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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창극 칼럼

‘보이지 않는 손’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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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문창극
대기자

요즈음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난다. 팔남매를 두셨던 나의 부모님은 학기 때마다 돈 걱정에 시름이 깊으셨다. 다행히 나는 국립대를 다닌 덕에 등록금 걱정은 그리 하지 않았다. 당시 한 학기 등록금이 사립 고등학교의 한 분기 학비와 비슷했으니까. 그러나 사립대학을 다니던 누이들의 등록금 때문에 봄가을은 너무 힘든 시절이었다. 부모님은 그때를 맞추어 기르던 돼지를 팔기도 하셨지만 종당에는 급변을 내서야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그랬다. 월사금(학비)을 안 가지고 온다고 선생님이 학교에서 쫓아내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던 아이들이 많았고, 아예 학교를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슴 아픈 추억들이다. 우리 세대의 대부분은 그런 가운데서 공부를 했다. 그러나 세계가 놀랄 만큼 경제가 성장한 지금도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근심은 끊이지 않고 있다.

 얼마 전 지방 도시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후배를 만나 이야기하던 중에, 요즘 대학생들의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높은 등록금 때문에 학과생 절반 이상이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시급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공부할 시간이 없다 보니 자연히 학점도 나쁘고, 취직을 하려면 영어 등 별도의 스펙을 쌓아야 하는데 그럴 여유도 없다. 부모가 학비를 대주는 학생들과는 그래서 졸업 후에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악순환이다.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데, 열심히 살려고 애쓰는데 환경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이 이제는 없어야 한다. 등록금을 낮추든, 장학금을 늘리든 이 정도의 나라를 만들었으면 그 정도의 책임을 져야 할 때가 됐다. 그 1차적인 책임은 대학에 있다고 본다. 학생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대학이 그들의 고통을 아파하고, 눈물을 닦아줄 자세가 되어 있었다면 등록금 문제가 이렇게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자유와 책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노태우 정부 때부터 대학에 자유를 준다는 명분으로 정원 조정을 쉽게 만들었다. 그 이후 우후죽순처럼 사립대가 늘어났고, 기존 대학들도 정원 늘리기 경쟁이 붙었다. 학생 등록금이 그들의 수입이 되니 학생이 많을수록 이익이 나는 것이다. 자유가 이권이 된 것이다. 학교 재단은 이익의 극대화만 생각했지 좋은 교육을 시켜 좋은 인재를 배출하는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는 소홀했다. 이는 대학 사회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모든 부문이 겪고 있는 문제들이다. 모두 자유 속에서 개별 이익의 극대화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각자의 사정을 들어보면 다 일리가 있다. 대기업의 경우 국제 경쟁력을 가지려면 기술과 시설에 재투자를 할 수 있게 이익이 나야 하고, 이익을 내자니 하청업자의 손을 비틀게 되어 있다. 하청업자는 그런 가운데서 살아남기 위해 근로자의 임금을 짜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항해 근로자는 자신의 권리를 찾자며 강경투쟁을 벌인다. 모두들 각자 입장에서는 합리적이다. 그러나 이를 전체의 눈으로 보면 갈등이요 분열이며 자기 파괴다.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이를 감시하고 조정해 주는 기구가 정부이자 국회이다. 그럼에도 과거 대학에 정원을 늘려줄 때 학생 1명당 1년치 등록금을 로비자금으로 썼다는 얘기까지 있다. 그래도 대학은 남는 장사였고 교육부 관료나 정치인은 그 덕을 보았다. 저축은행 사태 역시 감독 기능의 부패가 빚은 문제이다. 등록금 문제도 재단, 교수, 정부 모두 자기 입장에서는 합리적(?)이라는 이유가 있지만 약자인 학생들만 골병이 든 것이다.

 민주와 자유가 만개한 것까지는 좋으나 모두 개별 이익의 극대화로만 치달으니 전체로는 붕괴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손’이 없다. 개별 이익을 추구해도 그것이 전체로는 조화를 이루어야 질서도 서고 나라도 번영한다. 이는 바로 각자가 개인의 이익을 생각할 뿐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도 함께 생각하는 마음을 가질 때 가능하다. 뒤를 돌아보면 우리가 지금보다 오히려 권위주의 시절에 공익 문제를 더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우리가 민주 공화국이라면 민주주의도 해야 하지만 더불어 잘사는 공화(共和)의 가치도 지켜야 한다. 공화의 가치는 공익을 사익에 앞세우며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또한 공화의 가치는 명예로운 시민의식이다. 시민 각자가 올바른 책임의식을 가지는 것이고, 공직자는 공직의 명예를 지켜가는 것이다.

 등록금 문제의 처방은 짐을 함께 나누어 지는 것이다. 젊은이의 고통을 이용해 표 싸움 할 일이 아니다. 대학은 등록금 거품을 빼고, 기업은 장학금을 적극 뒷받침해 주고, 정부는 부실대학을 없애는 대신 좋은 직업학교를 많이 만들고, 시민들은 대학 안 나와도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면 된다.

문창극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