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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 음악이기도 합니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26호 35면

지난달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4회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 참가했을 때의 일입니다. 공교롭게도 콩쿠르 책자에 저의 연주 곡목이 모두 잘못 실리는 바람에 관객들은 제가 무슨 곡을 연주할지 모른 채 매번 음악회장에 와서야 제가 칠 곡을 확인할 수 있었지요. 그러다 독주곡을 60분간 연주해야 하는 예선 2라운드에서 재밌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슈만의 곡을 마친 후 우크라이나 출신의 작곡가 카푸스틴의 곡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러시아 출신 작곡가가 쓴 이 곡이 다름 아닌 재즈풍이었기 때문이죠. 연주 후 많은 관객이 무대 뒤로 찾아와 “네가 친 미국 작곡가의 곡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이 콩쿠르가 열리는 모스크바 콘서바토리를 졸업한 니콜라이 카푸스틴의 작품”이라고 대답해 주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은 미국 음악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재즈는 사실 여러 민속음악의 복합체입니다. 20세기 재즈음악사 최고의 거장인 조지 거슈윈은 19세기 말 미국으로 이민 온 러시아 출신 유대인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20세기 중반 냉전시대에 러시아인들은 재즈를 근본 없는 미국의 음악이라며 경시했지만 알고 보면 그 근원에 자신들의 피도 섞여 있다는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테죠.

폴란드의 상징인 작곡가 프레데리크 쇼팽도 사실은 프랑스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스무 살에 고국을 떠나 죽을 때까지 프랑스에서 산, 반(半)프랑스인이었습니다.

음악 자체를 들여다보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라벨과 더불어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곡가 드뷔시는 189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접한 동양의 이국적 정서에 도취돼 5음 음계를 서양 음계보다 더욱 자주 사용해 일생 동안 자신의 음악에 그 흔적을 남겼습니다. 당시 막 생겨나던 흑인음악을 자주 차용하고, 영국이나 스페인의 민속음악을 인용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문화를 그만의 스타일로 해석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스페인의 대작곡가 마누엘 데 파야는 그가 쓴 피아노곡 ‘포도원의 문’(전주곡 2권 중)을 가리켜 “모든 피아노곡 중 가장 스페인스러운 곡”이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보다 조금 더 이전인 19세기 초 오스트리아 빈도 실상은 비슷합니다. 당시 음악의 수도라 불리던 빈 음악계는 자기네 음악만이 최고라고 자부하는 배타적인 성격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비에니즈 클래식을 대표하는 작곡가 베토벤, 낭만주의시대 빈의 가장 큰 인물이던 브람스는 사실상 독일 출신입니다. 이들은 당시 유행하던 터키나 동유럽의 민속음악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는데 이것은 하이든이나 모차르트도 즐겨 사용했던 재료였습니다. 게다가 이들의 음악에서는 시칠리아나 프랑스, 심지어 유대 민속음악의 영향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100년을 훌쩍 넘은 현재의 유럽 음악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자국 음악은 자국 음악가만이 잘 연주할 수 있다는 왜곡된 자부심이 아직도 만연해 있고, 이 선입견을 부수고 외국인이 성공적으로 활동하기란 여전히 어려우니 말입니다. 물론 누구에게나 자신의 바탕이 되는 문화가 가장 자연스러운 것임은 당연합니다. 특히 언어가 기본이 되는 음악은 더욱 그렇습니다. 따라서 외국인이 거꾸로 자신의 문화를 전달하는 데 무의식적인 거부감이 드는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입니다. 저 역시 서양인이 우리나라 고전음악을 한다면 그들이 우리네 정서를 십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겁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200년 전과는 매우 다릅니다. 전 세계가 ‘지구촌’으로 변해 아무리 먼 거리라도 하루 안에 다다를 수 있고 인터넷 보급으로 세계 각지의 소식을 어디에서든 동시에 접할 수 있습니다. 서양 문화는 의식주부터 모든 것이 그 기원에만 머무르지 않고 전 세계 구석구석에 퍼졌습니다. 음악의 경우 특히 그렇습니다. 동양의 작은 시골마을에서도 어린이들은 서양 음계로 된 동요를 부르고 팝 음악을 듣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독일 음악은 독일 사람만이, 러시아 음악은 러시아 사람만이 제대로 연주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음악이라는 것은 언어를 뛰어넘는 또 다른 언어입니다. 만국 공통어라고도 하지요. 그 목적이 ‘소통’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다른 문화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포용력’이 아닐까요?



손열음 1986년 원주 출생. 뉴욕필과 협연하는 등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 중이다. 올해 열린 제14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피아노 부문 2위를 했다. 음악듣기와 역사책 읽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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