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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사업 영역 오가며 아메리칸 드림 일군 장정헌 유니뱅크 이사장의 '나의 경영비결'

미주중앙

입력

사업가에게 성공과 실패는 어찌보면 숙명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성공가도만을 달리는 사업가는 드물다.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막과 내리막이라는 굴곡을 겪는다. ‘애플신화’의 주인공 스티브 잡스도 본인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나는 참담한 경험을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진짜 승부는 내리막에서 가려진다. 이 시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오르막의 속도도 결정되기 때문이다. ‘성공스토리’의 백미는 실패의 극복 과정인 셈이다.

‘사업가 장정헌(69)’은 몇 년전 USDF라는 캘리포니아 최대의 염색공장을 대형 의류업체인 아메리칸어패럴에 매각해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그 전에는 윌셔가의 대형 빌딩을 매입해 뉴스가 되기도 했다. 한때 8개의 기업을 거느렸던 그도 알고 보면 이를 악물고 내리막을 견뎌낸 사람이다.

30대 초반의 새파란(?) 나이에 목재회사 미주지사장으로 발탁돼 오르막에 올랐다가 2년 뒤에는 회사의 파산으로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기도 했다. 윌셔가의 빌딩도 한 푼 건지지 못하고 넘기는 쓴 맛도 봤다. 하지만 위기마다 그를 지탱해 준 것은 ‘죽을 힘을 다하면 안 될 것이 없다’는 신념이었다.
다양한 사업 영역을 오가며 수많은 고비를 넘긴 그의 지난 이야기는 불경기로 속앓이를 하는 이들에게 비타민이 될 수도 있을 법하다.

-아무래도 힘들었던 시절의 얘기부터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민이나 유학이 아닌 '미주지사장'이란 안정된 신분으로 미국생활을 시작하셨는데.

"1973년 당시 한국 100대 기업 안에 드는 목재회사의 미주지사장으로 미국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2년 후 회사가 도산을 했습니다. 황당한 일이 벌어진 거죠. 당장 네 가족의 생계 문제가 막막했습니다. 수영장 청소를 하다 회계를 공부한 덕에 일본계 식품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는 휴즈항공사에서 야간 근무를 했고요. 아내가 퇴근하는 아침 시간에 어린 두 딸과 함께 픽업을 가곤 했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내가 차 뒷좌석의 잠 든 두 딸을 보더니 하염없이 우는 거예요. 집까지 오는 동안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서로가 '이렇게 살려고 미국에 온 건가'하는 생각을 했을 법 하다.

세탁소로 기반닦고 아파트·무역 사업 확장했지만
윌셔가 빌딩 한푼도 못건지고 넘기는 고비 겪기도

-세탁소로 기반을 잡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얘기 좀 들려주시죠.

"70년대 후반 세탁소를 매입했습니다. 우연히 만난 친구의 조언이 계기가 됐죠. 하지만 결심을 굳힌 것은 우연히 봤던 국세청(IRS)의 업종별 수익 분석 자료였습니다. 그 자료에는 의식주 관련 업종의 이익이 가장 좋은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세탁소는 의류와 관계가 있는 업종이고요. 그래서 미국세탁협회에 업계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협회에서 받은 자료에는 세탁소 운영 방법과 전망 등 다양한 정보들이 담겨있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외우다시피 했죠. 가장 강조했던 것이 입지조건이었던 같아요. '이론무장'후에 밸리지역에서 적당한 업소를 찾았습니다."

-이론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한 이유가 있습니까.

"생소한 업종이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죠. 하지만 제 비즈니스 스타일이 그런 것 아닌가 싶어요. '일단 시작하고 보자'가 아니라 철저한 연구와 분석을 한 후 '자신있다'는 판단이 섰을 때 시작하는 거죠."

-바로 돈을 버셨겠네요.

