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우아함의 상징, 19세기 파리 남녀의 액세서리‘카멜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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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의 가슴에, 혹은 모자에, 아니면 손목에 . 그의 모습에서 눈에 띄는 한 송이 꽃이 있다. 그의 작품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꽃. 동그랗고 단순한 모양새가 우아하고 단아한 느낌으로 샤넬 룩의 이미지를 살려주는 꽃. 카멜리아다.

카멜리아는 국내에서는 동백꽃으로 알려진 꽃이다. 학명은 ‘카멜리아 자포니카’(Camellia japonica)다. 종의 차이가 있어 꽃의 모양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둥근 모양에 꽃잎이 규칙적으로 배열된 기본적인 형태는 같다.

가브리엘 샤넬은 유독 이 꽃을 좋아했다. 그 이유에 대해 ‘연인이었던 보이 카펠이 카멜리아 꽃다발을 줬기 때문이다’ ‘그가 애지중지했던 코로만델 스크린(중국 병풍)에 이 꽃이 새겨져 있어서 영감을 받았다’ 등 많은 가설이 있지만 정확히 밝혀진 이유는 없다.

다만 평론가들과 업계 관계자들은 카멜리아가 19세기 유럽 사교계에서 몸을 치장하는 장식품으로 사용되면서 개방적인 여성을 상징했다는 점, 남성과 여성이 함께 사용하는 장식물로서 양성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 등을 이유로 추정하고 있다. 개방적인 여성, 양성적인 매력 등은 샤넬이 추구했던 디자인 철학과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다. 그는 깔끔하고 단순한 디자인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또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여성을 의복으로부터 ‘해방’시켰다. 그런 그에게 단순하면서도 관능적 이미지를 가진 카멜리아는 장미보다 더욱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아침으로 뭘 먹느냐”란 질문에 “저는 카멜리아를 먹습니다. 그리고 저녁엔 난초를 먹죠”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는 카멜리아에 대한 샤넬의 지극한 사랑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유럽 왕실의 정원을 꾸미다

카멜리아는 1712년 독일의 저명한 의사 겸 여행가 언젤베르트 켐퍼가 아시아 여행에서 발견하고 ‘일본 장미’라고 처음 묘사하면서 서구 사회에 알려졌다. 이후 1735년 스웨덴 식물학자 칼 린네우스가 당시 ‘카멜루스’(Camellus)라고 알려진 예수회 선교사 조르쥬 조셉 카멜의 이름을 따서 카멜리아라 명명했다. 카멜은 선교사면서 식물학 분야에서 주목할만한 연구 성과를 거둔 식물학자이기도 했다.

카멜리아는 주로 일본, 중국에서 서식한다. 겨울에서부터 이른 봄까지 꽃을 피워 정원을 장식해 왔다. 키우기도 쉬워 선호도가 높았다. 일본인들은 예로부터 이 꽃에 장수, 행복, 영원한 우아함, 완벽한 아름다움 등의 의미를 붙였다. 일본 전사의 상징으로도 쓰였다. 중국에서는 관대함의 의미였다. 명 왕조 시대에는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추앙 받기도 했다.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병풍에도 종종 등장했다.

이 꽃이 유럽에 옮겨온 과정에 대해서는 두 가지 가설이 있다. 첫 번째는 중국과 영국 상인들간 교역 중에 실수로 유럽에 유입되었다는 설이다. 동인도 회사의 한 수장이 아시아의 유명한 차(茶) 식물을 가져왔는데, 고국에 돌아와보니 먹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때 원래 가져오려고 했던 것은 차로 먹을 수 있는 ‘카멜리아 시넨시스’였는데, 잘못해서 ‘카멜리아 자포니카’를 가져온 것이다. 실망스러웠지만 꽃이 아름다워 이후 관상용으로 전파됐다는 것.

두 번째 가설은 이미 북 포르투갈과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에 카멜리아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일본·중국과 무역활동을 하던 포르투갈인이 먼저 옮겨왔고, 이것이 영국과 포르투갈 간 무역에서 영국으로 유입됐다는 설이다.

두 가설 중 어느 것이 맞든 카멜리아가 유럽에 소개된 18세기를 기점으로 다양한 카멜리아 종들이 아시아로부터 수입됐다. 이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정원을 장식했고, 프랑스·스페인·포르투갈·이탈리아 왕비와 공주들은 이 꽃에 매료돼 정원사에게 이를 사용한 조경과 새로운 종을 교배해 만들어 낼 것을 주문했다. 특히 나폴레옹 1세의 왕후인 조세핀은 궁에 이 꽃을 전시하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삼았다고 한다.

남녀 모두에게 사용된 카멜리아 장식

카멜리아가 몸을 치장하는 장식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프랑스 파리에서부터다. 추위에 약한 카멜리아는 유럽의 매서운 겨울을 잘 견뎌내지 못했는데, 온화한 기후의 프랑스에서는 경작이 잘 됐다. 특히 낭트 시에서는 1832년 시장이었던 페르디낭드 파브르의 지원 하에 카멜리아 재배가 성황을 이뤘고, 지금까지 유럽 카멜리아 생산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낭트에서는 카멜리아를 이용한 공예품들도 많이 생산했는데 이들 중 일부는 파리에서도 판매가 됐다. 당시 낭트에서 만들어진 카멜리아 단추 구멍이 12만개나 판매됐다는 기록이 있다. 단추 구멍은 카멜리아를 끼우기 위한 것으로 주로 파리 남자들이 사용했다.

