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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해맑은 미래 위해 아름다운 공부방 꾸며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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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한다. 방이 있어도 안정감 있게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어려운 소외계층 아이들은 또래에 비해 열등감을 갖기 쉽다. 이를 위해 지역 기업이 나섰다. 이날 하루 만은 직장인에서 봉사자로 변신해 주거환경이 열악한 아이들의 공부방을 꾸며준다. 미래의 꿈나무들은 새롭게 탄생한 공간에서 용기를 얻었다.

강태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삼성코닝정밀소재 천안사업장 ‘천지창인’ 봉사단이 영은이(가명)의 공부방을 꾸며준 뒤 환하게 웃고 있다. 봉사단은 영은이가 좋아하는 보라색 계열의 벽지를 골라 붙였다. 봉사단은 매월 한 차례 소외계층 아동의 공부방을 꾸며주고 있다. [조영회 기자]

“허름한 집에 예쁜 공부방 생겼어요”

면역력이 약해 병원을 자주 다니는 영은(가명·중1)이. 한 번도 아빠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아빠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태어난 지 100일만에 엄마도 집을 나가는 바람에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최근 도심 속에 들어선 아산의 한 아파트 단지 뒤편 작은 집. 말끔히 정리된 울타리 맞은 편으로 시멘트 벽돌로 쌓은 담장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오래된 철문은 쓰러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 창문 방충망은 찢어졌고 슬레이트 지붕 사이사이 구멍이 뚫린 모습은 아파트 단지와 묘한 대조를 이뤘다.

 생활이 빠듯하지만 영은이는 학교에서 웃음을 잃지 않고 생활하는 친구다. 방에 가득한 상장은 영은이의 밝은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17일 아침. 주말을 앞두고 인적이 드물었던 영은이 집에 밝은 모습의 건장한 청년들이 찾아왔다. “할머니, 근처 회사 다니는 봉사단이에요. 오늘 하루 동안 아들이라고 생각하시고 편하게 대해 주세요. 신경 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삼성코닝정밀소재 ‘천지창인’ 봉사단이 영은이네 집을 방문했다. 팔을 걷어붙인 이들은 집을 한 번 둘러본 뒤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자연스레 각자 맡은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한 명이 벽지를 붙일 때 한 명은 장판을 교체했다. 또 다른 한 명이 전기 배선을 새로 깔면 다른 쪽에서는 영은이가 공부할 책상과 옷장을 조립했다. 선풍기 하나 없는 비좁은 방에 모인 장정 6명의 옷이 어느새 땀으로 흠뻑 젖었다.

영은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모든 작업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쉴 틈 없이 작업은 계속됐다.

 할머니가 고생하는 청년들의 모습이 안쓰러운지 물을 건네자 “알아서 먹겠다”며 봉사자들은 오히려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나사를 조이고 망치질 하고 벽지에 풀칠 한지 5시간 만에 어두웠던 방과 거실이 환한 보라색 분위기의 은은한 공간으로 재탄생 했다. 창문엔 새 방충망을 붙였고 낡은 전선도 말끔히 정리했다. 새 책상 위엔 최신 컴퓨터와 책꽂이, 필통, 노트 등 각종 학용품이 놓였다.

 영은이가 학교에서 오자 할머니와 봉사단이 영은이를 반겼다. 집안을 둘러본 영은이는 좁은 방이 아기자기한 예쁜 공간으로 바뀐 모습을 보고 연신 함박웃음을 지었다.

저소득층 아동을 위한 ‘해맑음 배움터’

기업과 사회복지기관이 손잡고 추진하는 ‘해맑음 배움터’가 지역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해맑음 배움터’는 아동들이 자신만의 공간에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학습 공간을 마련해주는 사업이다. 저소득 가정일수록 공부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삼성코닝정밀소재 천안사업장과 어린이재단 충남지역본부, 아산시는 지난해 9월 6일 협약을 맺고 매월 한 가정을 찾아 교육환경을 개선해 주고 있다. 아산시와 어린이재단이 대상자를 선정하면 삼성코닝정밀소재 전문봉사단이 가정을 방문한다.

 영은이 가정을 비롯해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와 살고 있는 지선(가명·중2)이, 병에 걸린 엄마와 힘겹게 살아가는 성환(가명·중1)이, 어머니가 가출한 가정에서 아버지와 살고 있는 병식(가명·15)이 등 아픈 사연을 가진 10명의 아동이 ‘해맑은 배움터’의 도움으로 자신의 공부방에서 학습의욕을 높이고 있다.

봉사단이 고장난 문고리를 고치고 있다. [조영회 기자]

봉사단은 단순히 공부방을 꾸며주는 것 말고도 멘토링을 통해 아이들이 자립심이 생길 때까지 정서적, 문화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해맑은 배움터’에 소속된 봉사단 가운데 학업과 문화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봉사팀이 별도로 꾸려져 학습지도를 하고 아이와 문화공연을 관람하는 등 꿈과 희망을 선물하고 있다. 봉사단은 2014년까지 모두 50가정(가정당 350만원 상당)을 찾아 후원할 계획이다.

지역 기업의 남다른 이웃사랑

삼성코닝정밀소재는 가까운 곳, 잘하는 것, 필요한 곳에 도움을 주기 위해 사내자원봉사센터를 중심으로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어린이재단과 함께 하는 ‘해맑은 배움터’ 외에도 별도로 ‘해맑은 둥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06년부터 주거환경이 열악한 가정 12곳을 발굴해 맞춤형 환경개선, 학습지도, 상담, 문화체험 등의 자원봉사활동을 전개했다. ‘해맑은 둥지’를 비롯해 심장병 등 선천성 질환을 갖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치료비를 지원(130명 환아 지원)하는 ‘해맑은 아이’, 저소득층가정에 인공수정 시술비를 지원(650쌍 난임 부부 지원)하는 ‘해맑은 엄마’, 노숙인 자존감 회복을 위한 인문학 과정인 ‘해맑은 희망’, 지역아동센터의 학습·문화와 시설을 지원하는 ‘해맑은 미래’, 농촌마을을 돕는 ‘해맑은 고향’, 학교·장애인·조손가정·독거노인 등 소외계층을 지원하는 ‘해맑은 우정’ 등 지역을 위한 공헌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지난해엔 김장김치를 직접 담가 전달하는 ‘사랑의 김장김치 나누기’ 행사를 열어 1500명의 이웃들에게 사랑을 전했다. 성탄절에는 저소득가정아동을 위한 산타원정대가 돼 선물을 전달했다.

 삼성코닝정밀소재 ER그룹 자원봉사센터 백우영 사원은 “올 겨울 눈 내리는 날 아산 송악면에 있는 집에 봉사활동을 갔는데 부모 없이 할아버지와 할머니, 삼남매가 공부방이 생긴다는 사실에 하루 종일 싱글벙글 해맑게 웃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며 “또 다른 가정의 한 학생은 삼성에 꼭 입사해 열심히 일하면서 자신과 같은 어려운 형편에 놓인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어린이재단 충남지역본부 박소현 나눔플래너는 “삼성코닝정밀소재 같은 나눔을 실천하는 기업들이 더욱 많이 생겨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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