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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건강검진 ‘원더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22호 34면

한국에서의 건강검진은 내게 낯선 풍경이다. 작은 방에서 가운을 입은 내가 차가운 청진기를 목에 건 의사와 마주 앉는다.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 다니며 각종 검사를 받는다. 특히나 의아했던 건 나를 고용한 회사가 검진을 받게 한다는 점이었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렇다. 회사가 비용을 지불하기 때문에 딱히 불평할 일은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건강 정보라는 아주 사적인 이슈를 회사가 들여다보는 건 불편하다. 안 좋은 결과가 나오면 회사가 어떻게 할 수 있나, 설마 나를 해고할까. 건강검진 결과가 나온 후에 벌어질 일은 모르겠다.

몇 년 전 한국의 한 무역업체에서 근무하던 시절 건강검진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회의실에 모든 직원이 줄지어 섰다. 차례로 체중계에 오르고, 피를 뽑고, 몇 가지 질문에 답해야 했다. 그 장면에 너무 놀라 난 검진을 거부했다. 상사와 마주 앉았다. 그는 무료인 데다 모두가 참여하는데 왜 빠지려 하느냐고 말했다. 난 반박했다. 공공 장소에서 검사를 받는 걸 납득할 수 없다고, 어떤 미국인도 동료들 앞에서 체중계에 올라서진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결국 내가 병원을 방문해 검사를 받기로 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여전히 회사가 직원들에게 받도록 하는 건강검진이 썩 내키지는 않는다. 그래서 최근 회사로부터 검진비를 받았을 때, 나는 방어적 태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가 병원을 선택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서른을 넘긴 내게 종합검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제야 한국의 진정한 건강검진의 세계를 엿볼 수 있게 됐다. 외국인 의료관광객들을 불러모은다는 그 검진 말이다.

일단 한국인 동료의 도움으로 병원을 선택하고, 예산에 맞는 검진 패키지를 골랐다. 일주일 후, 검진 준비를 위한 우편물이 배달됐다.(영어로 잘 설명돼 있었다!) 검진 전날 저녁부터 금식을 해야 했는데, 운 좋게도 예약 시간은 오전 9시였다. 검진을 앞두고는 예상치 못한, 준비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100개는 될 것 같은 무수한 질문이 담긴 서류 말고도 작은 용기도 채워야 했다. 내 몸에 기생충이 살고 있는지 검사하기 위한 것이다. ‘샘플’을 채집하는 과정은 부자연스럽고 어색했다.

검진 당일, 나는 ‘샘플’을 가방 깊숙이 담고 병원에 갔다. 직원은 ‘샘플’을 받아들고, 내게 차트를 넘겼다. 탈의실에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누군가 다가오더니 내 차트에 무언가 표시하고는 어떤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차트를 들고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이 검사에서 저 검사로 옮겨 다니기 시작했다. 각 방에 들어설 때마다 어떤 검사가 이뤄지는지 알기는 쉽지 않았다. 귀, 눈, 간, 신장, 심장…. 어느 하나 빼놓지 않고 모조리 검사 대상이 됐다.

그중에서도 눈 검사는 특히 재미있었다. 숫자와 글자를 읽는 보통의 시력검사를 기대했는데, 기계 앞에 앉은 내 눈으로 공기바람이 ‘펑’하고 쏘아졌다. 안구 밀도를 검사하는 것이라 했다. 눈을 깜빡이지 않고 검사를 마칠 수 있기까지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안구 밀도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건지는 여전히 궁금하다.

또 다른 검사를 위해선 거품이 나는 하얀 액체를 마셨다. 그리고 기계에 누워 온 몸이 오르락내리락 뒤집히는 사이 소화기의 사진이 찍혔다. 여전히 궁금증이 피어오르는 가운데 이뤄진 검사지만, 이쯤 돼선 커다란 의료기기에 대한 두려움도 어느 정도 사라져 있었다.

일주일 후 종합검진 결과를 e-메일로 받았다. 의사와 전화통화를 하며 설명을 들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첫 종합검진 결과 내 몸은 기생충 하나 없이 건강하단다!



미셸 판스워스 미국 뉴햄프셔주 출신. 미 클락대에서 커뮤니케이션과 아트를 전공했다. 세종대에서 MBA를 마치고 8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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