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설(世說)

공직자가 부정한 청탁에서 벗어나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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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덕만
국민권익위원회
홍보담당관

청탁자(A):거기 있으면서 그런 힘도 없어?

 공직자(B):응, 없어. 미안해. 요즘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A:알고 보니 꽉 막혔네.

 B:그래 공무원 제대로 하려면 어쩔 수 없어.

 A:너무 그렇게 융통성이 없으면 못써.

 B:걱정해 줘서 고마워. 하지만 어쩌겠어. 성격인 것을….

 

 위 대화는 공직자의 부정부패가 연일 보도되면서 범정부적으로 다각적인 대책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부정부패예방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가 최근 공공기관 감사부서에 제공한 ‘알선청탁 근절 방안’ 매뉴얼의 일부 내용이다. 공직자들이 상관, 친척, 동기 등 거절이 어려운 지인들의 알선청탁에 대처하는 방안들이 담겨 있다.

 알선청탁이 들어오면 우선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과 할 수 없는 부분을 명확히 알린다. 업무상 거절이 아주 어려운 경우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 일이라며 업무처리 과정에 워낙 여러 사람이 관여하기 때문에 혼자 처리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해줄 수 없는 일을 하게 되면 최근 부패행위로 구속된 사례를 열거하며 엄격하게 처벌됨을 알려준다. 만나는 장소는 반드시 사무실로 하되 불가피하게 만나 식사를 해야 할 경우에는 검소한 장소를 택하고 동료와 꼭 같이 나가 비용을 직접 지불하는 게 좋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본인의 평소 소신과 청렴한 업무 사례를 들며 청탁자의 원인행위 자체를 시도하지 못하도록 인식시키고, 사적(私的)인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뇌물을 받았을 때 긴급대처도 알아두자. 뇌물 고발의 절차와 방법, 부패신고로 인한 보복 발생 시 자신의 보호 절차를 평소 잘 숙지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혹은 불가피하게 뇌물을 받을 상황에 놓였을 때 동료들이 목격하도록 노력하고 상황 그대로를 기록해 두는 것을 잊지 말자.

 뇌물을 제공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정중하게 공무원으로서 뇌물을 받을 수 없음을 분명히 말하고 뇌물 제공의 원인과 신원도 파악, 기록한다. 가족, 동료 등이 뇌물을 받아놨다면 최대한 빨리 소속 기관마다 지정돼 운영하는 ‘행동강령책임관’에게 통보하고 그 기록을 남겨둔다. 기록관리는 정보화 시대의 이기(利器)인 휴대전화 같은 녹음녹화 단말기가 편리하다.

김덕만 국민권익위원회 홍보담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