서로가 호혜적인 방법이 되고 있다.

◇두루넷-나우콤 사례=두루넷(대표 김종길)의 나우콤 인수는 가입자 확대와 인터넷 서비스업체(ISP)확보라는 두 가지 목적에서 이뤄졌다. 잘 알려진 대로 두루넷은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회사. 지난해 말 미국 나스닥시장에도 상장됐다.

두루넷은 종합 인터넷 전문기업을 지향하고 있어 이를 실현하려면 콘텐츠 서비스가 필요했다. 다양한 콘텐츠가 제공되면 가입자 확대도 자연스레 이뤄질 수 있었다. 또한 적어도 앞으로 3년간은 PC통신 등 ‘저속ISP시장’도 매력 있다는 판단이 있었다. 나우콤은 이런 목적에 잘 맞는 짝이었다. 나우콤의 나우누리 서비스는 회원이 1백20만명에 이르는 국내 4대 PC통신 중 하나. 회원 대부분이 젊은층이고 동호회 활동이 가장 활발한 곳이다. 하지만 모기업인 한창의 자금난으로 98년부터 매각이 추진되면서 경영이 위축돼 있었다.

두루넷은 지난 1월 나우콤 지분 61.2%를 보유한 대주주 한창으로부터 지분 32%(32만주)를 3백56억원(주당 약 11만1천원)에 사들였다. 나우콤은 99년 상반기 이미 한 차례 소프트뱅크와 인수 접촉을 가졌었다. 이때 논의된 인수가는 1백억원선. 아무리 많아도 2백억원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때문에 두루넷 안팎에서는 “두루넷이 너무 많이 낸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두루넷측은 “향후 시너지 효과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두루넷의 나우콤 인수로 나우콤은 삼보컴퓨터의 관계사가 됐다. 나우콤에는 삼보 관계사인 나래이동통신이 인수 전부터 지분의 14%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두루넷이 매입할 당시 한창의 나머지 지분 29.2%는 삼보컴퓨터와 메타랜드 등이 사들였다. 삼보컴퓨터 계열사가 나우콤 지분의 총 75.2%를 갖게 된 것이다. 이로써 삼보컴퓨터그룹은 나우콤 인수를 통해 인터넷서비스(ISP)라는 ‘빈 자리’를 채워 넣은 것이다.

조경애 한국경제 정보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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