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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YS는 96년 총선 때 주요 인사 50여명 특별관리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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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팽창의 욕망을 지닌 권력. 96년 총선,

YS는 ‘총선 승리’를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월간중앙”이 긴급 입수해 공개하는 3건의 극비 보고서에는 선거 때 권력이 어떤 동선을 그리면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천의 얼굴을 한 권력은, 때로는 냉철하게 때로는 표독하게 단 하나의 목표 ‘총선 승리’를 향해 진군해나갔다.

김대중 대통령이 민주당에 총선 총동원령을 내렸다. 이번 2월11일 부분개각에서 옷을 벗고 민주당 간판으로 총선에 투입된 남궁석(南宮晳)
정보통신부장관과 이상룡(李相龍)
노동부장관은 원래 ‘접은 카드’였다. 1월13일 개각 때 총선 출마를 고사한 두 사람은 유임됐었다.

그러나 한달만에 총선 투입으로 180도 선회했다. 여론도 행정공백을 우려하며 비우호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 여권을 지배하는 심리는 ‘욕을 먹더라도 선거에서 이기고 보자’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원내 제1당 지위를 확보하거나 최소한 자민련 의석과 합쳐 안정과반수 의석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은 청와대의 변함없는 기조였다. 그래서 1월 개각 때 득표력이 있는 장관 및 수석들을 대거 당에 투입했다. 하지만 상황은 악화됐고 전망은 나아지지 않았다.

선거구도가 청와대의 계산법대로 짜이지 않고 있다. 공동정권 철수 조짐까지 보이는 자민련과의 갈등으로 연합공천이 불투명해졌고 선거 판도가 민주당에 유리한 쪽으로 흐르는 것 같지도 않다. 단 한 석이라도 더 챙겨야 한다는 절박감이 남궁석·이상룡 전 장관을 선거판으로 내몬 것이다. 권력의 속성이란 본래 그런 것일까.

“월간중앙”은 최근 김영삼 정권의 청와대와 행정부가 지난 15대 총선에서 어떻게 선거에 개입하고 진두지휘했는지, 그 전모를 밝혀주는 극비 보고서를 입수했다.

YS는 취임 초부터 엄정한 선거중립을 외쳤다. 그러나 “월간중앙” 취재에 따르면 당시 청와대는 ▷총선 승리를 위해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특별관리’했고 ▷선거의 쟁점을 정리하고 후보들에게 대응논리를 공급했으며 ▷수도권 등 전략지역을 선정해 전폭지원하는 등 15대 총선에서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선거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월간중앙”이 입수해 공개하는 3건의 보고서는, 선거전을 맞이해 4년 전의 청와대가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것이어서 당시 여야간 정치적 공방으로 그쳤던 ‘청와대의 선거개입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혀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권력과 선거의 이면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재’이기도 하다.

보고서가 시사하는 바는 또 있다. 선거판의 구도면에서는 ‘4년 전과 지금’이 여러 모로 흡사하다는 점이다. 당시 선거는 3김이 영남·호남·충청권을 할거하고 수도권에서 쟁패를 벌이는 형국이었다. 최근 JP가 마치 ‘야당 총수처럼’ 독자노선을 걸으며 DJ를 향해 색깔론 시비를 불러일으키는 전략을 구사함에 따라 이번 선거에서도 15대 총선과 흡사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 4년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여야가 바뀌었다는 점과 당시 신한국당 선대위원장으로 뛰었던 이회창씨가 이번에는 야당 총재로서 선거전을 지휘하고 있다는 점 정도다.

선거 쟁점도 흡사하다. 당시 야당인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15대 총선의 의미를 ‘중간평가’로 규정짓고 적극적으로 공세를 폈고, 신한국당은 ‘안정론’으로 맞섰다. 이번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의 ‘중간평가론’ 대(對)
민주당의 ‘안정론’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따라서 이 극비 보고서들은 이번 선거에서 DJ 휘하의 청와대와 민주당이 무대 뒤에서 어떻게 움직일지 가늠해볼 수 있는 척도를 제공해 주기도 하고, 선거라는 중요한 고비에서 권력이 구체적으로 어떤 동선을 그리며 행동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자료적 가치로서도 의미가 있다.

