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2003년 가을 배우 문성근(사진)씨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친서를 갖고 방북했다고 밝히면서 방북 경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문 이사장은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 남북관계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진정성을 북한에 이해시키기 위해 문씨가 방북했다고 공개했다.
문씨가 친서를 전달한 북한 측 상대는 김용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2003년 10월 사망)였다고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15일 밝혔다. 김 비서는 당시 북한의 대남정책 책임자였다.
이 전 장관은 “문씨는 평양에서 수일간 머무르며 김용순 비서를 만났다”며 “(이후) 김 비서는 문씨에게 노 대통령의 뜻을 잘 받아들였고 친서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잘 전달됐다’고 알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한과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 한반도 전체의 이익이라는 게 노 전 대통령의 철학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친서엔 ‘대화를 통한 남북관계 증진과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중요한 만큼 이를 김 위원장과 논의할 의지가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단, 당장 정상회담을 하자는 건 아니었다”고 말했다.
문씨는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 때 47명의 민간인 특별 수행원에 포함돼 방북하기도 했다.
이 전 장관에 따르면 문씨 방북은 노 전 대통령의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2003년 가을로 접어들며 한·미 관계 조정 등 집권 초반의 외교 현안이 정리되자 노 전 대통령은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알릴 필요성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는 “문씨는 2002년 대선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를 도와 대통령의 신뢰가 깊었고, 문씨 가계로 볼 때 북한도 특사로 간주할 적절한 창구였다”고 말했다. 문씨의 부친 고 문익환 목사는 1989년 방북한 바 있다. 문성근씨 방북 이후인 2004년 2월 북한은 정부에 “6자회담 재개에 동의한다”고 알려왔고, 같은 해 6월엔 남북 장성급회담에도 응했다. 이 전 장관은 문씨 방북을 공개하지 않은 데 대해 “남북간 비공개로 진행된 일을 생색내겠다고 공개할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청와대 외교안보라인 관계자는 “문씨가 대북특사로 갔다는 걸 알지 못한다”며 “참여정부로부터 그에 대한 얘기가 우리에게 전달된 건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두아 원내대변인도 “전문성도 없는 인물을 밀사인지 특사인지 모를 자격으로 보낸 것은 남북관계의 아마추어리즘을 보여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 안형환 대변인도 “(전 정부 인사들이) 현 정부의 대북 대화를 비밀스럽다고 비판해온 게 무색하다”고 했다.
채병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