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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淡 담

중앙일보

입력

수(水)는 물이 흘러가는 모양을 본뜬 것이다. 가운데 큰 물줄기가 흐르고 양쪽으로 작은 물줄기가 흐르는 모습이다. 보통 강(江)이나 하(河)의 지류를 일컫는다. 한수(漢水)가 그런 쓰임새다. 수(水)보다 작은 건 천(川)이다. 양쪽 골짜기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를 말한다. 우리말에서는 ‘내’라고 한다.

수보다 큰 물줄기인 강과 하는 물 수(水) 변에 붙은 글자에 의해 의미가 구분된다. 강(江)에는 ‘반듯하다’는 뜻의 ‘공(工)’자가 붙어 물줄기가 비교적 곧은 것을 말한다. 양자강(揚子江)이 그렇다. 하(河)엔 ‘가(可)’자가 따른다. ‘가’에는 굽는다는 뜻이 있다. 가(柯)는 굽은 나뭇가지다. 그런 굽은 물줄기의 대표적 예가 황하(黃河)다. 공자(孔子)가 ‘만 번을 굽이쳐 흘러도 결국은 동(東)으로 흐른다’ 했던 ‘만절필동(萬折必東)’의 주인공이 황하다.

물과 반대 성격이라 할 수 있는 화(火)는 불꽃이 장작더미 위로 피어오르는 모양을 본떴다. 그 불(火) 두 개를 포개면 염(炎)이 된다. 불이 활활 타오르는 모습으로 ‘무덥다’는 뜻이 있다. 물과 불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 그런 한자로 ‘재(災)’가 있다. ‘화불단행(禍不單行:불행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잇따른다)’이라 했던가. 물에 의해 혼나고 불에 의해 피해를 보니 그야말로 재난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물과 불이 만난 또 다른 케이스인 ‘담(淡)’자는 재앙을 뜻하지 않는다. 담(淡)은 불에 끓인 증류수를 나타낸다. ‘맑다’ ‘싱겁다’는 의미가 있다. 중국식 발전 모델을 뜻하는 ‘베이징 컨센서스’라는 말을 유행시킨 전 골드먼삭스의 정치·경제문제 고문 호수아 라모는 ‘담’자를 통해 중국 모델을 설명한다.

라모에 따르면 중국 모델은 물과 불이 섞인 ‘담’처럼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는 것이다. 동시에 실현하기 어려운 두 가지 가치인 ‘공평’과 ‘효율’을 모두 달성하고자 노력한다는 이야기다. 중국공산당이 1일로 창당 90주년 기념일을 맞았다. 공산당의 장수와 성취는 ‘중국 모델’이란 말을 나오게 만든 배경이다.

라모의 말처럼 중국공산당이 효율과 공평 모두를 실현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달성 여부는 차치하고 시도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하겠다.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scyo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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