15대 총선과 너무도 흡사한 16대 총선 구도

“월간중앙”이 입수해 이번에 공개하는 자료는 15대 총선(1996년 4월11일)
열기로 정치권이 한창 달아오르기 시작한 1996년 3월9일부터 선거 직후인 4월16일까지 YS에게 ‘직보’된 세건의 보고서다. 보고 채널은 이원종 당시 정무수석이었다. 일자별로 정리하면 ▷15대 총선 쟁점과 이슈(3월9일)
▷선거에 영향을 미칠 주요 인사 관리방안(3월14일)
▷15대 총선 지지활동 결과 보고(4월16일)
등이다.

“월간중앙”은 이외에도 YS 정권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러 건의 보고서를 입수했지만, 이번호에서는 ‘총선 직전’에 권력의 움직임이 어떠했는지를 짚어본다는 관점에서 아래의 보고서들만 공개한다. 취재원의 요청에 따라 출처는 밝히지 않는다.

[ 문건 1]선거에 영향을 미칠 주요 인사 관리방안

■“朴泰俊 선거 관여 막기 위해 포항공대 이사장직 제의 등 관계 개선 필요”
■“李洪九를 보내 무소속 출마 盧在鳳의 ‘YS 당선축하금’ 폭로를 막아라”
■노재헌·전재국의 TK 출마 저지, 서동권·이원조·금진호의 역할은?
■“한완상 등 ‘마포포럼’ 멤버의 이탈, 박관용을 독려해 특별관리하라”
■불교계 반발 무마용으로 송월주 총무원장에게 전국구 후보 추천토록 제안

"주요 인사의 돌출행동을 막아라"

1996년 15대 총선은 여당의 승리로 끝났다. 비록 신한국당이 안정과반수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어두웠던 전망에 견주면 명백한 승리였다. 선거 승리를 위해 YS는 전력투구했다.

아래의 보고서 <선거에 영향을 미칠 주요인사 관리방안>
은 선거 승리를 위해 현직 대통령이 언제 누구를 왜 만나고, 어떤 동선으로 움직였는지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선거 한달 전쯤인 3월14일 작성된 이 보고서는 크게 보아 대통령에게 두가지를 제안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약 한달간 선거에 영향을 미칠 주요 인사들을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점과 ‘영향력 있는 인사들의 돌출행동을 방지하는 등 여당에 우호적인 선거분위기 조성을 위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총 11쪽 분량이고, 5쪽 분량의 별첨자료를 덧붙였다(별첨자료는 김영삼 대통령, 이회창 선대위의장, 박찬종 선대본부장, 이수성 총리 등의 ‘통화대상 명단’인데 부속 기사에서 따로 정리했다)
. 보고서는 ‘관리’해야 할 주요 인사들을 7개 부류로 정리하고 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관리’한 주요 인사 7개 부류는 다음과 같다. ▷박태준·조 순 등 야당에 입당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할 인사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과 관련된 재벌 총수 ▷김수환 추기경, 송월주 총무원장, 서영훈 흥사단 이사장 등 사회 원로그룹(독대 형식)
▷강영훈·신현확·노신영·이민우 등 집단으로 접견해야 할 원로그룹 ▷김윤환 대표, 강삼재 사무총장 등 당내 인사들 ▷총선 공천 과정에서 낙마한 인사들 ▷이강훈 전 광복회장을 비롯, 야당으로 이탈할 가능성이 있는 전직 장·차관 등이다.

먼저 야당에 입당하지 못하도록 ‘발을 묶어 두어야 할’ ‘야당입당 배제 불가군(群)
’에서 핵심 인물군은 다섯 그룹이다. ▷박태준 전 민자당 대표 ▷조 순 서울시장 ▷노재봉 전 총리 ▷전재국·노재헌 등 전직 대통령 관련 인사 ▷송 자 연세대 총장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등 전직 장·차관 그룹 등이다.

먼저 보고서가 YS에게 제안하는 ‘박태준 관리 방안’부터 살펴보자.

보고서는 박태준의 영향력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현재 자민련이 적극 영입 추진중. 동인의 입당시 대구 경북권 자민련세 급신장은 물론 전통 여당 지지 성향표 향배에 상당 영향 예상.’

