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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가본 2010년 인터넷 세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SF영화를 통해 익숙해진 21세기의 모습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 외계인과의 만남, 더 나아가 은하계를 오가는 우주전쟁의 환상 대신 지구촌 안에서 벌어진 인터넷 혁명이 우리의 21세기를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과연 인터넷 혁명은 우리의 미래 생활을 얼마나,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2010년 3월1일. 프리랜서 애널리스트 공영일(37)씨는 최근 고향인 강원도 춘천으로 이사했다. 가족들은 동해안이 가까워 여름·겨울휴가를 즐기기 좋아졌다며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공씨 혼자만의 ‘결단’이었다면 더 어려웠을 수도 있겠지만, 최근에는 복잡한 서울을 벗어나 지방으로 빠져나가는 동료들이 늘고 있기에 비교적 손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인터넷 덕분에 이제는 서울이나 지방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일부 투자자들은 여전히 예전처럼 얼굴을 마주보며 상담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공씨로서는 한동안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 인터넷 생활화로 ‘田園 엑소더스’

춘천에서 새롭게 시작한 생활은 예상대로 비교적 만족스러운 편이다.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서울에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기상시간에 맞춰 커피메이커가 자동으로 끊여내는 커피를 한잔 마시며 컴퓨터 앞에 앉는다. 이사 기념으로 구입한 30인치짜리 선명한 액정화면은 세계의 헤드라인 뉴스와 증권시장 관련 소식, 또 공씨가 좋아하는 스포츠 뉴스를 적절히 나누어 보여준다.

대충 간밤의 소식을 살펴본 공씨는 E메일을 살피기 위해 키보드를 앞으로 끌어당겼다. 요즘은 음성인식 시스템을 통해 컴퓨터를 조작하는 것이 유행이기는 하지만 어느 틈엔가 ‘구세대’에 속해 버린 그는 여전히 조용한 방에서 키보드 두드리기를 선호한다. 무선 키보드로 바뀌었다는 점을 빼고는 예전과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

공씨가 사용하는 컴퓨터 본체는 성능이 과거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됐다. 그의 책상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매직스테이션 2010’ 모델은 세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옥타곤 칩을 사용하는 CPU와 1GB 메모리, 하드디스크는 테라 바이트급으로 늘어 어디서든 휴대할 수 있는 형태로 바뀌었다. 10년 전에 비하면 대단한 발전이지만 색상이나 디자인은 여전히 촌스럽게 느껴진다. 그는 컴퓨터가 마치 장난감 같다는 생각을 하며 중요한 E메일 몇통을 읽고 간단하게 답장을 보낸다.

다음에는 “중앙일보” 홈페이지에서 뉴스리딩 서비스를 클릭한다. 출퇴근의 부담은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아침시간은 여전히 빠듯하다. 하루 24시간의 스케줄이 빈틈없이 꽉 채워져 있어 운동할 시간이 부족한 공씨는 창가로 가서 러닝머신 위에서 가볍게 워킹을 시작한다. 액정화면을 통해 주요 뉴스와 관련된 사진, 비디오 자료가 나오는데도 그는 가볍게 눈을 감은 채 계속 걷는다. 자칫 화려한 화면에 가려 중요한 소식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간신문을 들으며 즐기는 워킹은 예전의 출근길 자동차에서 듣던 라디오 뉴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컴퓨터 음성을 사용하기 때문에 사람이 직접 읽어 주는 것처럼 깔끔하게 와닿지 않는다는 것. 감미로운 여성의 목소리를 선택할 수 있다면 저렇게 카랑카랑한 컴퓨터 음성을 듣지 않아도 될 텐데…. 그렇지만 무슨 일이든 지출비용을 생각해야 하는 현재로서는 당분간 저 목소리를 감수할 수밖에 없겠군.

잠시 다른 생각에 젖은 채 서서히 멈추는 러닝머신 위에서 호흡을 고르는 동안, 건강상태와 오늘 하루 바이오리듬이 디지털 화면에 떠오른다. 그래프 상의 수치는 여느날과 비슷한 NORMAL. 오후 5시쯤 바이오리듬이 상당히 낮아지는 것을 보고 기억해 둔다.

■ 업무처리는 화상회의와 E메일로

이때 긴급메일 도착을 알리는 알람소리와 함께 음성메일이 전달된다. ‘오전 11시 본사와 강원지역 담당자 화상회의. 보고서는 10시까지 메일로 제출 요망’. 본사 여직원의 맑은 목소리가 정답다.

서둘러 아침을 먹으러 부엌으로 향한다. 이미 부인과 아이들은 각자 볼 일을 보러 나간 터라 식탁은 텅 비었다. 냉장고 전면에 부착된 모니터에서는 식품 관련 광고가 정신없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공씨는 자동광고 냉장고를 정말 싫어한다. 번쩍거리는 광고가 어지러울 정도다. 반대로 부인은 냉장고를 애지중지하며 자동주문 기능을 만끽한다. 이 자동주문형 냉장고는 부족한 식품이나 음료가 있으면 곧바로 쇼핑몰에 주문해 냉장고 속을 늘 채워놓기 때문에 주부들 사이에서 인기가 최고다.

