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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It’s the men, stupid(문제는 사람이야, 바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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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이재술
딜로이트안진 대표이사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후보 시절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캠페인 문구를 사용해 큰 호응을 얻었다. 다양한 사회정치적 이슈에 앞서 먹고사는 문제가 우선임을 간파한 슬로건이었다. 등 따뜻하고 배 불러야 다른 일에도 관심을 갖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매출과 이익이 늘어야 직원들 주머니가 두둑해지고 자연스럽게 애사심과 근무의욕이 높아진다.

 기업·국가 할 것 없이 모든 조직이 혁신 시스템을 도입해 운영 성과를 높이려고 노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지향점은 같아도 성취 결과에는 차이가 있다. 그 이면에는 사람의 문제가 있다. 지도자의 리더십, 핵심 경영진의 자질과 능력, 구성원의 조직 몰입도와 조직문화 등이 결국 조직의 성과를 좌우한다.

 글로벌 기업들의 성적표에도 이런 현상은 반영돼 있다. 잘나가는 애플·구글과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는 소니·도요타를 가르는 핵심적 차이는 인재관리 시스템에 있다. 경영시스템이 다를 수 있어도 이를 가동하는 역량은 사람에게로 귀착된다. 지난 수년간 많은 다국적기업이 인사시스템과 프로세스 개선에 거액을 투자한 것은 인재 발굴과 육성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효과는 신통치 못했다. 전략적 측면에서보다는 단기적이고 전술적인 시각에서 인재관리를 다뤄왔기 때문이다. 말로는 ‘인사가 만사’임을 외치면서도 그에 부합할 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쏟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인재관리에 대한 책임을 매출목표 달성 실패만큼 명확하게 묻지도 않는다.

 이는 국가 운영에서도 마찬가지다. 야심 차게 출범한 이 정부 초대 장관과 청와대 비서진의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고소영, 회전문, 낙하산’으로 통칭되는 고위 공직자 인사패턴은 최고지도자에 대한 국민적 신뢰에 금이 가게 했다. 최근 화두로 떠오른 공정사회나 전관예우, 관료와 금융기관의 유착 등 문제도 시스템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그 운용을 담당하는 사람의 자질과 역량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는 경제·사회 시스템 전반에 걸쳐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개혁을 단행했다. 2008년 금융위기 후에는 이른바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를 도입해 기업지배구조 시스템에 장착했다. 이처럼 그간 시스템의 도입은 비교적 제때 했지만 실제 운영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것도 결국 사람의 문제다.

 해법은 교육에서 찾아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최고위층의 역량과 리더십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모색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교육 전반의 문제다. 학교교육 혁신을 근간으로 기업이나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평생교육을 보강해야 한다. 세부적으로는 글로벌 시민으로서의 핵심 가치와 직업, 노동윤리 교육을 집중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지난달 초등학교 경제윤리교육 교사로 봉사활동을 하면서 선진국의 아동 경제교육 교재를 살펴봤다. 빚의 개념에서부터 빚을 갚지 못할 경우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파장에 대한 구체적 실례 등이 현실감 있게 제시돼 있었다. 본질적인 교육 내용과 시스템을 고민해야 할 터에 반값 등록금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우니 답답할 뿐이다.

 주말에 장·차관들이 모여 워크숍을 한다고 공정사회가 실현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국가 인재시스템을 점검하고 원활한 작동을 저해하는 근본 원인을 찾아 제거하는 것이 먼저다. 청와대와 행정안전부가 관리하는 인재 데이터베이스도 지속적으로 갱신해야 한다. 사고의 전환도 필요하다. 지식기반 경제에서는 열심히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스마트하게 일해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하다.

 일찍이 맹자는 항산항심(恒産恒心), 즉 먹을 것이 있어야 윤리도덕이 나온다고 갈파했다. 먹을 파이를 키우고 경제를 우선 살려 인재를 잘 등용한다면 공정사회는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을 것이다.

이재술 딜로이트안진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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