보고서는 관리 방안으로는 ‘3월 입국시 각하 전화 및 내밀리 접견’을 검토할 것을 제안하면서, ‘(박태준이)
포철에 애착이 큰 바 포철 명예회장직 또는 포항공대 이사장직 제의 등 관계개선책을 추진하고, 적절한 인물을 선정해 귀국 전에 사전교감을 확보하고 신중한 운신을 유도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7개 그룹으로 나눠 주요 인사 관리한 치밀함 선봬

이처럼 적극적인 ‘관리’(실제로는 위협이겠지만)
때문이었는지 해외에서 ‘그동안 신세진 사람들에 대한 지원활동을 하겠다’고 밝혀 여권을 바짝 긴장시켰던 박태준은 15대 총선 때 정치일선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실제로 총선 직전 정치권에는 ‘박씨의 귀국을 일시 미루는 대신 민간 경제단체의 고위직을 제공하기로 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기도 했다.

조 순 당시 서울시장도 여권으로서는 신경쓰이는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보고서는 조시장의 영향력을 ‘전격적 국민회의 입당시 이회창 등 영입 상쇄효과, 선거 기간중 DJ와 재차 회동시 심정적으로 DJ 지지 분위기 시사 가능한 인물’로 그리고 있다.

이번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종로 지역에 출마하는 조 순 의원은 15대 총선 당시에는 무소속 서울시장이었다. DJ의 민주당 분당 및 국민회의 창당에 반발해 무소속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조시장 역시 1996년 2월 DJ와 만나 청와대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었다. 보고서는 ‘총선 전 1∼2회의 각하 접견 추진으로 DJ와의 일산 회동 의미 희석 및 인정감 부여 관리. 자치단체장 초치 공명선거 구현 당부 형식으로 접견 검토’라고 쓰고 있다.

이 보고서에는 낯선 단어가 하나 등장한다.

‘인정감 부여’.
처음 보고서를 들춰보았을 때 기자는 이 단어가 무슨 뜻인지 감을 잡지 못했다. 보고서를 중간 쯤 읽고 나서야 비로소 이 말이 우리나라 사회주도층 인사들이 권력 앞에서 얼마만큼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사회주도층 인사들의 이런 이중적 태도를 권력이 얼마나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는지 간파할 수 있었다. 즉, 대통령과 독대한 자리에서 대통령이 ‘당신을 늘 의식하며 인정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면 누구든 권력과의 친화력을 느끼게 되는 심리를 파고들라고 이 보고서는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노재봉 전 총리는 끝까지 ‘관리’되지 않았는지, 15대 총선에서 강남갑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신한국당 서상목 후보에게 고배를 마셨다. 노씨는 선거 전에 “총선 후 보수신당을 만들겠다”며 기염을 토하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어쨌든 보고서는 노 전 총리에 대해 ‘무소속 출마 선언. 한병채의 무당파 국민연합 등과 연대 가능성이 있다’고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 매우 중대한 정보를 ‘보고’하고 있다.

노재봉의 ‘YS 당선축하금’ 폭로 가능성 무마 유도

즉, ‘총선 막판에 각하(閣下)
의 노태우 전 대통령 당선 축하금 수수 폭로 검토설이 있다’고 쓰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보고서 문맥으로만 보면, 당시 여권 핵심부 안에서는 ‘YS가 1992년 대선 뒤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당선 축하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광범위하게 공감을 얻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 대목은 두 당사자인 YS와 노태우가 발언을 삼가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보고서는 노재봉 전 총리를 ‘관리’하기 위해 YS에게 ‘이홍구 전 총리 등 지인을 통해 성급한 행동을 자제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돌출 행동시 본인 불행은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함을 지적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노재헌·전재국 등 전직 대통령 관련 인사도 적극적인 관리 대상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노재헌과 전재국은 ‘최근 부친 명예회복 위한 무소속 출마 신중 검토 움직임이 있는’ 인물들이었다. 보고서는 또한 이들이 TK지역에 출마할 경우 ‘일부 동정론 및 대구·경북지역 여론 악화가 예상’되기 때문에 ‘서동권 전 안기부장 등 전·노씨 측근 인맥을 활용해 출마를 억지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당시 감옥에 갇혀 있던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아들이 총선에 나오면 신한국당이 TK 지역에서 자민련과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서는 매우 불리할 가능성이 높았다.

