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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사이버 정치증권시장 ‘포스닥’에 비친 민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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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등장은 커뮤니케이션의 혁명을 가져왔다. 이에 따라 네티즌들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7월 정치인들을 주식종목으로 하는 사이버 정치증권시장 ‘포스닥’이 문을 열면서 네티즌들은 실시간으로 정치인들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지난 1년간 포스닥의 주가 추이를 통해 바닥민심을 추적해 본다.

새천년이 밝았다. 이 역사적인 순간에 언론들은 일제히 ‘인터넷’ ‘디지털’이라는 용어를 총동원해가며 미래사회의 청사진을 화려하게 제시하고 있다. 정말 ‘인터넷이 세상을 바꾸는’ 시대가 도래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 인터넷 사용자가 700만명을 넘어섰다. 바꾸어 말하면 700만명이 넘는 인구가 이제 인터넷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는 뜻이다. 인터넷은 그 특성상 기존 매체와 같은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성 매체다. 때문에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 -네티즌들간의 의사소통은 다른 어떤 매체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이에 따라 네티즌의 영향력도 커져가고 있다. 또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e-비즈니스’는 기존 경제의 틀 뿐만 아니라 문화·정치의 영역까지 바꾸어 놓고 있다.

얼마 전 실시된 네티즌 여론조사 결과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올 4·13 총선에서 기존 정치인을 선택하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이제 무관심의 수준을 넘어섰다. 우리나라 국민 셋만 모이면 정치 이야기를 한다는 우스갯소리는 이제 정말 흘러간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국민들의 눈에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그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따지는 데만 능숙한 별종으로 보인다. 국민의 대표라 부르는 국회의원 역시 선거 때를 제외하고는 국민들에게 너무나 먼 존재로 느껴질 뿐이다.

그러나 지난해 7월 문을 연 포스닥 정치증권시장에서는 정치인들이 실시간으로 국민들의 무서운 평가를 받고 있다. 정치인의 하루 활동이 그대로 주가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 포스닥 주가에 울고 웃는 정치권

살아있는 정치인에게 값을 매겨 실제 주식시장에서처럼 거래한다는 사실은 네티즌들에게 더이상 신기한 일이 아니다. TV나 신문에서 어느 정치인의 주가가 얼마만큼 오르고 내렸는지 보도해도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정치인들도 포스닥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자신의 주가가 높은 정치인들은 순위와 주가가 실린 시세표를 대량 복사해 지역구에 돌리는 등 홍보에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반면 주가가 낮은 의원들은 보좌진을 혼내거나 대책회의를 열어 어떻게 하면 주가(지지율)
를 올릴 수 있을지 토의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지난해 7월1일 개장한 후 7개월여만에 10만명이 넘는 네티즌이 참여할 정도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포스닥(http://www.posdaq.co.kr). 과연 이곳 정치증권시장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 투자 위한 정치정보 요구 잇따라

정치증권 개장 초기에는 ‘인지도’ 중심의 투자성향이 뚜렷했다. 언론에 노출되는 횟수가 많을수록, 장기적 비전보다 이슈를 만들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수록 주가 상승폭이 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뜻있는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소위 ‘중저가 우량주’를 찾아 나서는 소신투자 경향이 생겨나고, 올바른 의정활동 평가를 위한 모임이 생겨나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벌어졌다.

4년마다 실시하는 ‘국회의원 선거’를 매일 치러야 하는 시험으로 바꿔 놓았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시도라 할 수 있는 포스닥. 반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네티즌들은 투자를 위한 정치정보를 적극 수용하려는 쪽으로 변화했다. 젊은 참여자들이 그동안 무관심의 대상이었던 정치에 대해 적극적으로 정보를 요구하고,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진지하게 지켜보게 되었다는 사실은 정치적 무관심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반영할 공간이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었다.

한편 실물 증권시장에서 ‘실패한 경영자는 퇴출되어야’ 하는 것처럼 포스닥에서도 ‘부패한 정치인은 유권자의 의지로 퇴출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생겨났다. 또 정기적 감사제도나 사외이사제 등 기업경영 방식이 정치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끊이지 않았다.

대체적으로 신규 투자자들은 정치증권을 접하게 되면 초기에는 인지도·인기도 중심의 투자를 하다가 차츰 중저가 우량주에 눈길을 돌리는 특징이 있다. 또한 블루칩이라 할 수 있는 상위 10대 종목군에 투자가 집중되는 것도 특징이다. 특히 황제주라 불리는 김대중 대통령의 주가는 개장 석달여만에 27만원을 넘어섰다. 액면가 5,000원짜리가 30만원에 육박하게 되자 액면분할을 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그러나 옷로비 사건 등 현정부에 대한 악재가 많았던 지난해말 김대통령의 주가는 팔자 주문이 몰려 하락세로 돌아섰다.

■ 포스닥 최대 이슈 - 박종웅·정형근株 하한가 운동

김영삼 전 대통령이 여권의 내각제 개헌 유보 및 신당 창당 논의를 ‘장기집권 음모’라고 규정하면서 민주산악회를 전국적 규모로 재건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상도동의 입’ 한나라당 박종웅 의원을 비판하는 ‘하한가 만들기’ 운동이 벌어졌다.