파리에서는 귀족들이 카멜리아를 액세서리로 착용했다. 극장이나 야외 나들이를 갈 때 여성들은 이 꽃을 목과 머리에 달았다. 이는 몸치장을 많이 하는 고급 매춘부들도 마찬가지여서, 후에는 이들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1848년엔 알렉상드르 뒤마가 매춘부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소설 ‘춘희’(카멜리아의 여인)를 썼다. 주인공 마르그리트 고티에는 상류층의 저녁 만찬에 나타날 때마다 카멜리에 부케를 든다. 이후 베르디가 이 작품을 오페라 ‘라트라비아타’로 만들었다.

가브리엘 샤넬이 카멜리아를 처음 액세서리로 사용한 것은 1913년으로 볼 수 있다. 커다란 포켓이 달린 세일러 상의에 긴 스커트를 입고 벨트를 맨 모습으로 해변가에 나타났는데, 그 벨트 위에 카멜리아를 달았다.

그 후 1920년 그의 첫 번째 컬렉션부터 카멜리아를 주요한 모티프와 액세서리로 작품에 사용했다. 1925년에 낭트의 카멜리아 묘목장을 방문한 이후에는 이 꽃의 매력에 더욱 빠져들어 유명한 카멜리아 단추를 만들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샤넬이 만들어내는 거의 모든 제품에 이를 사용해 브랜드 상징물이 됐다.

# 카멜리아의 정수를 한 병에, 샤넬 이드라 뷰티 세럼

샤넬은 올 여름 자신들의 꽃, 카멜리아로 화장품을 만들어 냈다. ‘샤넬 이드라 뷰티 세럼’이다. 그저 하나의 디자인이나 감성적인 모티프만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꽃 자체를 화장품 성분으로 사용했다.

카멜리아는 전세계적으로 약 280여 종이 있다. 파생 종까지 따지면 2만8000여 종에 달한다. 이중 샤넬의 시그니처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카멜리아자포니카 알바 플레나’로 샤넬 스킨케어 연구소는이 꽃이 피부에 수분을 효과적으로 공급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보습 효과를 샤넬의 폴리프렉셔닝(PFA) 기술로 극대화시켜 ‘카멜리아 알바 PFA’활성성분을 만들었다. 이 성분은 단독으로도 피부에 수분을 공급할 뿐 아니라 피부 속 천연보습인자(NMF)를 활성화 시키기도 한다. 피부 스스로가 보습능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카멜리아 자포니까 알바 플레나는 겨울에 꽃망울을 만들기 시작해 3월에 만개한다. 배수가 잘되는 축축한 토양에서 자라고 나무 일부분에 그늘을 드리워줘야 한다.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수종이다.

샤넬은 이드라 뷰티 세럼에 사용하는 다량의 카멜리아 원료를 얻기 위해 프랑스 유명 카멜리아 콜렉터 겸 묘목가인 쟝 토비를 찾았다. 그는 르와르아틀란티크 지역에서 종묘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 끌로드 토비는 예전에 가브리엘 샤넬이 주문했던 카멜리아의 모든 성목을 보존하고 있었다. 쟝 토비는 자연스레 이들 카멜리아의 품질을 유지하고 새로운 카멜리아 종을 개발하는데 몰두하고 있었던 것. 쟝은 3000여 종의 묘목을 가지고 있었다. 이중 흰색 카멜리아는 280여 종에 달해 샤넬이 사용해야 하는 많은 양의 꽃을 공급할 수 있었다.

샤넬은 쟝 토비에게 이드라 뷰티 세럼의 원료로 사용하는 카멜리아를 재배하는 과정에서 열·습도·꽃의 색 등을 엄격하게 관리할 것을 주문했다. 쟝은 요청에 따라 특별히 차양막을 설치했다. 이차양막은 극심한 한파, 뜨거운 태양, 태풍 등 기후변화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사고로부터 카멜리아를 보호한다.

까다롭게 꽃을 피운 카멜리아는 수확과정에서도 소중히 다뤄진다. 1~3월의 개화기간 동안 상처가 나지 않도록 손으로 하나씩 수확한다. 이를 모아 추출물을 만들게 되는데, 카멜리아 알바 PFA 1㎏을 만들기 위해서는 꽃 2200송이가 필요하다. ‘카멜리아 그 자체’라고 불려도 좋을 만큼 많은 양의 카멜리아가 제품에 녹아있는 것이다. 여기에 마다가스카에서 채집한 생강의 일종인 ‘블루 진저’추출물을 함께 넣어 수분 공급이 더욱 효과적으로 이뤄지게 했다.

이드라 뷰티 세럼은 질감과 향기가 남다르다. 로션 타입으로 바르자마자 피부 속에 빠르게 흡수되며 피부를 편안하게 만든다. 상큼한 과일 향으로, 바르고 시간이 오래 지나도 코끝에 은은한 향이 남는다.

[사진설명] 1.가브리엘 샤넬이 사랑했던 꽃 ‘카멜리아 자포니카 알바 플레나’. 이 꽃은 이번달 출시된 고농축 수분 화장품 ‘이드라 뷰티 세럼’의 주 원료로 사용됐다.2.1937년 중국풍 병풍을 바라보고 있는 샤넬 여사. 병풍에 카멜리아가 새겨져 있다. 3. 쟝 토비가 자신의 종묘장 붉은 카멜리아 나무 앞에 앉아 있는 모습.4. 카멜리아를 모티프로 만든 코르사주 장식. 샤넬 스타일에서 없어서는 안될 액세서리다.5.샤넬 이드라 뷰티 세럼. 샤넬의 상징인 카멜리아 성분이 피부에 수분을 효과적으로 공급한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자료="샤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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