보고서는 YS에게 역시 협박 반 회유 반의 방법을 권장하고 있다. 즉, ‘시기상조론 및 향후 사면 등 분위기 냉각 가능성을 지적하라’고 적고 있는 것이다. 총선에 출마할 경우 아버지의 사면 문제와 관련해 불이익을 각오하라는 메시지나 다름없다. 보고서는 노재헌과 전재국의 출마를 막기 위해 활용해야 할 인물로 금진호·이원조 등을 거명하고 있다. 두 사람 다 권력의 생리를 너무나 잘 아는 인물이다.

송 자(현 명지대 총장)
연세대 총장에 대해서는 짧게 언급하고 있다. ‘국민회의에서 영입, 전국구 공천을 추진. 교육부 장관(으로 하여금)
송자 접촉 관리. 각하의 관심을 전달. 각하, 대학총장단 접견 등 행사시 인정감 부여’라고 적고 있다. 한마디로 대통령이 당신에게 지극한 관심을 갖고 있으니 섣불리 움직이지 말라는 얘기다. 송 자 총장은 지난해 10월 새천년민주당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 비례대표로 16대 국회 입성이 점쳐지고 있다.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는 ‘특별관리’ 대상이었다. 보고서는 ‘DJ가 ‘마포포럼 상징성 파괴 공작’으로 회원 중 1∼2명 전국구 상위 순번 공천 추진 시도하고 있다’고 주의를 주고 있다.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박관용 의원이 회장으로 있는 마포포럼은 문민정부에서 장·차관을 지낸 인사들의 친목모임 성격인데, 내막으로는 YS 밑에서 장·차관을 지낸 인사들이 정작 옷을 벗고 나가서는 ‘반YS적 성향’을 보이는 바람에 무마 차원에서 만든 조직이다. 어쨌든 DJ가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를 영입하면 청와대의 상처는 꽤 커질 터였다. 보고서는 ‘박관용 마포포럼 회장, 각하 직접 독려 및 관리 강화. 한완상·박운서(국민회의 전국구 영입설)
·허신행 등 특별관리’라고 적고 있다.

한편 보고서는 DJ가 접촉한 마포포럼 회원 명단을 적시한 후 ‘총선 전 마포포럼 회원 BH(청와대의 영문 이니셜)
초치·접견 행사 추진 검토. 특별한 계기 마련이 어려운 바, 토요일 전일근무제 BH 실시 계기로 각하께서 모처럼 휴식을 취하며 전직 각료들을 부담없이 만나는 행사로 추진. 주말이나 주일을 활용, 상춘재 행사로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적고 있다. 마포포럼 회원 중에서도 ‘특별히 각하가 관심을 표명해야 할 대상자로는 정재석 전 경제부총리, 김 덕 전 안기부장, 한승주 전 외무장관, 이병태 전 국방장관, 허신행 전 농수산장관, 오 명 전 건교부장관, 박양실 전 보사장관, 김숙희 전 교육부장관, 김상철 전 서울시장 등이 있다’고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 등 사회원로는 필히 ‘단독면담’으로

두번째 그룹은 ‘전직 대통령 구속 관련 기업인군(群)
’이다. 보고서에는 ‘대정부 불만 토로 가능 인물들로 상징적 위무가 아닌 정서적 교감 확보 대책 강구 필요’라고 나온다. 압축해서 풀어쓰기가 곤란한 관계로 아래에 원문을 그대로 옮겼다.

□ 閣下 경제 관련 행사時 기업의 세계화·일류화 지향노력 격려 언급(3월20일 상공의 날 계기)

─ “우리 기업인들은 사실 어려움 속에서도 나라 경제와 국가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고 21세기 경제환경에 적극 대처하려는 자세는 높이 평가할 만함”
☞삼성그룹→세계일류, 현대그룹→기술·세계의 현대, 대우→세계경영, 선경그룹→SUPEX운동, 코오롱→One and only 등

□ 閣下 경제인 개별통화 추진(3월20일 상공의 날 계기)