"천만에요. 철저히 점검한다고 했는데도 속았어요. 전 주인이 매상을 두 배나 부풀렸던 거죠. 여기에다 직원들 텃세 고객 이탈로 매상은 갈수록 줄었습니다.전 재산에 융자까지 얻어 시작한 사업이었는데 큰일 난 거죠. 절망뿐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며 50만달러짜리 생명보험에 가입하고 자살할 장소를 둘러보기까지 했겠어요. 그러다 생각을 바꿨습니다. '죽을 각오면 무엇인들 못하겠나'하는 생각에 한번 더 도전해 보기로 한 거죠. 고객의 이름부터 외우고 판촉물도 다양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영업이 잘 되는 세탁소들을 돌며 무료봉사를 해주고 곁눈질로 노하우를 배웠습니다. 8개월만에 매상이 오르기 시작하더군요."

- 그럼 지금 회장으로 계신 '웰위시 트레이딩'은 언제 설립하신 겁니까.

"세탁소를 하며 모은 돈을 아파트에 투자했습니다. 그리고 무역도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80년대 후반 아파트를 모두 처분하고 웰위시 트레이딩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무역에 나섰죠. 미국이나 유럽에서 폐지 등을 모아 동남아시아에 수출하고 합판과 신문용지 등을 수입 판매하는 것이 주업이었습니다. 2002년 이 분야에서 미국 4위까지 올랐죠."

이후 리사이클링의류투자사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등을 계속 설립해 2000년대 중반에는 총 8개 기업을 이끌기도 했다.

2000년대 8개의 기업 거느리면 '아메리칸 드림'
시애트래 소재 유니뱅크 이사장으로 새로운 도전

-웰위시 트레이딩 설립 이후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는 얘기군요.

"아닙니다. 90년대 초반 윌셔가의 빌딩을 넘겨야 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저를 믿고 투자했던 분들을 생각하면 정말 미칠 노릇이었습니다. 가슴 속 원망과 분노도 컸습니다. 매일 사격을 하며 간신히 마음을 다스렸습니다. 그러다 한 스님과의 만남이 저를 다시 구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불로써 어찌 불을 끌 수 있으며 물로써 어찌 물을 막을 수 있느냐'는 말씀을 듣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다시 정신이 맑아지더군요. 당시 귀마개도 하지 않은 채 얼마나 사격을 많이 했던지 청력이 손상을 입었을 정도였지요."

-'아메리칸드림'을 향해 뛰고 있는 후배들에게 본인의 경영철학을 들려준다면.

"철저한 준비와 과감한 변화입니다. 제가 이런저런 사업을 벌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원칙을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사마다 전문경영인을 두고 이사회를 구성했죠. 이사진에는 사외이사 형식으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영입했습니다. 사업을 위해서는 다양한 정보가 필요하거든요. 그리고 인간관계는 서로 존중할 줄 알아야 오래갑니다. 거래처나 고객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의 일화를 들려줬다. 소유하고 있는 리사이클링 회사가 계속 적자를 기록해 전문경영인에게 해법을 물어봤더니 부정적인 답변만 하더라는 것. 즉시 직접 나서 2개월만에 작업환경과 근무시스템 개선직원복지 확대 등 회사를 확 뒤집어 놓았다고 한다. 그 효과 덕분인지 곧 흑자로 돌아서더라는 설명이다. 장 회장은 한인가정상담소 이사장을 역임했고 동서문화센터의 이사로도 활동중이다.

"유니뱅크 전국구 은행 키울 것"

칠순을 바라보는 장 회장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시애틀 소재 유니뱅크를 ‘전국구’은행으로 키우겠다는 포부다.
지난 2006년 설립된 유니뱅크는 현재 자산이 1억5000만달러 규모다. 4년 연속 흑자를 기록할 만큼 탄탄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감독국으로부터 북서부 지역의 우수은행으로 분류될만큼 자본금 비율도 탄탄하고 실적도 좋아 기회만 되면 적극적인 인수합병(M&A)에도 나설 계획이라고 한다.

“자본금 5억달러 규모의 은행으로 만드는 것이 일차 목표입니다. 이후에는 서부와 동부 지역 모두에 영업망을 갖춘 은행으로 발전시키는 것이죠.”

이런 목표를 위해 LA와 시애틀을 부지런히 오가고 있다.

"이사회의 역할은 경영을 지원하고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 하는 것입니다. 이사장의 가장 큰 책임이기도 합니다.”
그의 또 다른 도전이 기대된다.

글=김동필 경제부장
사진=신현식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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