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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영아의 여론女論

우리에게 춘향전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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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영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

‘춘향전’은 ‘옥중화’ ‘옥중가인’ ‘절대가인’ 등의 개작 또는 이본(異本)까지 합쳐 계산하면 1910년대 이후 무려 97종의 서로 다른 ‘춘향전’이 간행되었다. 그리하여 1930년대까지 수만 권씩 팔리고 읽힌 ‘춘향전’이란 근대 이전에 창작·유통된 ‘고전소설’에 머무는 작품이 아니다. 20세기 초 한국에서 가장 많이 인쇄된 책이자 ‘신문학’ 또는 ‘근대소설’의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책뿐이 아니다. 춘향전은 일제 강점기에 공연이나 영화로도 수십 차례 만들어졌다. 일본인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무성영화 ‘춘향전’(1923)은 개봉 후 단 8일 만에 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큰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그리고 한국 최초의 발성영화도 ‘춘향전’(1935)이었으며, 음향기술이나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 여러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역시 상영을 시작한 지 2주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길 만큼 대성공을 거두었다.

 오늘날까지도 한국인의 ‘춘향전’ 사랑은 그칠 줄 모른다. ‘민족의 명절’이면 주기적으로 ‘춘향전’을 재해석한 TV드라마가 방영되고, 지난해에도 ‘춘향전’을 모티브로 한 영화가 만들어졌으며, 한 해에도 수십 편씩 ‘춘향전’에 관련된 학술 논문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니 한국인에게 ‘춘향전’은 영원한 ‘조선국민문학’(‘소설 예고-춘향전 개작’, 동아일보, 1925.9.24)이다.

 20세기 초 ‘춘향전’ 수용의 사회적 맥락은 민중의식과 여권(女權), 나아가 자유연애에 대한 당대인들의 새로운 인식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 작품이 담고 있는 계급, 여성, 사랑, 권력 등의 복합적인 문제가 근대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조선인들에게 자신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에 따라 다양한 감화를 줄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1930년대 일본제국의 파시즘적 통치와 검열 속에서 민족주의자들이 지켜낼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조선적인 것’ 중 하나가 ‘춘향전’이라는 텍스트였다. 또한 어떤 주제의식, 인물, 서사 구조, 담론 등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여전히 재해석될 수 있는 역동성을 담고 있는 텍스트이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이 작품을 다시 읽어보고자 하는 창작자와 수용자, 연구자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이런 대단한 작품을, 최근 한 정치인이 단 한 문장으로 정리하여 ‘춘향전 종결자’가 되어보려 했다가 낭패를 보고 있는 모양이다. 그의 발언에 사용된 어휘가 저속하고 성차별적이어서 일단은 여성들이 먼저 분개하게 됐을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한국인에게 ‘춘향전’이 가지는 특별한 의미를 감안하면, 그의 말은 단순히 여성뿐 아니라 한국인 전체에게도 매우 ‘큰 실수’를 한 것이었다.

이영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