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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K팝 열풍을 ‘제2 반도체 신화’로 만들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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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진병화
기술보증기금 이사장

K팝 열풍이 최근 유럽 문화 중심지를 흔들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콧대 높은 유럽 한복판 파리를 기술을 뛰어넘는 문화로 수놓았으니 이보다 짜릿한 일이 있을까. 이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프랑스뿐만 아니라 멀리 영국·독일·이탈리아 팬들까지 달려와 열광했다니 우리나라가 문화적 변방에서 중심지로 발돋움해 가는 것 같아 참으로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이런 모습은 필자가 10년 전 유럽개발은행에 근무할 때와는 많이 달라진 것이다. 당시 우리는 반도체·전자·자동차·조선 산업을 통해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기술강국이었으나 문화 선진국을 자부하는 유럽인의 눈에는 여전히 미미한 존재였다. 마침 필자는 K팝 공연이 있던 시기에 파리에 있었다. 양국 간 혁신형 중소기업 지원 협약을 체결하기 위해서였다. 프랑스 정부가 우리를 대하는 모습은 기대 이상이었다. 대단히 우호적이고 협력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다. 10년 전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한류의 세계화는 단순히 대중문화 수출에 그치지 않는다. 패션·화장품·뷰티케어·여행·음식·정보기술(IT) 제품 등 후방산업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 우리 경제의 높은 대외의존도와 고용 없는 성장으로 경제 활력이 저하된 상황에서 내수 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지식·기술·문화 등으로 대변되는 소프트파워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길이다. 관련 서비스산업을 활성화하는 건 긴요한 정책과제라 할 수 있다.

 K팝으로 대표되는 신한류 열풍이 한때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취약한 서비스 수지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면서도 산업 부문의 경쟁력으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선 지속적 지원이 필요하다. 기술 분야에 대해선 그간 다양한 지원 방안을 강구해 왔으나 지식·문화 등의 분야엔 전반적 지원이 미약했다. 특히 제도금융권의 지원은 거의 전무했다는 지적도 있다.

 드라마·영화·공연 등 문화콘텐트의 제작사는 대체로 영세한 데다 제조업과는 달리 핵심 요소인 작품성·흥행 가능성 등 무형의 가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 또한 어렵다. 심지어 사업 주체도 콘텐트의 흥행 가능성을 예측하지 못하는 등 사업의 리스크가 크다. 제도금융권의 자금 지원이 거의 이뤄지지 못하는 이유다. 모험 투자에만 의존한 채 어렵게 하나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많은 중소기업이 어렵게 기술을 개발하지만, 그 뒤에는 생산과 판매 능력 약화로 죽음의 계곡(Death Vally)에 빠질 가능성이 큰 것처럼 문화콘텐트 산업도 다르지 않다. 유튜브가 열린 공간을 통해 K팝 가수에게 성공을 안겨준 것처럼 좋은 아이디어와 콘텐트가 있는 문화산업이 시장에서 평가·검증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기술보증기금은 수년 전부터 문화콘텐트산업 지원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문화산업에 대한 독창적인 평가지표 개발, 관련 업계의 회계 투명성 제고 등의 다각적인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반도체와 자동차·전자제품 등의 기술력이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듯 이제는 머리로 먹고사는 지식·문화 서비스산업 같은 창의산업이 다음 바통을 이어받을 차례다. 우리의 작은 노력이 결실을 맺어 문화콘텐트가 기술 평가를 통해 가치를 정당하게 인정받아 서비스산업을 활성화하고, 문화 중심지를 선도하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진병화 기술보증기금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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