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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발견한 것보다 놓친 게 더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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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박은철 연세대 교수

주부 김형순(67·경기도 안산시)씨는 올 초 건강보험공단의 건강검진에서 위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위염이 발견됐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서 약 처방만 받아 왔다. 그러나 4개월 후 속이 좋지 않아 병원을 찾았고 조직 검사에서 위암 2기 진단이 나왔다. 김씨 가족들은 “아무래도 첫 검진에서 오진을 한 것 같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정기 암 검진에서 음성(암이 없음) 판정을 받은 지 1년 내 조직검사를 통해 암 진단을 받는 ‘황당하고 억울한’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정기검진을 받은 사람이 ‘암 검사로는 이상이 없다’는 통보를 받은 지 수개월∼1년 만에 4기암 등 말기 암 판정을 받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 박은철 교수팀은 2002~2006년 국가암검진사업을 분석한 결과 음성 판정을 받은 의료급여 수급자 가운데 검진일로부터 1년 내 암 환자로 진단된 사람은 모두 2만608명에 달한다고 20일 밝혔다. 이는 같은 기간 국가암검진사업을 통해 암 의심판정을 받은 뒤 암 환자로 진단된 사람(1만9086명)보다 많은 숫자다. 암 음성 판정이 1년도 안 돼 뒤집히는 것은 오진(誤診)·판독 오류 등 검진의 질이 낮기 때문일 수 있다. 검진 당시 암의 크기가 지나치게 작거나 검진 이후 암이 빠르게 자라는 등 검진이 어려운 경우가 있다. 특히 유방암의 경우 이 기간에 5914명이 암 음성 판정 뒤 1년 내 암 환자로 진단됐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 40대 여성의 20∼30%가 지방이 적은 ‘치밀(납작) 가슴’이어서 유방 촬영술만으론 암을 조기에 찾아내기 힘들다”고 말했다.

 서울의 대형병원장이던 H씨는 2009년 서울 S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은 지 3개월 만에 췌장암 4기 판정을 받고 이듬해 4월 숨졌다. 그는 암 진단을 받은 뒤 자신의 암 검진 결과를 직접 검토했으나 “암을 의심할 만한 단서가 없었다”고 말했었다. 강동경희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전성하 교수는 “암이 배로 자라는 시간인 ‘더블링 타임’은 3∼6개월인데 소세포 폐암처럼 1개월 이내인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기검진 뒤 1년 만에 말기 암으로 진단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는 것이다.

 국립암센터 전재관 암검진사업단장은 “유방암 음성 판정 뒤 1년 내 유방암으로 진단된 여성 1000여 명의 검진 결과를 회수해 검진이 제대로 됐는지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위·대장 내시경 검사는 의사 눈에 의존할 뿐 필름 등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검진의 질 관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성심병원 혈액종양내과 장대영 교수는 “평소 자신의 몸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고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는 것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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