─ 전직 대통령 구속과 관련된 대기업의 여당에 대한 분위기가 예상보다 심각한 상황임.
─ 이건희 삼성회장, 김우중 대우회장, 최종현 선경회장 등 비자금 사건 관련 경제인과 통화
─ 근황 청취 및 ‘총선 이후 한번 만나자’는 구두 언질
☞면담 방식은 효과를 고려해 ‘개별 면담’으로 하고, ‘총선 후 면담 일시를 총선 전에 잡도록’ 조치
→총선 이후 면담時 총선에 대한 역할 부담을 안고 만나게 하는 방안
→경제비서실에서 대상 그룹 별도 검토 추진

□ 閣下 통화 이후 후속 조치로 대그룹 연고別 지원 분위기 조성

─ 비서실장, 정무수석 역할 분담. 비노출로 재벌 총수 접촉
─ ▷강원→현대 ▷대전→한국화약 ▷충북→LG, 제주→대우
─ 準광역시(울산→현대, 포항·광양→포철, 수원→삼성 등)

→지역순방 지원 활동 유도

세번째 그룹인 ‘개별접촉 관리 대상군(群)
’은 ‘독대’를 해야만 하는 사회원로들이다. 보고서도 ‘집단접견보다 개별접촉으로 관리 필요 인사군(群)
’이라고 적고 있다.
먼저 김수환 추기경. 짧게 언급됐다. ‘현안보다는 역사 바로세우기 작업에 대한 정
신적 지원에 사의 표명 접견 또는 통화.’

다음으로 송월주 총무원장. 당시 불교계는 YS의 군부대 예배 문제로 ‘장로 대통령’에 대한 반발이 심한 상황이었다. 보고서는 ‘불교계 대책 병행 차원에서 접견 또는 통화’라고 적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것은 ‘각하 접견 및 불교계 대표성 전국구 후보 추천의뢰 검토. ※각하 접견 후 비서실장이 내밀리 인물 추천의뢰 방식도 검토’라고 적고 있는 대목이다. 불교계 무마 차원에서 전국구 후보 추천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 의견이 실제로 집행됐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은 ‘정치권 기피 인물이나 보수 우익의 노선을 분명히 하고 있는 인사로 역사 바로세우기의 저변 확산에 도움 예상’되며 ‘서진영 정책기획위원 회 위원장과 관계가 돈독하기 때문에 서위원장이 면담을 주선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이밖에 이세중 전 대한변협 회장 ‘역사 바로세우기에 대한 지지 당부 및 근황 관련 통화로 인정감 부여’로 짧게 언급되고 있으며, 강영훈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서영훈 흥사단 이사장은 ‘각하 개별면담 통해 입당 권유 및 인정감 부여 또는 범여권 원로급 인사 집단 접견에 포함 접견’이라고 적혀 있다.

네번째 그룹인 ‘집단 접견 관리대상군(群)
’은 말그대로 ‘집단접견’으로 관리해야 할 인물들인데 ‘ASEM 순방 귀국 후 3부요인 접견 후속 프로그램으로 관리 추진’하라고 권하고 있다. 집단 접견 관리대상군은 시기별로 세 단계로 구분된다.

1차 조기추진 대상은 범여권 원로급 인사로 강영훈·서영훈·신현확·노신영 등 구여권 출신으로 상징성을 보유한 인사들이다. 2차 대상은 원로 정치인들로 이민우·이철승·고흥문·유치송·윤길중·채문식·김재순·김충환 등이다. 정치의 계절을 앞두고 원로들의 소외감을 위무하는 차원이다. 3차 대상은 대학총장단이다. 대학총장은 정무수석실이 아닌 교육비서실에서 별도로 검토했다. ‘순방 외교 성과 설명 및 역사 바로세우기 지평 확대’의 차원이다. 단 보고서는 집단접견 관리대상에 포함된 인물들 중에 접견이 어려울 경우 반드시 통화하라고 적고 있다.

다섯번째 ‘당내 인사 관리대책’은 다소 미묘한 정치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우선 김윤환 대표와 강삼재 사무총장에 관한 언급이다. 보고서는 ‘양인의 잦은 매체 노출은 선거 분위기에 좋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며, 허주의 노출은 ‘신한국당 메시지와 맞지 않고 대구, 경북 지역에서도 김윤환 대 JP 구도로 내용적으로 불리’하고, 강삼재 총장도 ‘날카로운 이미지 등으로 일각에서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적고 있다.