어느새 회의 10분 전, 회의를 준비하는 본사의 비서와 화상으로 간단히 인사를 나눈다. 100인치 전신 액정화면은 아직도 가격이 비싼 편이어서 구입하지 못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30인치짜리로는 다른 사람들 모습이 게임 속에 나오는 캐릭터처럼 조그맣게 보이지만 기능에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화상회의에는 별 불편이 없다. 그렇더라도 혹시 가족이 아플 때 원격진료를 받게 된다면 중고품이라도 100인치를 구입해야 할 텐데….

회의 내내 휴대용개인정보도우미(PDA)가 삑삑거린다. 이런! “춘천경제신문” 박기자와 점심약속이 있었는데 놓쳤다.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짐 정리도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집사람조차 없으니 양복과 와이셔츠를 찾는 일은 포기하는 게 낫겠군.

공씨는 자주 이용하는 패션몰로 접속, 788 사이즈 양복 한벌과 와이셔츠를 주문한다. 주문사항란에 추가로 깨끗이 다려줄 것을 첨부한다. O.K. 사인이 바로 떨어진다. 인터넷 쇼핑몰이 나아진 게 있다면 99% 이상이 신용카드로 결제되고, 주문한 후 받기까지 과거 2∼3일씩 걸리던 것이 한두시간으로 단축된 정도.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을 찾기에는 여전히 어려움이 많다.

가볍게 점심을 먹기 위해 다시 주방으로 가려던 공씨. 아이들 방에 들러 본다. 큰 녀석은 고작 열살인데도 벌써 사춘기가 시작되려는지 방 안에 인스턴트 식품을 잔뜩 쌓아둔 채 꼼짝도 하지 않는다. 지난번 생일선물로 준 게임기 부착 1인용 전자렌지에는 제법 맛있어 보이는 피자가 두 조각이나 남아 있다.
공씨는 피자를 이대로 두면 상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점심을 피자로 때울 생각으로 전자렌지를 켠다.

요즘 판매되는 전자렌지나 냉장고 등 가전제품은 생활의 편리뿐 아니라 인터넷까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졌지만 첨단 제품이 등장했는데도 가사노동 시간은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세상이 워낙 바쁘게 변하니 이것저것 새롭게 시도해 보려면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매달려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핸드폰에 비디오 메시지가 뜬다. ‘30분 후 도착 예정입니다.’ 쇼핑몰에서 띄운 메시지다. 시간은 얼추 맞을 것 같다. 예정시간에 정확하게 벨소리와 함께 건네받은 양복과 와이셔츠는 박스에 담겨 있다. 꺼내보니 구김이 심하다. 다림질까지 부탁했는데도.

■ 자동주문형 냉장고 등 편리해진 가사생활

“이거 반품하면 얼마나 걸리죠?”
“2시간 정도 더 걸립니다. 반품하시겠어요?”

배달원이 마뜩찮은 표정으로 되묻는다. 2시간이나 더 걸리면 오후 스케줄도 펑크낼 처지다. 포기하고 그냥 받았다. 휴대용 오락기만한 조회기에 전자펜으로 사인하면 물건 수령시간이 본사 컴퓨터에 그대로 입력된다.

공씨는 그저 주문한 사이즈가 도착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다고 생각한다. 20세기나 21세기나 사람이 중간에 끼면 꼭 이런 식이라니까…. 차라리 기계가 하는 것이 더 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박기자와 만난 곳은 테크노호텔 로비 커피숍. 테이블에 달린 작은 액정화면으로 메뉴를 보고 서로 원하는 것을 선택한다. 이 호텔에서는 웨이트리스를 대신해 터치스크린 주문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만큼 가격이 싸다.

인터뷰를 하면서 증권시장 동향과 타사의 활동을 전문가 입장에서 정리해 말하려는데 자꾸 기침이 나오려고 해 애를 먹었다. 박기자는 노트북을 이용해 인터뷰 내용을 비디오로 촬영한다. 이 호텔은 테이블마다 랜(LAN)케이블이 설치되어 있어 인터넷 사용에 어려움이 없다. 이 인터뷰는 실시간으로 인터넷 방송으로 방영된다.

오후장이 끝나자 모처럼 별다른 약속이 없어 공씨는 스키동호회 회장 선거가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 투표하기로 했다. 노트북으로 동호회에 접속하자 후보들의 캐치프레이즈가 요란하게 번쩍거린다. 투표를 하자 현재까지의 결과가 나타난다. 아하, 서울에 사는 김한솔씨가 당선권에 들었군. 오늘 저녁모임에서는 신임 회장 취임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도 얼마 전에 있었던 국회의원 선거는 왜 투표장까지 나오라는지 이해가 안간다. 이처럼 간단하게 투표를 하면 비용도 적게 들고 결과도 금방 알 수 있어서 좋은데 정치권은 왜 구닥다리 투표를 고집하는지 모를 일이다.

잠시후 공씨는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 국제전화를 건다. 노트북과 헤드세트를 이용해 친구의 얼굴을 마주하며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춘천으로 이사한 일이며 일상사를 이야기하느라 통화가 꽤 길어졌지만, 전화비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보안을 필요로 하는 전화가 아니라면 무료가 된 지 오래니까. 친구는 이미 제주도에 사는 친구와 어제 화상채팅을 했다며 공씨의 근황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하긴 이제 제주도나 서울이나 춘천이나 미국이나 공간적인 차이는 하나도 없는 세상이니까.

컴퓨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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