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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서울은 왜 뉴욕처럼 편히 걸을 수 없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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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건축가 이병훈씨는 “모든 사람들이 도시와 교감하며 편하게 걸어다닐 수 있는 곳이 진정한 거리며 도시”라고 말한다. 뉴욕에서는 지하도나 육교 같은 자동차 중심 시설은 찾아볼 수 없다. [푸른숲 제공]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이병훈 지음, 푸른숲
260쪽, 1만3000원

그 동안 도시의 뜻을 잘못 알았던 것일까 했다. 고층 건물도 즐비하고, 10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는 ‘초(超)메가시티’ 서울이 도시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저자인 국민대 건축학과 이경훈 교수는 “사람 많고 건물이 많이 모여 있다고 모두 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서울의 ‘반(反)도시적’ 요소를 모두 8개의 키워드로 짚었다.

 그 첫 번째가 ‘걷기’에 대한 얘기다. “걷는 순간, 비로소 도시가 탄생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 미국 TV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그가 주목하는 것은 주인공들이 계속 걷는다는 점이다.

“주인공들은 걸어서 출근하고, 걸으며 사랑하고, 거리에서 이별하거나 옛 애인을 마주치기도 한다. 손이 모자랄 정도로 쇼핑백을 들고서도 줄곧 걷는다….” 여주인공 캐리가 자동차가 아니라 구두에 집착하는 것도 사실 "도시성에 대한 집착이자 애정”이라고 말한다. 반면 한국에선 인도에 자동차가 주차돼 있는 경우도 많고, 보도블록은 울퉁불퉁하다. 서울에서 유모차가 눈에 띄는 곳이 왜 아파트나 대형마트에 집중돼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에 대한 오해 중 하나로 쇼핑몰을 꼽은 대목도 눈길을 끈다. 쇼핑몰을 흔히 도시적인 건축으로 여기는데 서구적이며 현대적인 것은 맞지만 도시적이라기보다 오히려 반대쪽에 가깝단다. 그의 표현을 빌면, 쇼핑몰은 미국식 5일장이다. 인구가 적은 미국 교외에 사람을 모으기 위해 도시의 번화가처럼 상점이 늘어서 있는 거리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주차장을 완비한 쇼핑몰은 주변의 상점을 죽게 한다고 주장한다. 상점들이 볼거리를 만들어내며 걷고 싶게 만든다는 점을 고려하면, 쇼핑몰은 반도시적인 시설일 수 있다는 얘기다.

 방음벽과 새집 증후군도 여느 도시에선 찾기 어려운 ‘우리만의 풍경’이란다. 소음이 심한 땅에 아파트를 짓고 방음벽을 치는 건 시각적으로 소통하는 도시환경과 거리가 한창 멀고, 건물을 빨리빨리 지으려고 시멘트·접착제 등을 과도하게 쓴 대가가 새집증후군이라는 설명이다. 그런 조급증 때문에 시간의 흔적이 깃든 건물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끊임없이 건물을 짓고 허무는데, 어떤 ‘기억’이 남을 수 있을까.

 가장 주목할 만한 대목은 ‘방은 아무리 모여도 도시가 되지 않는다’는 주제로 쓴 다섯째 장이다. PC방·비디오방·노래방 등 갖가지 방, 즉 사적 공간에 대한 과도한 집착도 ‘도시다움’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도시에서는 개인 공간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친해지고 교류하는 공간이 충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도시에 생기가, 활력이 넘칠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은 도발적이다. 일종의 충격 요법이다. ‘반도시’ 키워드 8개는 서울이 보다 아름답고, 걷고 싶고, 만나고 소통하는 도시가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이다. 서울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다. 자칫 어려울 수도 있는 건축 이야기지만, 뉴욕 과 서울의 이야기를 대비시키며 풀어놓은 덕분에 술술 읽힌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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