포스닥 회원들은 본인의 수익률 손해를 무릅쓰고 하한가운동을 벌임으로써 포스닥 내에서 특정 의원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출했던 것이다. 한편 이회창 총재 역시 YS와의 연대설이 나오면서 하락세로 기우는 등 YS의 정치재개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정형근 의원의 경우도 마찬가지. 급등-급락 와중에서 역시 하한가운동이 벌어져 정의원은 5주 이상 포스닥 최저가주 신세를 면치 못했다. 지난해 국정감사 이전 정의원의 주가는 액면가 이하인 3,000원대에 머물러 있었으나 국감 이후 주목받으면서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네티즌이 정의원의 과거 ‘고문 전력’을 공개하면서 박종웅 의원에 이어 두번째로 정형근 의원 가격 상승 반대 운동이 참여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바람에 복병을 만난 것. 정의원의 주가는 지금도 저가주로 머무르고 있다.

■ 이근안의 최대 피해자 - 김근태株 약진

지난해 ‘고문기술자’로 명성(?)
을 날리던 이근안씨가 11년만에 자수했다. 이씨의 자수로 부각되었던 인물이 바로 국민회의 김근태 부총재. 김부총재는 민청련 의장이었던 1988년 당시 이씨에게 10여차례의 고문을 당했다고 검찰에 고소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김부총재에 대한 투자가들의 관심표가 쏟아지면서 주가가 10만원선에 육박했다. 김부총재는 이씨의 자수 소식을 들은 뒤 기자들에게 “이씨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화해의 악수를 청하면 그의 손을 잡을 용의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김부총재의 이러한 발언은 ‘용서와 화합의 정치’를 갈망하는 유권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주가 상위 7위로 올라서는 약진을 보였다.

■ 연내 개헌 포기 발언 - 김종필株의 가격변동

김종필 총리가 연내 개헌을 포기했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김종필 총리를 포함한 여당의 주가는 전반적인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또 임창열 경기도지사의 경기은행과 관련된 1억원 수뢰 혐의는 정부의 주가를 무려 6일간이나 하락시켰다. 무소속을 제외한 여·야, 정부 모두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형국이 2주 넘게 지속되는 최악의 기간이었다.

특히 국민회의는 굳건한 지지층에도 불구하고 상승과 하락세가 하루하루 교체되면서 각종 지도층의 비리에 분노한 지지자들이 무소속 또는 야당으로 이탈하고 있음을 암시했다. 한편 같은 기간 ‘국민과의 약속’을 강조하며 ‘내각제 연내 개헌’을 주장한 충청권의 김용환·강창희·이인구 의원 등의 주가가 김총리와는 반대로 상승세를 보인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총리가 소속 의원 43명에게 500만원씩 지급한 것, 그리고 총리 해임 건의안 또한 김총리 주가 하락의 큰 요인이었다.

■ 적극적인 의사소통 노력이 좋은 이미지 심어

포스닥 게시판에 직접 글을 올리고 꾸준히 의정활동 보고를 해온 맹형규 의원은 지난해 8월 열흘만에 주가가 113% 수직상승, 2만400원을 기록하면서 평상시 의정활동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또한 포스닥 게시판에 2개월의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정희양씨의 사연이 올라온 후 맹형규·김문수·김민석·한광옥 의원측에서 다음날 산업재해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즉각적인 조치를 취한 사실이 공개되자 이들 네 의원의 주가는 가파르게 수직상승했다. 비록 뚜렷한 결과물을 내놓지는 못하였지만 인터넷을 통한 민생정치가 국민들에게 어느 정도의 감동을 주는지 보여주는 좋은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특히 지난해 9월 세계 처음으로 시도된 정치인 주주총회는 네티즌 사이에서 “새로운 전자민주주의의 도래”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호응이 높았다. 주가가 상위 30위권 안에 드는 ‘핵심 블루칩’에 속한 국회의원과 ‘소액주주’인 네티즌의 만남은 일반 국민과 정치인이 직접 만나 대화함으로써 좀더 실질적인 여론수렴의 장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참석 전 미리 의정보고서를 보내온 몇몇 의원들의 보고서는 접속이 폭주해 일시적으로 포스닥이 마비 양상을 보이기도 할 정도였다.

■ 옷로비사건·도감청 문제로 정부· 여당株 하락세

젊은 세대와 중산층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여당의 주가는 한·일어업협상 실패, 국민연금 확대 문제, 씨랜드 화재 사건 등을 거치면서 정책혼선 사례가 이어지고, 반복되는 수해 피해에 대한 비난이 정부로 집중되면서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를 사면한 후 김대중 대통령의 주가는 15만원대로 하락하기도 했다(1월13일 현재 29만9,000원)
. “새천년을 앞두고 용서와 화해를 통한 새 출발을 기약하기 위함”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단행한 김현철씨 부분사면이 김대통령을 비롯, 여권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을 불러온 것이다. 특히 이같은 반발은 사면 반대 메일 보내기운동, 정부 주가 하락운동 등 인터넷 시민운동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옷로비 사건 청문회’에서 여당 의원들이 연정희씨를 감싸고 도는 듯한 태도는 여당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발심리를 불러일으켰다. 또 청문회 결과를 놓고 여권이 “의혹이 풀렸다”고 주장하자 이에 대한 비판여론 역시 만만치 않았다. 또한 김대통령의 ‘인권 대통령’ 이미지에 역행한 정부기관의 무분별한 도·감청 문제가 드러난 것도 역시 악재로 작용했다.