따라서 총선 기간에 가급적 필요 이상의 언론 노출은 자제해야 하는데, ‘각하(께서)
양인에 은밀히 권고’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또한 이 문제와 관련해 TV 등 언론매체에 적정선으로만 노출되도록 방송3사 사장단과 협조해야 한다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

‘떠난 사람 따뜻이 대해, 烹黨 이미지 불식 필요’

반면 ‘이회창·박찬종 및 이만섭은 활동역량을 확대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다분히 TK 지역을 의식한 제안이다. 이만섭은 TK지역 여론주도층과 순회간담회를 갖는 등 지역활동을 강화하는 쪽으로 권하고 있고, 박찬종은 신세대 유권자층과의 대화 이벤트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다. 그런데 보고서에는 당시 여권 핵심부가 JP의 대구·경북 지역 공략에 얼마나 신경썼는지가 여실히 드러나 있다. 보고서는 신현확 전 총리, 정수창 전 대한상의회장, 김준성 전 부총리 등 TK 원로를 공세적으로 접촉할 것을 강조하면서 ‘ 지역 이슈화, 책임있는 선택론 등 이벤트 추진’을 권장하고 있다.

여섯번째는 ‘자발 은퇴인사 관리’이다. 한마디로 집권당의 ‘팽당’(烹黨)
이미지를 불식시키자는 차원에서 마련된 느낌이다.
보고서는 ‘집권당의 신의와 푸근한 이미지를 거양하기 위해’ 이순재·이승윤·박경수 의원, 이상용 전 지사 등 자발적으로 은퇴한 인사들을 배려하는 당의 면모를 부각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들을 시·도 필승 결의대회 등 당 행사 때 좌석을 상석에 배치하고, 격려사 등의 기회를 부여해 집권당의 앞날을 함께 도모하는 모양새를 연출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토사구팽(兎死狗烹)
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독 YS 정권에서 유행했던 것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범여권 인사군 관리대책’이다. 보고서는 ‘최근 이강훈(전 광복회장·94세)
의 국민회의 입당 등 과거 범여권 인사의 이탈 현상 지속시 보수층의 응집력 약화 등 부작용이 예상된다’며 ‘국가안전기획부 등 각급 기관의 구여권 인사 동향 파악을 강화해서 상황이 발생하기 이전에 적절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또한 구여권 인사 수용 공간인 당 ‘국책자문위원회’ 활동을 강화해 전직 장·차관의 소속 기관임을 강조하고, 이 역할에는 김윤환 대표가 적임자라고 지적하고 있다.

집권자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주요 인사’를 관리하고 신경쓰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권력의 속성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최근 김대중 대통령의 움직임은 예사롭지 않다. 이와 관련해 2월15일자 “중앙일보”는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안정론’을 확산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거의 매일 김대통령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을 대거 청와대로 불러 오찬을 함께 하고 있다. 대학총장·벤처기업인·소방공무원·세무공무원·경찰·여성계 인사 등 다양한 계층이 망라됐다. 기독교·천주교·불교 지도자 등 교계 지도층도 불렀다. 대부분 우리 사회의 여론을 주도하는 인사들이다. 2월14일 점심에는 최창규 성균관 관장 등 유교 지도자 190명을 청와대로 불렀다. 김대통령은 지난 2년간의 업적을 설명했다. 이 기회에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할 일도 나열했다. 이런 모임에서 김대통령의 발언은 거의 비슷하다. 이런 일을 위해 필요한 안정을 당부하는 셈이다.’

보고서대로라면 연예인들이 TV 퀴즈쇼에 나가서 ‘총선 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으면 즉각 ‘대통령이요’라고 대답해야 인형이라도 하나 챙길 수 있을 것 같다. 영향력이 있고 야당행을 택할 가능성이 높은 인사는 설득 반 협박 반 해서 입당하지 못하도록 묶어 두어야 하고, 경제인들을 만나 정서적으로 토닥거려주고 연고지별로 총선 지원을 끌어내야 하며, 사회 원로들을 차례로 독대해 각별한 관심과 더불어 도움을 청하고, 정계원로·대학총장단·사회원로 들을 집단별로 접촉해 ‘아쉬운 소리’도 해야 한다. 게다가 자신이 발탁했다 임기를 마치고 나간 인사들이 ‘반기’를 들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까지 해야 한다.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만큼 강행군이다.

오민수 월간중앙 기자 <sim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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