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B 법정 리포트] SK네트웍스-써클원, 인도네시아 KBB 탄광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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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천연자원의 보고인 인도네시아로 진출하는 국내 기업이 급증하는 가운데 국내 업체들 간의 법정 다툼으로 대형 유연탄 광산개발 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사진은 인도네시아의 에너지회사인 PT 아다로의 석탄 채굴 현장. [블룸버그뉴스]


지난 13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동관 566호에선 SK그룹 계열사인 SK네트웍스와 중소기업인 써클원컨설팅의 법정 공방이 있었다. SK를 대리한 법무법인 KCL은 “SK가 써클원에 출자한 2000만 달러와 빌려준 1380만 달러를 돌려달라”고 주장했다. 출자 당시의 계약을 써클원 측이 어겼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면에 써클원을 대리한 대륙아주법무법인은 “SK가 약속한 돈을 아직까지 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개발을 진척시킬 수 없었다”며 “계약을 위반한 쪽은 SK”라고 반박했다.

 양측이 공방을 벌이는 건 써클원이 갖고 있는 탄광 개발권 때문.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 있는 KBB탄광은 면적이 서울의 3분의 1(1만8440ha)에 해당하는 대규모다. 매장된 발전용 유연탄만도 무려 2억3000만t으로 추정될 정도.

 우리나라는 발전용 유연탄을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지난해 수입량과 수입액이 각각 7550만t과 70억 달러. 정부가 지정한 6대 전략광물 중 하나다. KBB탄광은 한국 업체가 해외에서 개발 중인 탄광 중 최대 규모다. 최근 일본 원전 사고로 발전 유연탄의 국제가격도 솟구치고 있다. 2009년 t당 84달러였던 평균 수입단가가 지난해 104.3달러, 올 4월 131.8달러로 급등했다. 이 때문에 정부도 양측의 법정 공방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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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에 오기까지=써클원이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KBB탄광의 개발권을 따낸 건 2007년 3월. 한국이 이 나라에서 확보한 석탄 개발사업으로는 사상 두 번째였다. 1982년 삼탄의 자회사인 키데코(KIDECO)가 개발권을 딴 이후론 처음이었다. 수많은 국내 기업이 탄광 개발권을 따내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SK네트웍스 역시 여러 차례 도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갖은 노력 끝에 개발권을 확보한 써클원과 공동개발에 나선 건 그래서였다.

 SK는 2007년 말 2000만 달러(약 216억원)를 투자해 지분 23.5%를 받았다. 또 타당성 조사와 탄광 개발 인프라 건설을 위해 2200만 달러(약 240억원)도 빌려주기로 했다. 이 돈으로 써클원은 KBB탄광의 타당성조사를 2009년 4월 마쳤고, 개발 인프라도 건설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SK는 2009년 초 돌연 대여금 지급을 중단해 버렸다. 공교롭게도 글로벌 금융위기로 석탄값이 급락한 직후였다. SK는 2200만 달러 중 그동안 주고 남은 돈 820만 달러를 주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이 때문에 탄광 개발은 전면 중단됐다. SK는 이듬해인 2010년 3월 투자금과 대여금을 되돌려달라는 소송도 제기했다.

 ◆양측의 주장=SK는 써클원이 출자 당시의 계약을 어겼다는 주장이다. 광업개발권만 소유했을 뿐 탐사와 채굴 등 석탄개발사업에 필요한 각종 인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KBB탄광의 전체 면적 중 상당 부분에선 이미 다른 사람들이 석유와 농장, 조림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전체 탄광을 개발하는 것처럼 속였다는 의미다. 대여금 역시 개발사업에만 쓰는 것으로 돼 있는데도 임금인상 등으로 유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써클원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밝혔다. 계약서엔 인가로 돼 있을 뿐 탐사와 채굴을 위한 토지사용 허가까지 포함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탐사 허가는 석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에서 순차적으로 받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타당성 조사가 끝난 2009년 2월에 허가를 받은 이유라고 했다. 채굴 역시 인프라를 건설하고 생산 단계로 진입하기 직전에 허가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SK가 계약을 체결하기 전 4개월이나 현장실사를 벌였다고 밝혔다. 농장과 조림사업을 하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고 이를 실사 보고서에 기록해 놓고도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써클원은 농장 사업주 등과 석탄 개발에 영향을 주지 않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SK가 제소한 건 써클원의 개발 사업권을 뺏기 위한 의도라는 것이다.

 ◆해결책은 무엇인가=문제는 양측의 법정 공방이 2년째 지속되면서 탄광 개발사업이 전면 중단됐다는 점이다. 1심 판결에서 누가 이기든 항소심으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되면 개발은 더 늦어진다. 그렇다고 마냥 늦출 수도 없다. 내년 4월까지 석탄 개발을 위한 인프라 건설을 마치지 못하면 개발권을 취소당할 수 있다. 천신만고 끝에 따놓은 개발권이 집안 다툼으로 자칫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써클원은 법정 공방이 길어지자 외국에 매각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이 경우 국가적 손실이 상당하기 때문에 정부도 속을 끓이고 있다. 지식경제부 김정관 차관은 “개발권이 외국으로 넘어가는 사태는 최소한 막아야 한다”며 “양측이 갈등을 풀고 다시 힘을 합쳤으면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차제에 광물자원공사가 인수하는 것도 한 방안이라고 밝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골리앗과 다윗의 한판 승부에서 누가 이길까. 23일 나올 1심 판결이 주목된다.

김영욱 경제전문기자·논설위원

 중앙경제가 신설한 Law & Biz 면은 기업 활동과 직결된 법률 정보와 법정 공방을 다룹니다. 법률시장 개방의 파장과 국내 로펌들의 대응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관련 정보나 행사·동정이 있으면 lawnbiz@joongang.co.kr의 문을 두드려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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