이같은 현상은 연초에 열릴 예정이었던 여야 총재회담으로 다소 약화될 것으로 보였으나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현안 정리 및 성과 제시’보다 김대통령의 당적 이탈 문제, 검찰과 국가정보원의 역할 문제, 옷로비 의혹 문제를 꾸준히 제기하고 있어 상황 반전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 정치증권에서도 시만단체의 영향력 급증

포스닥에 참여하는 유권자들의 투자 성향이 유명세 위주에서 ‘분석’ 위주로 변함에 따라 장을 이끄느라 힘이 빠진 대형 우량주들 -즉 김대중·노무현·이회창·박철언·정몽준·김민석·김종필 등의 종목보다 중가 블루칩이나 실적호전이 예상되는 중소형 개별 종목에 관심을 갖는 투자전략이 보다 유효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유권자들의 종목 분석 판단기준은 주로 한국유권자운동연합·참여연대 등에서 제공한 의원평가자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올 1월 첫째주 포스닥 여론조사에서 실시한 ‘21세기에 가장 영향력을 발휘할 집단’에서도 네티즌들은(전체 응답자 중 43.5%)
‘시민단체’를 첫번째로 꼽았다. 이는 네티즌들이 20세기 파워그룹으로 정치인(전체 응답자 중 44%)
을 꼽은 것과 비교하면 우리 사회의 변화를 바라보는 네티즌들의 시각이 포스닥 시장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 2부시장 개장, 첫번째 상장종목에 관심 집중

새해 들어 포스닥에는 2부시장이 개설될 예정이다. 이는 그동안 대통령과 국회의원, 국무의원 등 현역 정치인만을 대상으로 하던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올 4·13 총선 출마자에 대한 사전검증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2부시장은 포스닥 회원 중 200명의 추천을 받으면 자동으로 상장되는 방식으로 동일한 사람이 중복으로 추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구축해 놓고 있다. 총선을 석달여 앞둔 시점에서 빠르면 이달말 개장할 2부시장에 과연 누가 가장 먼저 상장하는 데 성공할 것인가에 네티즌은 물론 정가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지난해 12월17일부터 후보 등록을 받은 결과, 김세웅 아태민주지도자회의 사무총장,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 이인제 전 경기도지사, 임종석 전 전대협 의장 등이 자천·타천으로 등록됐다. 이들 중 가장 열심히 뛰는 쪽은 권영길 대표. 김세웅 총장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임종석·이인제·이창복씨 등도 2부시장 등록이 확실시 또는 유력시되는 후보다.

이처럼 개장 전부터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2부시장이 본격적으로 거래를 시작하면 네티즌들의 정치인에 대한 선호도를 다시 한번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다.

■ 총선 이후의 지각변동

총선이 90여일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정치권은 본격적으로 선거전에 돌입한 상황이다. 시민연대의 출범이 이번 총선에서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가운데 당내 공천 경합도 치열해져 ‘어느 지역에서는 누가 대세더라’는 정보가 포스닥 게시판에도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투자가들은 이같은 정보를 바탕으로 ‘물갈이 대상’ 종목을 스스로 선정하고 투자를 기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즉, 총선 이후 2부시장으로 좌천될 의원들에 대한 기대평가를 나름대로 해가며 투자종목 선정에 유의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시민단체가 벌이고 있는 ‘낙선운동’에 대한 포스닥 투자자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환영 일색이라고 할 수 있다. 포스닥이 ‘시민단체의 정치인 낙선운동에 대한 견해’를 묻는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총 2,128명이 참가했다. 네티즌들은 이러한 낙선운동이 당연한 국민의 권리(47.9%)
이며 부패 정치인을 막을 수 있다(34%)
고 응답하는 등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14.1%의 응답자는 공정성 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으며 불법이므로 시민단체의 활동에 반대한다는 견해는 전체 응답자의 3.1%에 불과했다. 그러나 리스트에 오른 종목들의 주가가 크게 내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러한 인식이 실제로 개별종목 투자에까지 영향을 미치려면 좀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포스닥이 출범한 지난 한해 동안 종합주가지수는 개장 첫날 157.82에서 1월13일 현재 525.39로 3배 이상 올랐다. 주가가 많이 오른 종목들을 살펴보면 주가상승의 가장 큰 요인으로 정치인의 소신, 잘못한 일에 대한 솔직한 사과와 화합의 자세, 언론에의 노출과 시민단체 평가의 결합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동안 포스닥의 주가는 민심을 실시간으로 반영해 왔다. 본격적인 정치의 계절이 다가온 지금 포스닥은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이해와 참여의 폭을 더욱 확대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다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장수임 사이버정치증권 “포스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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