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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 아이, 권투선수, 신학도 … 그리고 테너 조용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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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호떡 장수, 권투 선수, 민박집 주인…. 테너 조용갑씨의 삶은 여느 오페라 못지않게 드라마틱하다.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그가 이달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선다. [김도훈 기자]


‘왜 이렇게 가난할까.’

 어린 시절엔 원망이 가득했다고 한다. 딱히 대상도 없는 분노가 끓었다.

 조용갑(41)씨는 전남 서쪽 끝 섬, 가거도 태생이다. 목포에서 통통배를 타고 세 시간 넘게 들어가야 했다. 아버지는 어부였고, 섬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늘 배가 고팠고, 먹을 걸 찾는 게 일이었다. 동네 친구들을 모아 불장난을 하다 산을 태워먹고, 뗏목을 만들어 아이들을 잔뜩 태운 뒤 바다로 나가기도 했다. 어설픈 뗏목이 뒤집혀 친구들이 물에 빠지기도 했다. 그는 동네의 문제아였다.

 전교생 40여 명의 가거도 분교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기 직전, 아버지는 그를 서울로 보냈다. 무조건 공장에 들어가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기술자가 되지 않았다. 닥치는 대로 일을 벌였다. 길거리에서 호떡을 팔았고, 지하철 안에서 비옷·액세서리 등을 팔았다. 중국집 배달원, 아파트 단지 세차 요원으로도 일했다. 한때는 프로 권투선수로도 뛰었다. 1990년대 중반 한국 챔피언 전초전까지 치렀다고 한다.

 세상에 대한 분노도, 가난도 해결되지 않았다. 신학자가 될 생각으로 신학대학에도 등록했지만 자신을 위한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이때 교회에서 노래를 배우게 됐다.

 무작정 이탈리아 로마로 떠난 때가 1997년 1월. 한 목사가 지원해준 유학 자금을 들고 로마로 갔다. “그 전까지는 뭘 해도 참 안되던 인생이었는데, 희한하게 노래로 하는 일은 다 잘됐어요.” 로마 유학생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 덜컥 합격을 했다. 정식 레슨도 받은 적 없고, 악보도 볼 줄 모르던 그에겐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하루에 8~10시간 연습했던 노력에는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졸업을 하지 못했지만, 조씨는 가거도에서 자라 로마에서 인정받은 기록을 남겼다.

 그는 지금 유럽 각국의 극장에서 주역으로 노래하는 테너다. 쨍쨍한 음성과 배포가 남다르다. ‘토스카’의 카바라도시, ‘오텔로’의 오텔로처럼 드라마틱한 역할을 주로 맡고 있다. “언제나 가난한 환경과 처지를 탓하기만 하며 자랐어요. 가슴에 뜨거움이 있었죠. 지금은 그 불길의 성격이 바뀌었어요. 세계를 위해, 다른 사람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노래와 음악 덕분이라 믿어요.”

 물론, 딴짓 하던 ‘가거도 소년’의 성격은 아직 남아있다. 그는 3년 전 로마에 민박집을 차렸다. 한국 여행객을 대상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밀라노·피렌체 등에 분점까지 냈다. “제법 큰돈을 만지면서 편안해졌지만, 어느 순간 돈은 다 날아갔어요. 아무래도 체계 없이 하다 보니 그렇죠 뭐. 이제 로마만 남기고 정리했어요. 하하.” 그의 드라마틱한 삶은 아직도 계속되는 듯하다.

“한때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배운 성악가들을 못 견디게 부러워했어요. 제 어린 시절은 불편하고 힘들었죠. 하지만 바다로 산으로 다니면서 얻었던 상상력, 세상에 대한 의문, 심지어 분노까지도 지금 오페라 무대를 만드는 저에게 큰 힘이 된다는 걸 이제 알고 있습니다.”

 조씨는 귀공자 타입의 밝은 역할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어딘지 어둡고 비극적인 인물을 표현하는 데 적합한 테너다. 소리에 인생이 스며있다. 이달 한국 데뷔 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 ‘토스카’는 2~6일 오후 7시 30분, 3일 오후 5시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다. 조씨는 3, 5일 출연한다. 02-3476-6224.

글=김호정 기자
사진=김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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