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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계 남성들 신랑감으로 인기 상승

중앙일보

입력

리자 로즈비어(31)
는 10년간 함께 살던 '전형적인 미국 남자'와 이혼한 뒤 새로운 스타일의 남자와 살고 싶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상형을 따져 보았다. 머리 좋고, 진실하고, 예의바른 사람. 한마디로 그녀의 이상형은 전에는 연애상대로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아시아계 남성이었다.

그래서 한국계 미국인 웨인 장이 거리에서 그녀를 불러세운 건 타이밍이 절묘했다. "헤어스타일이 멋있어요. 아스트로걸 같아요." 그 일본 만화 주인공의 열성팬인 로즈비어는 "난 아스트로걸을 좋아해요"라고 대답했다. 둘은 그 뒤로 함께 살고 있다.

이 러브 스토리는 일견 특별할 게 없어 보인다. 미국에는 이민족 간에 결혼한 부부가 한둘이 아니며 그것도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10년 전만 해도 아시아계 남성이 백인이나 라틴계, 또는 흑인 여성과 데이트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지난 30년 동안 아시아계 미국인 사회는 자기네 여성들이 타민족과 결혼하는 것에 익숙해져 왔다.

그러나 남성의 경우는 달랐다. 1980년 조사에 따르면 아시아계 여성과 백인 남성의 결혼 비율은 아시아계 남성과 백인 여성에 비해 세 배나 됐다. 이같은 불균형의 원인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견해가 엇갈린다.

미국에서 태어나는 많은 아시아계 남성은 알맞은 여성(같은 민족에, 좋은 집안이라는 뜻)
과 결혼해야 효자라는 강한 압력을 받아 왔다는 것이 한 가지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타민족과의 동화는 흔히 나쁜 것으로 간주됐다. 장의 가족들은 그에게 "자식 낳고 잘 살아라. 다만 참한 한국 규수여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시아계 남성들은 미국 사회로부터 이상적 남성형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변하고 있다. 인구학자 래리 하지네 시나가와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아시아계 남성이 타민족과 결혼하는 추세는 전에 없이 높아지고 있다. 시나가와는 캘리포니아주의 혼인신고 자료를 검토한 뒤 미국에서 태어나는 아시아계 남성은 백인 여자와 결혼하거나(18.9%)
, 다른 아시아 민족과 결혼하거나(22.7%)
, 다른 소수민족과 결혼할(6%)
확률이 최근 이민자들보다 훨씬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시나가와는 그같은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언론에선 전에는 나약하고 성적 매력이 없으며 백인 남성처럼 지위와 안정을 주지 못하는 집단으로 인식돼 온 아시아계 미국 남성의 이미지를 바꾸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백인 여자와 함께 사는 필리핀계 말론 빌라는 이렇게 말했다. "흑인 남성은 정력이 좋고 백인 남성은 힘이 있지만 아시아계 남성은 여자들이 쳐다보지도 않을 작은 체구의 겁쟁이들이라는 게 종전의 인식이었다."

화면에서 딱딱하고 속을 알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긴 중국인 캐릭터 찰리 챈은 아시아계 남성의 전형적 이미지였다. 아시아계는 하인이나 비열한 악당역이 단골이었다. 브루스 리(李小龍)
라는 슈퍼맨이 탄생했지만 그가 여자와 엮어지는 장면은 없었다. 그러다가 재키 챈(成龍)
이 등장한다. "그는 재미난 무술 연기자지만 그와 동침하고 싶은 생각이 들겠는가"고 샌프란시스코大의 사회학 교수 레베카 치요코 킹은 묻는다.

그러나 이제는 저우룬파(周潤發)
·릭 윤(尹聖植)
·제트 리(李連杰)
같은 새 배우들이 아시아계 스타도 누구 못지 않은 연애상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周와 조디 포스터가 주연한 ‘애너와 킹’과 尹이 나오는 ‘삼나무숲에 내리는 눈’의 미남 주인공들을 보라)
. “제트 리가 워너 브러더스社와 출연계약을 맺은 것은 ‘리셀웨펀4’의 예비 시사회에서 여성들의 반응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영화제작자 크리스 리는 말했다. “아시아계 남성이 그저 총이나 쏘아대는 악당이나 멋없는 멍청이로 나오지 않고 로맨틱한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가 늘게 확실하다”고 그는 말했다.

버들가지 같고 양성적인 ‘나비부인’ 이미지에 고정됐던 아시아계 패션모델들의 이미지도 바뀌고 있다. 디자이너와 광고회사들은 이제 아시아계 남성의 새로운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이런 현상은 돈에도 원인이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경제적·사회적 지위가 상승하는 것과 발맞춰 아시아계 미국인 남성들의 섹시한 이미지가 부각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민족별로 따지면 아시아·태평양군도계의 대학 진학률(42%)
과 중산층 소득(4만5천2백49달러)
은 미국에서 최고다.

스탠퍼드大 역사학 교수 고든 창은 아시아계 미국인 남성의 이미지가 ‘일꾼이나 세탁인의 아들’에서 ‘미래의 인터넷 백만장자’로 진보해 왔다고 말했다. 머리 좋고 부지런하며 일만 열심히 하는 아시아계 미국인 남성의 부정적 이미지가 야후 공동창업자 제리 양의 시대에서는 긍정적으로 바뀐다. 이 모든 것이 결혼시장에 은근한 영향을 끼친다고 사회학자들은 말했다. “결혼 패턴을 보면 사회적 지위가 파트너의 평가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고든 창은 말했다.

그러나 이민족과의 데이트를 모두들 긍정적 시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이민족과 결혼하는 아시아계 미국인은 동포들로부터 ‘백인 물이 들었다’거나 ‘핏줄 배반자’라고 낙인찍힐 각오를 해야 한다. 다른 집단에 파트너를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이민족 간의 데이트를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이민족간 결혼이 모두 동등하지 않은 것은 여전하다고 시나가와는 경고한다. 전형적 아시아계 남성이 백인 여성과 결혼한다고 해서 같은 아시아계 여성들처럼 백인 사회로부터 동등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백인 사회로부터 사회적으로 더 큰 인정을 받게 되는 것도 아니고 아시아계 가족으로부터 더 큰 인정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 어느쪽에서도 떠받들어주지 않는다.” 이런 이유 때문에 타민족과 결혼한 아시아계 남성들의 이혼율은 같은 아시아계 여성과 결혼한 사람들에 비해 훨씬 높다고 시나가와는 말했다.

이민족 결혼에 대한 견해야 어떻든 간에 대다수 학자들은 새로운 데이트 패턴을 긍정적 변화로 받아들인다. 캘리포니아大(버클리)
의 아시아계 미국인 역사학 교수 로널드 타카키는 “전에는 우리의 존재가 눈에 띄지 않았으나 이제는 확연해졌다. 우리는 미국인이라는 것의 정의를 새로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계 남성들은 자신에 대한 정의를 새로 내리고 있다. [뉴스위크=Esther Pa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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