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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돌아보게하는 드라마 - KBS2〈TV문학관 -길은…〉

중앙일보

입력

1997년 교통사고로 숨진 소설가 이균영의 유작이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KBS2가 5일 밤 10시에 방영할 〈TV문학관-길은 그리움을 부른다〉가 그것이다. '어두운 기억의 저편'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이씨는 동덕여대 교수를 지낸 역사학자(한국사)였다.

이번 드라마의 원래 제목은 '나뭇잎들은 그리운 불빛을 만든다'. 시나리오작가 이란이 각색을, 장기오 제작위원이 연출을 맡았다. 제작 목적이 '창사특집'이어서 좀 김이 새긴 해도 모처럼 인생을 성찰케 하는 작품이다.

주인공은 30년 근속 화물차 기관사인 박석우(박진성). 그는 15년 전 아내 아진(송채환)과 사별하고,슬하에 회사원인 딸 인혜(명세빈)와 지금은 종적을 감춘 아들 성호를 두고 있다.

그의 인생에는 죽은 아내말고 또 한명의 여인이 있다. 고향 친구 옥순(김혜리). 한때 동거도 했던 사이지만 옥순은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겠다며 그를 버리고 미국으로 떠났다.

기차와 탄광촌 문곡은 박석우와 두 여인을 운명의 실로 엮어 놓았다. 그는 끊임없이 달려갔다가도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기차의 운행에서 인간의 삶을 읽는다.

드라마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리듬감있게 진행된다. 영화 〈박하사탕〉에서처럼 여기서도 기차는 시간의 경과를 표현하는 데 아주 효과적이다. 박석우의 말동무로 신참 기관사(김용우)를 개입시켜 자연스럽게 내면의 육성을 끌어내는 기법도 참신하다.

예전의 〈TV문학관〉이 그랬듯 이번 작품 또한 문학성은 보장됐다. 탄탄한 원작 덕을 보기도 했고, 시간과 돈에 구애하지 않고 연출자가 맘 먹은 대로 미학을 구현한 결과이기도 하다.

'길은 그리움을 부른다'는 그동안 〈TV문학관〉의 재림을 그리워한 시청자들에게 가뭄 뒤 오랜만의 단비가 될 것 같다. 드라마의 구성에 허점이 없는데다 김혜리 등 연기자들의 역할에 대한 몰입이 두드러져 다소 진부한 스토리란 티도 감춰진다. 다만 아날로그식의 느린 템포가 인내를 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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